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2020

시칠리아 여행: 21: 카타니아: 도착



한 번 왔었다고 역 주변의 뒤숭숭한 풍경에도 긴장되지 않는다. 긴장이 안 되는 건 좋은데 새로운 도시임에도 설렘과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게 유감이다. 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경로를 보니 초밥집이 있는데 평이 좋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 배가 고프기도 했고 먹고 가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익힌 쌀, 즉 밥이 먹고 싶었다. 숙소로 전화해서 1시간 늦어도 되겠냐 물으니 그래도 된단다. 

역 앞에 쓰레기가 나뒹구는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얼굴만 가리고 누워 잔다. 한가로이 누워 망중한을 즐길 분위기는 아니고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길바닥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자는 사람이 노숙자 특유의 옷차림도 아니다. 보따리도 없고 입고 있는 꾀죄죄한 옷 한 벌이 전부다. 그저 노숙 중인 건가? 아무튼 조금 충격... 공원 중앙에 분수가 있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겁탈하는 장면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엔나의 분수 조각에도 쓰였던 소재다. 엔나는 사건의 현장(?)이니 그렇다 쳐도 이곳에 저 조각상이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스시집kiyomi sushi은 엄청나게 크다. 지금까지 갔던 스시집은 중국 사람이 주인이었는데 이곳은 주인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직원들이 눈에 띈다. 예전에는 아시아 사람끼리 서로 반가워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좀 경계하는 느낌이다.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역시 올유캔잇all you can eat 메뉴가 있었고,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지도가 안내한 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에 철길이 있고 그 너머에 바다가 있다. 길 양쪽으로는 가로수가 쭉 서있고 오른쪽에는 옛 건물과 최근 건물이 혼재되어 서있다. 말만 들으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실상은 맑은 날임에도 흐린 날로 느껴진다. 살풍경, 어수선...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날림으로 지은 듯한 건물, 때가 꼬질꼬질한 오래된 건물,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들, 굴러다니는 쓰레기 등이 이 느낌의 주인공이긴 하겠지만, 아무데나 되어있는 낙서도 한 몫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디 가도 그래피티라고 하는 낙서의 화풍(?)이나 필체가 비슷하다. 모아 놓고 가르쳐도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한 노릇이다. 그래피티를 싫어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좋아한다. 그런데 봐가며 했으면 좋겠다. 주인 몰래, 주인이 화낼 법한 곳에 그리는 것이 그래피티 정신일까?


숙소




숙소는 카타니아의 주 거리via vittorio emanuele II에 있는 쿠텔리 광장piazza cutelli에 있었다. 서쪽으로 몇 분만 가면 성당이 있는 두오모 광장이 나오고 주요 관광지가 지척이다. 위치가 좋다. 들어가니 로베르타와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맞는다. 객실은 조금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크고 발코니가 있는 창이 있어 답답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관리되는 B&B다. 에트나 투어를 다시 확인하니 예약에 문제가 없었다. 남자가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3박을 하지만 하루는 에트나에 갈 계획이다. 에트나산에 가까워 이곳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투어가 많다. 시칠리아 제 2의 도시라 하지만 이곳에 온 주 목적이 에트나를 보러가는 것이어서 카타니아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성당과 벨리니 극장만 보면 된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볼거리를 추천해 주는데 끝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하루 반 밖에 없어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다고 하니, 큰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지켜보던 로베르타도 거든다. 그러니 이젠 맛집을 추천해준다. 이 지역에서 말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말고기 식당을 추천해주려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꼭 먹지 않아도 된다며 웃는다. 평생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 포유류에 관한 한 먹는 종목도 먹는 방식도 더는 늘리고 싶지 않다. 이미 중분히 다양한 종을 다양한 방식으로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다니겠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다. 왠지 신선한 느낌... 혹시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 아무튼 이 말 한마디로 백 점 땄다. 전화할 일 절대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사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