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2020

시칠리아 여행: 24: 카타니아: 아침& 카타니아와 작별하기



일찍 잠이 깨서 졸다 깨다 한다. 나중에 카타니아를 생각할 때 빨래가 정말 잘 말랐던 기억이 날 것 같다. 유난히 빨래가 바싹바싹 마른다. 물기 있는 채로 널어도 아침에 거의 다 마른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닷가인데 신기하다. 오늘 벨리니 극장을 들렀다 갈까 말까 고민이다. 벨리니의 고향인데, 오페라 극장을 보고 싶다.

시라쿠자를 떠난 이후 비를 한 방울도 만나지 않았었다. 아그리젠토에서 만난 토니 말처럼 9월 말에 접어드니 날씨가 좋아져 비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오늘 아침 날씨 앱을 보니 오늘까지만 맑고 연이어 비 예보다.

여행용 휴대폰 유심이 30일짜리라고 해서 시칠리아 떠나기 하루 이틀 전에 끝나리라 생각했었다. 한국 폰 데이터 로밍도 4주짜리라 여행 막바지에 끝나는데, 며칠 때문에 한 달을 연장하기는 좀 아깝다. wireless로 하루나 이틀을 사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 그냥 하릴없이 TIM 앱을 뒤져 끝나는 날을 확인하니 어찌된 일인지 떠나는 날까지 유효하다. 30일이 아니라 한 달짜리 상품이었나 보다. 큰 걱정은 아니었어도 걱정 한 가지는 덜었다.




막상 떠난다니 아쉬워 일찍 숙소를 나와 근처 골목길을 산책했다. 며칠 있었다고 지도 없이도 방향이 잡힌다. 늘 그런 것 같다. 이제 방향 좀 잡고 긴장도 풀리고 편히 다닐 만 하면 떠나야 한다. 예쁜 낙서들도 꽤 있다. 혼돈에 익숙해지니 어떤 와중에도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마다 위로와 위안을 얻는 대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뭔가 아름다운 것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찾으려 하고, 찾아도 보이지 않을 때 힘이 드는 것 같다.




생선시장으로 갔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들은 거의 없고 상인들과 일찍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상품을 진열하는 중에 부지런한 손님들은 이미 장을 보고 간다. 주로 머리만 보았던 청새치들의 몸통이 제법 남았다. 인기가 좋은 생선인지 이미 많이 팔렸다. 한 가게에 돼지의 왼쪽 얼굴이 인기가 있는지, 오른쪽 얼굴만 두 개가 귀를 꿰여 걸려있고, 두 얼굴 사이에 뽑힌 혀가 결려있다. 저 배열은 의도적이었을까 궁금하다. 온갖 내장도 꼬챙이에 걸어두었다. 간, 허파, 콩팥, 다리 등도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조각조각 잘린 모습이 끔찍한데, 놀라운 건 내가 저것들이 어떤 부위인지 다 구분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저 중에 먹어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카타니아. 에트네아 거리. 에트나가 있어야 할 곳이 그저 뿌옇다.]


두오모 광장으로 나왔다. 여전히 에트네아 거리 끝에 에트나 화산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에트나를 배경으로 하는 카타니아는 못보고 간다. 코끼리, 안녕, 아가타도 안녕, 언제나 명랑하게 열일 하는 천사들도 안녕...

숙소로 돌아오니 새 손님이 이미 아침을 먹고 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커플이다. 외국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외국을 여행하는데 저렇게 프랑스 말만 하는 사람도 처음 보는 것 같다. 로베르타가 불어를 좀 하고 나도 단어 몇 개는 아니 어떻게 대화가 이어진다. 내가 불어가 어렵다고 하니, 아저씨가 자기한테는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헐... 그러고는 나름 내 의견을 분석한다. 문법이 어려워서 그럴 것이란다. 뭐라니? 문법은 불어에만 있는 줄 아나? 다른 언어를 모르니 비교의 근거가 없을 텐데 저 태도는 뭐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으니 예의상 어렵다 해줬더니... 마치 자신이 쓰고 있는 언어가 높은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향유할 수 있는 언어라고 우쭐대고 싶은가 보다. 그런 꼴은 못 보는 성격이라 문법 때문이 아니라 발음과 철자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문자와 서로 '사맞디 아니하는' 발음도 발음이고, 발음도 안할 철자를 왜 길게 사족처럼 붙이는 건지 불어를 배우며 계속 투덜거렸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뜻을 이해했을 텐데 영어는커녕 같은 라틴어 계열 이탈리아어도 한마디 못할 만큼 언어에 문외한인 사람이 알아들었을 리는 없지 싶다. ^^

우리는 파리, 명품 해가며 프랑스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국민으로 프랑스인을 말할 때 좋게 말하는 서양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을 보면 볼 수록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같은 서양사람들 앞에서도 거만을 떨 정도면, 내 앞에서는 얼마나 떨었을까...^^

그들이 자리를 뜨고 로마에 산다는 커플이 와서 아침을 먹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로베르타가 한국 아침은 돌체dolce냐 살라타salata냐 묻는다. 단짠 논쟁... 당연 살라타라고 대답하니 로마 커플이 같은 파를 만난 듯 좋아한다. 우리가 탕수육을 놓고 부먹 파와 찍먹 파로 갈리 듯 이곳에서는 아침 식사에 대해서 단 파와 짠 파로 나뉘나 보다.

아까 프랑스 커플이 숙소를 떠나는 날인가보다. 아주머니가 식당을 지나며 로베트타와 내게 hearty한 인사를 전한다. 나도 au revoir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거만하고 심통 맞아 보이는 아저씨와 달리 아주머니의 성품은 밝고 상냥하다. 저 커플이 잘 산다면 다 아주머니의 인덕 덕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