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밖 산타 루치아 교회를 보고 다시 오르티지아로 가서 보트를 탈까 아니면 빨라쫄로 아크레이데palazzolo acreide로 갈까 잠시 고민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보트 타고 섬 주변이나 돌며 쉬라는 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구석에서는 바로크 스타일 입구를 보고 홀딱 반한 교회를 보러 빨라쫄로 아크레이데로 가라 했다. 취향 월드컵을 한다면 산과 바다 중에서는 산이고, 자연과 도시 중에서는 도시인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에 잠시 흔들린 것일 뿐.
무심코 구글 지도에 표시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경로를 따라가다 매일 지나다니다 본 정류장은 지도에 표시된 곳이 아니었던 것이 생각나서 지나다니다 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도에 표시된 곳이 원래 정류장인데, 무슨 이유인지 현재 장소를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버스 정류장은 지도에 표시된 곳이 아니라 움베르토 1세 거리corso umberto I인데, 파르코 델 시라쿠자노parco del foro siracusano를 가로지르는 부분이다.) 길 중간에 있는 에디꼴라edicola라고 부르는 신문 가판대에서 표를 사는 것 같길래, 줄 서서 기다려 표를 달라니, 버스에서 직접 사면 된단다. 오케이~ 좁은 길에 모든 버스 회사의 모든 버스가 다 선다. 매일 지나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버스와 차가 뒤엉켜 난리통이다. 버스는 계속 오는데 행선지 구분이 안 된다. 버스 회사별 정류장이 있는 게 지금까지 여행하며 익힌 상식인데, 여기는 꽤 긴 구간에 버스가 서는데, 회사별 정류장 표시가 없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들도 관광객이라 나보다 나을 게 없다. 다시 에디꼴라에 가서 물으니, 아무데서나 서고, 목적지가 버스에 써 있단다. 오케이~ 묻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시칠리아 여행 못한다 에 한 표.^^ 가만 보니 앞 유리창 위 전광판에 목적지를 표시한 차도 있고, 손으로 쓰거나 인쇄한 종이를 앞 유리창 한 귀퉁이에 붙여 놓은 차도 있다.
엄청난 교통 체증을 뚫고 귀신같이 제 시간에 버스가 나타났다. 그런데 어떻게 제 시간에 왔을까 싶을 만큼 도대체 시내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한 광장largo nicola calipari에 파이 동상이 서있다. 엉? 아르키메데스가 무리수 3.14159... 즉, 파이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단다. 또 어디 가서 전공이 수학이라는 이야기는 하면 안되겠다 싶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또 밝힌다.^^ 그 와중에 앞에 앉은 승객들은 운전사도 포함해서 어찌나 시끄러운지... 애들이 몇이냐, 나이는 어떻게 되냐를 묻는 것으로 보아 구면은 아닌데 저렇게 허물없이 수다를 떨며 즐겁다. 버스 안, 진짜 시끄럽다. 그런데 그들의 소란이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즐거움에 물이 드는 듯...
도시를 벗어나니 보기 드물게 비옥해 보이는 들판이 펼쳐진다. 역사적으로 시칠리아를 서로 차지하려 했던 이유가 첫째는 지정학적 요충지여서이고 둘째는 토지가 비옥해서였다는데, 철도나 고속도로는 비옥한 토지를 비껴서 낸 것인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닌 풍경에서는 비옥함보다는 주로 황량함 느껴졌었다. 들판처럼 드넓게 펼쳐진 하늘에 또 감동한다. 어떤 흑인 청년이 앞으로 와서 내려달라고 하니 out of nowhere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장소에 그냥 내려준다. 정류장 아닌 곳에 내려줄 수도 있다는, 버스는 정류장에만 선다는 경직된 사고를 흔드는 장면이다. ^^ 감자가 그려진 표지판이 있기는 하다.
운전 기사 60대, 아저씨 52세, 아줌마 49세, 아가씨 20대. 대화는 기사 아저씨가 주도한다. 기사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면 재미있다고 박장대소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맞장구를 치고, 아가씨는 웃기만 한다. 저렇게 승객들과 흉허물 없이 온갖 수다를 떨고 다니면 버스 운전이 즐거운 직업일 것 같다. 맞장구를 치는 아줌마와 아저씨가 내리니 버스 안이 한층 조용하다 했는데, 뒤에 앉아있던 청년이 앞으로 와서 대화에 낀다. 아가씨는 계속 운전석 옆 보조석에 앉아있었고, 청년은 그냥 버스 바닥 턱에 앉아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떤다. 참 낯선 풍경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또 산 꼭대기에 있는 마을인가보다. 구름이 심상치 않다. 돌아갈 때까지는 별일이 없기를. 버스에서 내리니 막차까지 딱 세 시간 있다. 두 시간여 동안 마을을 둘러 보아야 한다. 마음 속으로 대박이처럼 '할 수 있다'를 외쳐본다.
P.S. 시라쿠자에서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가는 교통편
평일에(공휴일을 제외한 월-토) AST버스가 있다.- 버스 시간표 (1시간 15분 소요). 단, 시간표는 다시 확인할 것.
시라쿠자>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월토: 06:45/ 09:00/ 11:00/ 12:00/ 13:10/ 14:00/ 14:10/ 15:30/ 17:30/ 19:30/ 20:00; 일: 없음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 시라쿠자: 월토: 05:50/ 06:10/ 06:50/ 06:50/ 07:50/ 08:10/ 11:20/ 13:20/ 13:20/ 13:20/ 14:30/ 17:30; 일: 없음
- 버스 정류장
시라쿠자: 움베르토 1세 거리corso umberto I 중간에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에디꼴라edicola(신문, 잡지 가판대) 주변에 버스가 선다. 표는 기사에게 사면 된다.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아래 지도에서 아그리꼴라 포풀라레 디 라구자 은행banca agricola popolare di ragusa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돌아오는 버스도 내린 곳에서 탄다. 아래 사진에 서있는 버스가 AST 버스이고, 저 위치가 정류장이다.
[시라쿠자 버스 정류장 신문가판대edicola. 저 주변으로 버스가 선다. 구글 지도와 사진]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지도와 버스 정류장. 구글 지도와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