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오니 마지막 관광객을 기다리며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데 저녁 식사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 한 컵 샀다. 뭔가를 먹으려면 언제나 먹어도 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계가 어딘지 확인하려는 듯 한없이 늘기만 하던 체중을 겨우 정상 언저리로 내렸고, 그것을 유지하려니... 다이어트를 시작한 날부터 칼로리를 의식하지 않고 뭔가를 먹은 날은 하루도 없었고, 언젠가 그런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다. 아무튼, 정답은 스트레챠텔라. 순간 흔들려 이런 저런 다른 맛을 시도해봐야, 답이 스트레챠텔라라는 걸 확인할 뿐이다. 이 길이 타오르미나 최대 관광지로 향하는 길이다 보니 양쪽에 기념품 가게가 빽빽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게를 구경하며 걸었다. 피키딘디아. 이곳에 오니 한동안 뜸하던 피키딘디아가 자주 눈에 띈다.
[타오르미나. 코르바하 궁palazzo corvaja]
산타 카테리나santa caterina 광장으로 나왔다. 몰려나온 사람들로 (시칠리아 기준으로^^) 미어터진다. 타오르미나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란다. 시간이 딱 저녁 먹기 전 아페리티보 할 시간이니 무리가 아니다. 이 광장의 카페shaker caffè가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극작가의 단골 카페였단다. 언감생심 발을 들일 생각도 없다. 광장에 15세기 건물 코르바하 궁전palazzo corvaja이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건축물과는 다른 느낌이다. 불규칙한 크기의 돌을 시멘트로 버무려 세운 벽 꼭대기는 성처럼 총안이 있다. 왠지 셀틱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창 위쪽에 검은 테두리가 있다. 문이나 창문 등의 가장자리에 현무암을 이용해 상감 방식으로 테두리를 두르는 것이 타오르미나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1층과 2층 중간에도 밝은 바탕에 현무암으로 무늬와 글을 박아 넣은 띠가 리본처럼 둘러있다. 전체적으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색감이나 세부 장식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이 건물의 분위기가 지진으로 무너지기 전 바로크 도시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불친절하기 짝이 없던 그 관광 안내소도 이곳에 있다. 알고 보니 이 관광 안내소는 불친절로 국제적 명성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건 아니잖아 하다가, 불친절한 것이 sin일지라도 crime도 아니고,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사람에 의지해 타오르미나를 관광할 사람이 많지도 않을 테고, 그 사람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스타일이겠거니 하며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명성이 있다 잖아...^^ 아무튼 이 건물 안에 작은 박물관도 있다는데, 됐다.
[타오르미나. 산타 카테리나 교회]
코르바하 궁 옆에 산타 카테리나 교회chiesa di santa caterina d'alessandria가 있는데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스투코로 장식된 제단이 예쁘다. 성녀의 조각상을 자세히 보니 발 밑에 이교도 모습의 남자가 누워 목숨을 애걸하고 있고, 성녀의 손에 들린 칼이 그의 목을 찌르기 일보 직전이다. 그 남자는 그녀를 박해한 로마 황제라고 한다.
[타오르미나. 움베르토 거리. 가운데 신랑, 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결혼식 끝나고 예복차림 그대로, 심지어 드레스 자락으로 골목을 쓸며 다니는 것은 시칠리아의 결혼식 풍속인 듯...]
