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오늘은 먹는 일에도 열의를 좀 발휘해보자 싶어 추천 맛집a putia을 찾아 갔더니 마침 쉬는 날이다. 주변을 배회하다 문에 여러 여행 사이트의 인증 스티커도 많이 붙어 있고 모던한 느낌의 식당이 눈에 띄었는데, 아직 저녁 시간이 아니다. 맞은 편에 상반된, 전통적 분위기의 식당trattoria do scogghiu이 있었는데 나빠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저녁을 먹을 수 있단다.
세련된 분위기는 아닌데 시칠리아적(?) 이미지로 장식하려 애썼다. 범선, 손을 뒤로 묶이고 어깨에 화살이 꽂힌 산 세바스티아노의 상, 갑옷을 입은 기사 마리오네트, 당나귀가 끄는 알록달록 색칠한 수레carretto siciliano, 발코니에 걸려있는 빨래, 발코니에서 물건을 올리고 내릴 때 쓰는 바구니 등... 할머니가 보셨으면 귀신 나온다고 기겁하실 듯한 스타일이지만 내 눈엔 정겨워 보인다.
[오르티지아 trattoria do scogghiu]
오징어, 새우 튀김과 어제 먹은 가지 요리melanzane alla parmigiana를 또 시켰다. 가지를 좋아하기도 하고, 채소 요리가 귀하기도 하지만 할머니 조리법이라는 말에 혹했다. 오늘도 가지 요리에 소금을 좀 뿌려야 하나 싶다. 그런데 뒤이어 나온 튀김이 짭짤해서 번갈아 먹으니 괜찮았다. 이탈리아 해물 튀김은 따로 옷을 입히지 않고 마른 가루만 입혀 가볍게 튀기는데 맛있다. 시칠리아 식재료에는 맛이 더 진하게 응집되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채소에도... 간만에 만족스러운 조합의 식사다. 예전에는 메뉴판을 보면 어떤 조합이 좋을지 하이라이트 된 것처럼 보였던 것 같은데, 이제 감이 떨어졌는지 이번 여행에서는 썩 만족스러운 조합이 별로 없었다.^^
후식을 먹을 배는 없고, 그냥 끝내기는 서운하다. 밥 먹는 도중에 배달돼온 선인장 열매 피끼딘디아가 저쪽 테이블에 놓여있어 맛을 보면 좋겠다 싶은데, 차마 먹어볼 수 있겠냐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식후 마시는 술digestivo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시칠리아의 쓴맛이라는 뜻의 아마로 시칠리아노amaro siciliano 라는 것을 추천해준다. 도수가 높지 않다 했는데, 생각보다 세고, 익숙한 향이 나는데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새 손님이 왔는데 자기들 말을 못 알아 들을 거라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내가 일본 사람이란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이다. 알고 말하라는 뜻을 담아 확실히 시선을 날려 주었다.
밥 먹는 내내 주인 아저씨가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보기 드문 이방인이 자신의 음식을 먹고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하겠다 싶다. 내가 고개를 들면 재빨리 다른 곳을 봤다, 무대에서나 볼 법한 과장된 몸짓으로... 남녀노소 불구하고 귀여울 수 있다. 그러니 손가락만 까딱 해도 아저씨의 주의를 끌었고, 아저씨는 필요한 것이 있냐며 달려왔다. 시종을 둔 귀부인의 느낌이 이런 것?^^
토로네torrone
[토로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토로네 파는 가게가 있다. 토로네는 웬만하면 다 팔기는 하지만 꿀을 넣어 제대로 만든 토로네를 파는 집은 드물다. 수제로 만든 것은 크기도 들쑥날쑥하고 모양도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다. 여기저기 토로네와 비슷한 단 것이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롬바르디아 지방이 원조다. 숙소 호스트 조지가 인근 베네토 지방 출신이니 토로네를 좋아하겠다 싶다. 모양이 가장 반듯한 것으로 한 조각을 골랐더니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말해준다. 왠지 품질에 신뢰가 더욱 간다.
숙소에서 매일 방 정리를 해주는데, 팁을 놔도 가져가지 않는다. 조지를 불러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팁을 받지 않아서 주는 거라고 하니, 좋아한단다. 물이 필요하냐고 물을 2개나 가져다 준다. 나도 누군가 집에 오면 줄 게 생수 밖에 없어 생수를 내미는데,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다. ^^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니 그럼 하나는 내일 주겠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