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2020

시칠리아 여행: 24: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가는 길



타오르미나taormina 가는 버스는 카타니아 버스 터미날에서 30분에 한 대씩 있다. 시칠리아 기준으로는 엄청 자주 있는 거다. 버스 시간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 보니 일정을 조정할 여유가 있다. 타오르미나는 오랜 역사가 있고 자연이 아름답기는 해도 휴양지 같은 곳이라 볼거리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당일치기로 반나절 쯤 보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이틀이나 머물 예정이니 천천히 가도 될 것 같다. 음... 그러니까... 끝내 미련을 못 버리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성당 지하 목욕탕과 벨리니 극장을 보고 가고 싶다는 거다. 체크아웃하고 가방을 맡겨두고 나왔다.

성당 지하 목욕탕.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엉뚱한 입구를 매번 확인했으니...] 벨리니 극장으로 갔다. 벨리니 극장 앞. 문 열기까지 10분이 남았는데, 10분 안에 열릴 문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동안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이 제 시간에 열리는 것을 종종 목격한 터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는데 험악한 분위기의 아저씨가 와서 입구를 서성인다. 극장을 보러 왔느냐고 물으니 티켓을 사러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쨌든 문을 열긴 연다는 것. 제 시간에 문이 열렸다. 감동... 당연한 일에 감동이다. 아저씨는 표를 사러 창구로 들어갔고, 문을 연 직원이 내 행색을 보더니 용건을 확인한다. 오늘은 극장을 개방하지 않는단다. 음악 공연 리허설을 해야 한다나 뭐라나 하며... 오늘뿐만 아니라 이번 주 내내 볼 수가 없단다. 자신들이 개방한다고 공표한 시간에 개방하지 않는 다는 말을 너무 당당한 표정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적어도 미리 알리지 못해 미안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멀리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나 같은 관광객에게는 더욱 더... 최소한 헛걸음은 해도 기다리지는 않도록 관람 불가라고 써 붙였어야지, 이 빌어먹을 것들아... 라고 마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을려나?^^

그 사이 험악해 보이는 아저씨는 티켓을 사서 나오며 왜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들은 이야기를 전하니 다음에 다시 와서 보면 되겠네 한다. 그래서 오늘 카타니아를 떠난다 하니 그럼 카타니아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며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싱글벙글이다. 공감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속이 좋은 건지... 하마터면 이곳에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고 쏘아붙일 뻔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니 로베르타의 큰 눈이 더 커지며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묻는다.

tutti chiusi...








[카타니아 매표소가 있는 거리]


예전에는 일본 애들과 중국 애들이 확실히 구분 됐었는데 이제 구분이 안되나 보다. 매표소에 뭔가 요란하고 부조화한 차림새의 아이들이 있길래 일본 애들이군 했었는데 중국 애들이다. 눈치가 있었으면 팔뚝 위 번쩍거리는 금빛 시계를 보고 알아 봤을 텐데. 아무튼,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한통속의 아시아인으로 묶이기 싫다. 이곳에서 보이는 동양인은 지금까지는 모두 중국인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무례한 인간에게 중국인 취급을 당했다. 무례한 인간들이야 어디 가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유쾌하지는 않다.

이곳은 아직 흡연자의 천국이다. 아무데서나 왜 이렇게 담배들을 피워대는지...

시칠리아에서 뭐든 만만한 것은 없다. 버스 정류장을 안다고 다가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적어도 30분은 먼저 나오는 것이 안전하다. 당연 터미널 근처에 있겠거니 했던 매표소가 멀리 있어 오늘도 티켓을 사려 이 지역을 순례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왕복 십 분은 충분히 걸린다. 물론 나는 헤매서 더 걸렸지만... ^^

예정시간을 10분 넘겨 버스 한 대가 터미널로 들어온다. 타오르미나 행으로 보이는 사람들 한바닥이 미동도 않는다. 타오르미나 가는 버스가 아닌가 보다. 곧 다른 버스가 들어온다. 타오르미나라고 쓰여있다. 사람들이 일시에 문으로 몰려들자 기사가 반대편을 가리킨다. 그곳에 짐을 실으란 뜻이다. 언제나 입구와 같은 쪽 짐칸에 짐을 실었었는데 반대편에도 짐칸이 있나 보다. 버스를 빙 돌아 짐을 넣고 다시 빙 돌아 와보니 문앞이 장사진이다. 짐 실은 사람들은 다 뒤로 밀렸다.