[타오르미나. 4월 9일 광장]
[타오르미나. 4월 9일 광장. 산 쥬세페 교회와 산토 아고스티노 교회]
[타오르미나. 4월9일 광장. 산 쥬세페 교회 내부]
4월9일 광장piazza ix aprile에도 저녁 시간을 기다리며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가득 있다. 광장 테라스에서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불빛이 반짝인다. 에트나 화산 뒤로 아직 불그스름한 황혼이 남아있어 산 꼭대기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에트나 경사면이 완벽히 좌우 대칭이다. 게다가 완만해서 산이 참 순해 보인다. 연기를 푸푸 뿜어내고 있는데도... 거리가 주는 안도감일 것이다. 최초의 화산 분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게 포효하는 산일 줄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4월9일은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 당시 타오르미나 사람들이 부르봉 지배세력에 반기를 들었던 날이라고 한다. 광장 동쪽에 있는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된다는 산토 아고스티노 교회chiesa di sant'agostino가 있고, 광장 북쪽에는 산 쥬세페 교회chiesa di san giuseppe가 있다. 교회가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다. 17세기 교회라는데 하얗게 스투코로 장식되어 있다. 이 광장에 유명한 모캄보mocambo 카페와 분더바caffè wunderbar가 있지만 다른 시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타오르미나. 4월9일 광장 테라스에서 본 에트나]
숙소 바로 옆 건물에 파스티체리아가 있다. 아이스크림만으로 저녁식사라 하기 서운할까 싶어 샌드위치가 있으면 사서 숙소로 들어가려고 가게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서있는 어르신이 손님을 맞고, 어르신 휘하에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몇 있다. 보자마자 인품이 느껴지는 어르신이라고 할까... 내게 꿈이 있다면 저런 사람이 되는 것인데... 샌드위치가 없다 해서 그냥 나오긴 했는데 꼭 뭔가를 사먹어보고 싶은 가게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사람부터 헐리우드 배우까지 온갖 유명한 사람들이 타오르미나를 다녀갔단다. 괴테, 클림트, 엘튼존, 로알드 달, 윈스턴 처칠, 하다못해 브래드 핏까지. 모두 다 열거 할 수가 없다. 짧게 다녀간 사람도 있지만 몇 년을 지낸 사람들도 있고, 아예 눌러 산 사람도 있단다.
그 중에 영국 부유한 집안 출신의 화가가 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당시 동성애가 영국에서 불법이고 동성애자에 대해 적대적 분위기라 자유로운 생활을 위협받자 타오르미나로 와서 집을 짓고 눌러앉아 살았다고 한다. 그 집을 여자 조카가 물려받아 호텔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타오르미나를 방문하는 명사들의 사교장소 같은 곳이었고, 아직도 호텔로 운영되고 있단다. 영국사람이라니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이 떠올랐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재능과 인격을 묵살당하고 겪었던 수모가 너무 가슴 아팠었다. 그런 수모를 피한 그에게 지지의 뜻을 표하고 싶었고 한편 그의 그림이 궁금해졌다. 그림이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그림은 없고, 그의 친구였다는 사진작가가 찍었던 앳된 청년의 굴욕적인 나체 사진이 나온다. 당황... 너무 맹목적 공감과 지지였을까? 사진 속 인물은 화가의 동성애 상대였던 시칠리아 청년이라고 한다. 그 청년은 자신의 나체 사진이 공개되는 것에 동의했을까? 그렇게 공개되어 백 년을 훌쩍 지나 인터넷이라는 곳에 올려져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화가는 당시에는 영국 법으로 '억울하게' 범죄자 취급을 받았는지 몰라도, 지금은 다른 법으로 '억울할 자격 없는' 파렴치한 범죄자일 소지가 높다. 그가 거대한 힘을 앞세워 폭력적 방식으로 시칠리아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가 남긴 사진을 보니 그런 세력과 근본 목적은 다를 것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술하고 약한 사회로 파고들어 제국주의자처럼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했던...
괜히 들추었다. 넘고 싶지 않은 경계 저 너머 세상의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호텔에 대한 흥미도 유명한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장소에 대한 흥미도 싹 가신다. 누군가 내게 뜨르르한 명사들을 들먹이며 이곳의 명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유명하다고 존경할 만한 인간은 아니고, 그런 인간들의 자취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첫인상부터 약간 혼돈의 느낌이어서 그런지, 왠지 타오르미나는 이곳을 다녀간 수 많은 빅마우스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를 자랑거리인 양 걸치고 있고, 그런 분위기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발길로 명성을 지켜가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