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2020

시칠리아 여행: 23: 카타니아: 에트나 투어, 출발...



하나 둘 모여들어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있던 젊은이들도 투어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가 와서 그들과 악수하고 통성명하더니 모두 차에 싣고 떠난다.

내 가이드도 약속 시간 5분 전에 왔다. 파올로. 카타니아 토박이란다. 같이 갈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한다. 볼로냐에서 왔다는 남자다. 볼로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박3일쯤 여행했던 곳이다. 가봤다고 하니까 소감을 묻는다. 토르텔리니가 유명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며 뭐라 하는데, 한참 후에 뭐라 했는지 해독이 된다. 토르텔리니 넬 브로도tortellini nel brodo... 맞다. 그냥 토르텔리니가 유명한 게 아니라, 맑은 국물에 엄지 손톱만큼 작은 만두를 넣고 끓인 토르텔리니 넬 브로도가 유명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엄청 짜다 하면서 그 수프를 먹었던 기억났다. 아무튼, 착해보이기는 하지만 여행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름이 마씨모였는지 막시무스였는지 좀 특이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그 사이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가더니 여자 두 명을 더 태운다. 조금 전 한 명 더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제 아침만해도 예약한 사람이 나 밖에 없지만 그래도 투어를 진행해 주겠다며 선심 쓰듯 말했는데, 동행이 4명이다. 그런데 즐거운 그룹을 만난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이드와 나만 인사성이 밝다. 두 여자는 인사를 해도 답이 없어 못 들었나 하고 다시 인사를 건네니 그 중 한 명만 마지못해 헬로우 하고 끝이다. 이어 가이드가 한껏 높은 목소리로 다시 인사를 하니 오케이 라고 대꾸하고 둘이 수다 삼매경이다. 오케이라는 인사가 있던가? (그들은 헝가리 사람이었고, 다행히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었다. ^^)

이래저래 뭔가 불편하다. 어제 로마 극장 근처에서 보았던 에트나 전문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으로 바꿀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 투어가 가격은 더 비싸도 왠지 전문성이 있어 보였는데, 예약한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투어를 차마 취소할 수 없어 포기했었는데, 괜한 오지랖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지 내 편의가 우선이 아닌데, 난 내 편의보다 그들의 이익을 염려했다. 참나~ 웃긴 나다. 네가 아무리 이기적으로 굴어봤자 네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네 명으로도 끝이 아니다. 두 명이 또 더 있다. 프랑스에서 온 젊은 아가씨와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임산부. 3~4일 전부터 어제 아침까지 계속 없다가 하루 사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니? 좁은 차에 낯선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으려니 더 답답하다. 여행사에서 나 밖에 없다고 했던 건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취소하지 못하게 한는 상술이었을까? 차가 바닷가를 따라 가지만 경치가 즐겨지지 않는다.

이제 사람을 다 모았는지 파올로는 설명을 시작한다. 니콜로지nicolosi라는 마을을 지날 것이고, 동굴 트레킹을 하고 이곳 말로 푸니비아funivia인 케이블카를 타고 3천 미터로 갈 것이라고 한다. 에트나의 작은 폭발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상이고, 최근 분화 중에 1983년, 1991년, 2002년 분화가 컸단다. 현재 높이는 3,290미터인데, 가장 높았을 때 높이는 3,600미터였다고 한다. [안내서와 인터넷을 보니 높이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화산 분화에 따라 높이가 변해서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약 3,300미터라는 게 정설인 것 같다.] 이곳에서 보이는 주변 산봉우리들은 모두 화산 폭발로 형성된 분석구라고 한다. 에트나 산은 한 번의 분화로 형성된 베수비오 산과 달리 여러 번의 분화로 층층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근 모든 바위는 모두 화성암이란다. 용암으로 형성된 들판은 분출된 연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식물이 있는 정도가 다르다. 용암이 흐른 자리가 경작이 가능한 땅이 되기까지는 2백년이 걸린다고 한다. 에트나 지역은 와인이 많이 난다. 에트나 로소와 에트나 비앙코 수페리오레 등의 DOC 와인 산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땅을 일궈 생산한 와인이라 생각하니 맛이야 어떻든 귀하게 느껴진다.

