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2020

시칠리아 여행: 18: 시라쿠자: 성밖 산타 루치아 교회



오르티지아 섬 두오모 광장에 시라쿠자의 수호 성인 산타 루치아에게 봉헌된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la badia가 있다. 그런데 산타 루치아 교회의 원조는 단연 그녀가 박해받고 순교한 장소에 세워진 바실리카 산투아리오 산타 루치아 알 세폴크로basilica santuario santa lucia al sepolcro이다. 산타 루치아 무덤 바실리카 사원. 바실리카는 교황청이 엄청난 가치가 있는 성지로 인정한 교회에 부여하는 이름이란다. 오르티지아 밖에 있다는 의미로 성 밖에 있는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santa lucia extra moenia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있기도 했었다. 교회 밖에 별도로 팔각형 모양의 사원이 있는데,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사원 안에 순교 당시 묶였던 기둥도 있고, 지하에는 그녀가 묻혔던 카타콤베도 있다고... 의미로 보면 당연히 순례 목록에 들어가야 할 곳이다.

그녀의 유해에 관한 여러 설이 있는 모양이다. 팔이 어쩌구, 머리가 어쩌구 하는 말도 있고... 아무튼 원래 이 교회에 있던 성녀의 시신은 지금 베네치아에 있는 루치아 사원santuario di lucia에 있다고 하는데, 온전한 유해가 아닌 대부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시라쿠자 성당에도 일부가 있다는 것으로 봐서... 그녀의 시신이 어떻게 시칠리아를 떠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여러 설 중 하나는 오르티지아 남쪽 끝에 있는 성의 주인공인 비잔틴 장군 마니아체가 콘스탄티노플로 성녀의 시신을 모셔 갔는데 (아랍인들을 손아귀에서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베네치아 기사들이 성녀의 시신을 약탈해 전리품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성인들의 유해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불경하기 그지 없다 싶을 때가 있다. 시신을 훼손해서 막 나누어 가졌다. 보호를 명목으로, 선물로, 때로는 전리품으로... 손톱, 머리카락까지도... 그리하여 박물관에 온갖 재료로 공들여 만든 온갖 크기와 형태의 유골함이 그렇게 많았던 거였나 보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있기만 하면 성인의 권능을 온전히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듯... 줄기세포로 온전한 기관을 만든다는, 심지어 온전한 존재로 복제도 한다는 개념은 성인의 유해를 나누어 갖던 풍습(혹은 전통 혹은 믿음)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닌지... ^^




투어 버스를 타면 교회 근처에 내려준다는데, 걷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지루한 걷기다. 관광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오르티지아의 활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황량하고 텅 빈 뒷골목을 걷게 된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땡볕에 이런 동네를 걷는 일이 재미는 없다.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게 되는 관광객 부부가 있어 루치아 교회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주차장 가는 길이란다.^^ 성수기 시칠리아 관광지는 주차 지옥인 것 같다.


[시라쿠자 산타 루치아 광장piazza santa lucia]


루치아 교회 남쪽에 남북으로 긴 사각형 모양의 광장piazza santa lucia이 있다. 교회와 마주보는 면을 제외하고 광장의 3면을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에워싸고 있다. 심지어 파리의 각 잡힌 가로수처럼 가지치기도 했다. 깨끗이 청소만 하면 아름다운 공간일 것 같은데... 시칠리아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 청소다. 청소... 청소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청소하기 싫은 마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데... 시칠리아에 와서 가는 곳 마다 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처럼 청소 타령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시라쿠자 산타 루치아 사원]

[시라쿠자 바실리카 산투아리오 산타 루치아 알 세폴크로basilica santuario santa lucia al sepolcro]


광장 북쪽 오른편에 산타루치아의 시신이 있던 자리 위에 세운 팔각 사원이 있고 교회는 사원 왼쪽에 따로 있다. 교회 홈페이지를 보니 원래는 오르티지아와 이어진 다리 근처의 작은 항구porto piccolo까지 전망이 확 트여 있었는데, 1920년대 시가지를 확장하며 교회가 주변 건물들에 파묻히게 되었단다. 중요한 교회가 왜 이렇게 뜬금없는 곳에 있을까 했던 궁금증이 풀린다. 마피아의 짓이 아니었을까? 시칠리아의 무계획하고 ugly한, 과거를 지키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형성된 것 같은 도시 변두리 풍경을 볼 때마다 마피아가 떠오르고, 우리나라 도시 건설을 주도한 주체의 본질이 그들과 다르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교회는 6세기 비잔틴 시절에 최초로 지어졌고, 노르만 시절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된 개·보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동쪽에 3개의 큰 앱스가 있고, 입구 등 여러 곳에 비잔틴 시기의 장식이 남아있고, 장미창, 중앙 네이브의 천정 등은 노르만 시절의 흔적이란다. 카타콤베 입구가 있다는 교회 남쪽 벽 포르티코portico도 지어지고 무너지고 다시 고치고를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있다고 한다. 세월은 생명 없는 건물에도 그냥 흐르지 않는다. 건축 양식의 변화뿐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타콤베는 예약을 해야 볼 수 있다 해서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교회도 문이 닫혀있어 안을 볼 수 가 없다. 시칠리아의 모든 것은 문이 닫혀있으면 개방을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방 시간이 아니라 닫아 둔 것인지 당최 구분이 안 된다. 문들이 오랫동안 열린 적 없는 문처럼 보인다. 또 부정확한 정보가 많다 보니, 닫혀 있으면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사연이 있겠지 하고 말게 되지, 뭐 딱히 그 연유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 교회는 닫힌 까닭을 알게 됐다. 목요일이 아닌 오전에는 매일 개방하는데 하필 오늘이 목요일인 거다. ㅠㅠ

언뜻 산타 루치아 사원의 문이 열린 것도 같아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하고 갔더니 문은 열려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니, 인부가 밖으로 나오며 공사 중이란다. 잠깐만 보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그러란다. 공사 중이라 너저분한데, 금방 끝낼 공사는 아닌 것 같다. 시신을 긴박하게 꺼냈다고 자랑하듯 남겨둔 훼손된 벽 안에 있다던 그녀의 유골함도 없고, 그 아래 차려져 있던 제단도 없고, 제단 앞에 놓여있다던, 언젠가 눈물을 흘리는 기적을 일으켰다던 옆으로 누운 산타 루치아의 조각도 없다. 한쪽에 카라바죠의 '산타 루치아의 매장'의 복제화가 벽에 기대 서있다. [지금은 오르티지아의 산타 루치아 교회에 있는 카라바죠의 작품은 이 교회 제단화로 그려진 것이다.] 사원은 시라쿠자 시청을 설계한 죠반니 베르멕시오giovanni vermexio가 설계한 17세기 건물이고, 사원의 아래가 카타콤베의 중심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하 카타콤베 입구는 교회 포르티코portico에 있는데, 보려면 카이로스kairos라는 여행사인지 단체인지를 통해 예약을 해야 한단다. 현장 예약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아무튼 다음에는 꼭 전화(+39 0931 64694)를 해봐야겠다며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