9/20/2020

시칠리아 여행: 28: 체팔루: 라 로까 La Rocca 1



시칠리아 복숭아는 이를 닦고 나서 바로 먹어도 맛있다.^^ 빨래를 하려다 서둘러 로까la rocca에 가기로 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왠지 비를 만나지 싶다. 내 귀엔 자꾸 마른 천둥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밤새 귓전을 맴돌던 파도소리 탓일지도... 나가다 좀 과장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고 잔 것이다. 해이해졌다. 오고 있는 끝을 고대하고 있다는 징조 같기도 하다. 물론 백업이 있어 문제는 없지만, 방심했다는 사실 자체가 싫다.
 



라 로까 La Rocca


[체팔루. 디아나의 신전을 가리키는 화살표. 저 화살표를 따라가면 로까가 나옴.] 

[체팔루. 마라톤 행사를 위한 만국기. 저 중에 우리나라 국기가... 조금 감동 ^^] 

[체팔루. 로까 가는 길. 골목 입구에 바리케이트를 가져다 놨다] 

[체팔루. 로까 가는 길. 마음을 뺏긴 핑크. 하지만 내 집을 이렇게 칠할 수는 없을 듯...] 


거리에 러너 차림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만국기가 걸려있다. 곳곳에 경찰이 서있고 공원 입구로 가는 사라센 계단salita saraceni 입구에 9시부터 통행금지라는 안내문과 함께 바리케이트가 비스듬히 서있다. 마라톤 대회가 있는 것 같은데, 이 계단은 왜 통행을 제한하는지... 아무튼, 아직 9시 전이라 다행이다. 사라센 계단이라 이름 붙은 길을 오르니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니 작은 부스가 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 중 유난히 엷은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10년 후 브래드 피트가 딱 저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닮았다. 저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건 저 아저씨의 자유지... 하며 앉아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걷는데, 왜 저들은 앉아있는지 계속 궁금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주저 없이 나를 지나쳐 앞서 계단을 오른다. 로까는 이미 문을 연 시간이고 그들이 당당히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 속 찜찜함이 사라져 부지런히 그들 뒤를 따랐다.
 



오르며 바닷가 마을의 전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오르니 기차역도 보이고 마라톤 출발선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러너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로까 입구에 도착하니 문에 굵은 쇠사슬이 감겨있고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한동안 열린 적 없어 보인다. 안내서에는 4~9월에는 8시에 문을 연다고 했는데, 또 wrong information이었나 보다. 두 아저씨에게 사정을 물으니 표를 사야 입장할 수 있는데, 매표소는 저 아래라고 한다. 아, 놔... 아저씨들은 그럼 왜 올라온 것임? 이제서야 브래드 피트 아저씨의 시선과 미소가 이해가 된다. 뭔가 즐거워하던 그 표정은 내 헛걸음을 고소해 하는 것이었던 듯... 뭐... 타인의 그 정도 고통을 즐기는 건 자유의 영역에 두기로...^^




제법 되는 거리를 또 오르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지만, 다리가 알아서 할 일이니 너는 참아 하고 내려갔다.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브래드 피트 아저씨의 미소...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초상화 속 미소랑 닮은 것 같기도... ^^ 그들과 함께 한동안 기다리니 직원이 와서 매표소의 문을 연다. 거스름 돈이 부족한지 계속 잔돈, 잔돈을 외치는 통에 나도 지갑을 뒤져 입장료에 딱 맞게 준비하고 기다렸다. 앞 사람들에게는 표 뒤에 번호를 적어주며 나올 때 이 번호를 꼭 보여달라고 일일이 말하더니 내게는 그냥 번호만 적어주고 만다. 나도 말하면 알아 듣는다고 한마디 하려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해서 말았다. 들었고 알았으면 됐지 뭐...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랐으나 여전히 로까 입구는 굳게 닫혀 있다. 온 마을이 운동회 분위기에 휩싸였다. 뭐라는 지 알아들을 수는 없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고적대의 행진곡이 작은 마을에 울려 퍼진다. 저 아래 해변에 마라톤 행사장이 차려진 장면이 내려다 보인다. 한참을 기다리니 매표소 여직원이 숨을 몰아 쉬며 올라와 커다란 자물쇠를 열고 쇠사슬을 풀고 문을 열어 준다. 최근 열린 적 없어 보이던 문은 매일 열리는 문이었다. 이들은 매표소와 출입구를 일원화 할 생각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