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판의 안내문 공부를 끝내고 옛 수도원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짙은 초록의 식물들이 맞는다. 복원하며 헐어버렸다던 옛 건물의 담장은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인지, 미로처럼 남겨진 유적들 사이사이 온갖 식물이 있다. 열린 공간임에도 온실처럼 짙은 질감이 공기에서 느껴진다. 작고 은밀한 분위기. 더불어 모기 경보도 내려야 할 것 같다. 시칠리아에서 이런 곳이라면 모기를 주의해야 한다는 감이 어느새 생겼다.
빨간 사발 엎어놓은 듯한 건물로 갔다. 산 카탈도 교회에서 본 구조다. 단순함의 아름다움의 극치이지 않을까... 복잡하게 만들 기술이 부족한 결과이거나 원시적 단순함은 아닐 것 같다. 신념과 용기가 있어야 추구할 수 있는 단순함이지 싶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집기도 없는 허연 돌 벽으로 에워싸인 텅 빈 공간...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너무 단순하게 생긴 빨간 돔은 안에서 볼 때 훨씬 훨씬 더 예쁘다.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과 이곳 중에 선택을 하라면 주저 없이 이곳을 선택할 것 같다. 단, 그게 루제로의 방이라면 생각 좀 해보고... ^^
[빨간 돔의 안쪽]
[돔과 연결된 사각기둥의 모서리 위가 점점 작아지는 여러 겹 아치형 린텔lintel이 있는 벽감 형태]
[교회였던 곳]
[뾰족한 아치를 쌍을 이룬 기둥이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인 노르만 말기 건축물]
건물 밖 마당과 회랑에 온갖 식물이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종려나무, 석류, 피끼딘디아 선인장, 사이프러스 등 몇 개뿐이다. 꽃이 피어 오르는 연기처럼 생긴 식물도 있고, 하얀 횃불처럼 핀 식물도 있다. 예쁘고 흔히 볼 수 있지만 맹독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 식물도 있다. 어느새 모기 공격을 서너 번 당했지만 그래도 좋다. 엉엉... 나도 이런 정원 갖고 싶다. 이 또한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한 일일까? 식물 잎만 확대해서 그린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갈라진 잎을 가진 관엽식물이 지천이다. 요즘 실내에서도 많이 키우던데, 기세가 식물의 기세가 아니다. [나중에 찾아 보니 그 식물의 이름은 몬스테라monstera. 괴물, 거대한 것을 뜻하는 라틴어 monstrum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데 시칠리아 야외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니 괴물같다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사람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지 않아 보여 좋다.
정원 가장자리에 있는 종탑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내려다 본다. 저 곳에서 보면 교회를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입구가 없다. 물어보니, 옆 교회chiesa di san giuseppe cafasso의 종탑이란다. 옆 교회로 갔다. 그 교회에 오는 관광객은 모두 종탑에 올라가려는 사람인 줄 아는지 입장료를 받고 냉큼 종탑 계단 입구를 알려준다. 가파르게 빙빙 돌아가는 계단을 다 오르니, 이러니 다리가 아파도 돈을 내라 해도 종탑에 올라오지 않을 수가 있나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별로 높지 않은 종탑이어도 팔레르모가 다 보이는 것 같다. 옆집 산 죠반니 교회는 물론 아랍-노르만 스타일이 남아있는 노르만 궁전 남쪽 벽도 보이고, 성당도 보이고 마씨모 극장 지붕도 보이고 그 뒤로 멀리 바닷가에 있는 펠레그리노 산monte pellegrino까지 보인다.
[산 쥬세페 카파소 교회의 종탑에서 본 은둔자들의 산 죠반니 교회와 노르만 궁전 남쪽 벽]
[산 쥬세페 카파소 교회의 종탑에서 본 풍경. 팔레르모 성당의 주교궁 첨탑과 돔 사이로 마시모 극장의 지붕이 보인다. 그 뒤에 있는 산이 펠레그리노 산mount pellegr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