카타니아 대학에서 2백여개의 지진 감지장치를 곳곳에 설치하고 연구를 계속하지만 아직까지 분화를 예측하지는 못한단다. 지진을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의 결실이 아직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과학이 발달했어도 지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화산 폭발의 위험은 3단계 경보시스템을 운영한단다. 그린, 오렌지, 레드. 현재는 그린이란다. 현재 가장 크고 활동적인 분화구는 남동쪽, 북동쪽, 중앙에 있다고 한다.




니콜로지 마을을 지난다고 했는데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 북서쪽 몬티 펠루조monti peluso라는 분석구 남쪽 기슭에 있는 작은 용암 동굴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굴의 이름은 긴 동굴grotta lunga인데 길이는 약55미터라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가이드가 헬멧과 플래시를 나눠준다. 이 일대에 용암 동굴은 길이가 몇 십 미터에서 1킬로미터에 달하는 것까지 수백 개가 있는데, 전쟁 때는 피신처로, 보통 때는 여러 용도의 저장소로, 특히 겨울에 내린 눈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생선 보관용이나 그라니타로 썼다고도 한다.




그러자 헝가리 커플이 그라니타가 뭐냐고 묻는다. 파올로가 그라니타를 어떻게 모르냐고 나쁜 학생들이라며 놀린다. 카타니아에서는 그라니타를 브리오쉬brioche와 함께 먹는데, 아침으로도 먹고, 점심으로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고, 저녁으로도 먹는다고 한다. 이번엔 내가 그라니타를 브리오쉬와 함께 먹는 줄은 몰랐다고 하니까 또 다른 나쁜 학생이 있었다며 놀린다. 나는 브리오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브리오쉬 사이에 끼워 먹는 것이 시칠리아의 독특한 아이스크림 먹는 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컵에 먹는다. 똥 모양의 생김새도 별로지만 그냥 우리나라에서 파는 모닝 롤의 맛이다. 경양식 집에서 빵과 밥 중에 빵을 선택하면 나오던 빵. 좋아하지는 않아도 절대 먹지 않겠다는 의지는 없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한 번 먹어봤어야 하는데, 아이스크림이랑도 그라니타랑도...^^ 헝가리 커플은 나중에 꼭 먹어보겠다고 그게 뭐였지 하며 그라니타를 몇 번이나 물었다. 첫 인상보다는 friendly한 사람들 같다. 그라니타는 고운 얼음 가루에 여러 향과 맛을 섞어 먹는 음식인데 기원이 시칠리아란다. 질감이나 색감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슬러시 같다. 다만 학교 앞 슬러시에 넣는 정체불명 재료 대신 천연 재료로 색과 맛을 냈다는 점이 다를 거다. 아랍인들에게는 얼음가루에 과일즙이나 로즈워터를 뿌려먹는 조리법이 있었는데, 시칠리아를 점령한 아랍인들이 산에 쌓인 눈을 가져다 그렇게 먹었고, 그렇게 그라니타가 태어났단다.



동굴 안에는 용암이 반쯤 차있었던 흔적이 있다. 차있던 용암이 지각이 변동으로 흘러나가 동굴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플래시로 동굴 천정에 볼펜 끝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는 곳을 가리킨다. 보일락 말락. 천정에 맺혀있던 용암이 방울 져 떨어진 흔적이다. 석회 동굴로 치면 종유석. 박쥐 같은 작은 동물은 서식하지만 물이 많지 않아 큰 동물은 없다고 한다. 들판 저 멀리 보이는 언덕도 모두 분석구라고 한다. [박쥐... 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에 눈을 저장해두고 여름에 먹었다니... 박쥐에서 유래했다는 코로나가 온 세상을 패닉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요즘, 당시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없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