서로 먼저 타려는 암묵적 전쟁이 장난이 아니다. 자리가 있을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내 경쟁력은 10점 만점에 1정도. 같이 짐을 실었어도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파고 들어가 내 앞 쪽에 있다. 아무리 밀려도 꼴찌는 싫은데, 다행이 내 뒤에 아저씨가 한 명 있다. 서로 먼저 타겠다고 밀치고 파고 드는 상황을 불평하던 내 앞에 서있는 호주여자가 자신 앞으로 새치기 해 들어온 영어를 쓰는 남자에게 넌 나보다 늦게 왔으니 뒤에 있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러니 그 남자는 기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 부인이 벌써 타고 있어서 먼저 타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헐... 그게 새치기의 이유가 되나? 새치기는 그렇다 쳐도 뻔뻔함이 용서가 안된다. 그 녀석 귀에 들리길 바라며 불행히 내 부인은 버스 안에 없다고 하니, 호주여자는 내 것은 유감스럽게 호주에 있다고 거든다.

결국 아저씨, 나, 호주 여자 이렇게 꼴찌 셋이 잘렸다. 기사가 10분 뒤에 버스가 오니 다음 버스를 타란다. 부인은 없어도 짐이 있다고 하면 태워줄까 싶어 짐을 실었음을 어필해봤지만...^^ 꺼내라며 짐 꺼낼 시간을 준다. 이 차가 워낙 늦게 왔고 사람 태우느라 오래 지체되어 기사 말대로 버스가 곧 올 것 같기는 같다. 곧 오지 않는다 해도 30분에 한대씩 있는 버스라 기다려봐야 30분. 까짓 30분 기다리는 것. 일도 아니다.

호주여자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다 타고 갔단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도 다 타고 갔다. 내가 왔을 때는 열 명 정도 밖에 없었다. 친지 집에 다니러 왔다 주변을 마실 다니듯 다니고 있는 호주 여자는 열 받는다고 다른 곳에 갈지 알아보겠다고 터미널을 헤맨다. 잘 없을 텐데... 그냥 기분 풀고 다음 버스 타라고 하고 싶지만,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내가 뭐라 할 상태는 아닌 것 같다. 

핸드폰에 그 뻔뻔한 놈 욕이나 한 바가지 쓰려고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버스가 한대 들어온다. 전광판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 아닌가 했는데 꼴찌 아저씨가 그 버스에 오른다. 그래서 보니 앞 유리창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타오르미나라고 쓰여있다. 호주 여자가 타오르미나 행이 맞는지 물어보자고 한다. 같이 잘리며 동지의식이 생겼나 보다.^^ 버스 승객은 대여섯 명 밖에 없다. 두 좌석씩 차지하고 앉아도 좌석이 남아돈다. 조금 전 아등바등 했던 상황이 어이없다. 콩나물 시루처럼 앉아 가야 했던 앞 차를 못 타서 참 다행이다.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평정심이 유지되는 사람으로서 너무 기쁘다. 출발 시간도 정확하게 11시 반... 왼쪽으로 에트나가 보인다. 배가 고프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보니 없다. 또 어딘가에 흘렸나 보다. 오늘 벌써 두 번째... 정신을 차려야 한다.

호주 여자가 내게 타오르미나냐고 묻는다. 아직 아니라고 답한다, GPS로 보고 있는 것을 마치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서로 초행길임을 알면서, 묻는 그녀도 대답하는 나도 웃긴다. 보이는 사람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울긋불긋한 타투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고 어디서 봤는데 1시간 40분 걸린다고 본 적도 있다. 호주여자도 1시간 40분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달린 지 얼마 안 돼서 근처까지 오길래 1시간 10분이 맞나 했더니 다 와서 마을 버스가 됐다. 마을을 빙글빙글 돌며 다 선다. 낙소스naxos 지나서 바닷가로 가는데 너무 예쁘다. 트라파니나 시라쿠자 해변 같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오른다. 집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바로 산이고 오른쪽에는 바다다. 나는 꿈이나 꾸는 곳에서 실제 사람들이 산다.



P.S. 카타니아에서 타오르미나 가는 교통편


버스 
카타니아 버스 터미널에서 Interbus를 타면 된다. 시간은 http://www.etnatrasporti.it에서 검색.

기차
카타니아 중앙역에서 타오르미나-쟈르디니taormina-giardini까지 가고, 기차역에서 타오르미나 시내까지는 택시나 버스를 타면 된다. 카타니아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기차역을 들러 타오르미나 시내로 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20분이면 걸어 갈 수 있는 지름길(via madonna delle grazie & salita madonna delle grazie)이 있다. 단, 경치는 무척 좋은데 가파른 오르막이라는 것. 편한 것으로는 버스가 최고지만, 타오르미나-쟈르디니역은 일부러 가볼 만할 정도로 예뻐서 기차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