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자 오르티지아 입구]
저녁 식사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으니 이제 맛있는 저녁만 먹으면 완벽한 하루다. 아 푸티아a putia에 자리를 잡기에는 조금 늦었다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부지런히 걸었지만, 역시 자리가 없고, 이미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한 바닥이다. 생일이자 시라쿠자 마지막 밤의 저녁이고 뭐고, 빨리 먹고 들어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숙소에서 가까운 카스텔로 피오렌티노의 해물 샐러드는 나쁘지 않고, 부루스케따는 편차가 별로 없는 음식이니, 그렇게 먹으면 되겠다 싶어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부르스케따가 어디 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틀렸다. 빵부터 완전 다르고 심지어는 올라간 토마토도 다르다. 아 푸티아의 부르스케따가 열 배는 맛있다. 요리사의 부족한 솜씨를 와인으로 만회해보려는 듯 와인은 한 사발을 준다. 아무튼 시킨 것을 다 먹었더니 배불러 죽을 것 같은데, 서비스라고 레몬 그라니타를 두 잔이나 준다. 서비스를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다 먹었다.
웨이터들은 너무 바빠 보여 카운터를 지키던 여자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했는데 안 준다. 언제든 주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여자는 뭐가 불만인지 목소리를 높여가며 계속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이야기하며 제 볼일만 보고 다닌다. 생각해 보니 첫 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허기와 피곤을 이기고 다른 맛집을 찾았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일어난다. 그냥 가면 어떻게 하나 두고 보고 싶기도 하다.^^ 조금 더 기다리다 들으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영어로 최대한 쌀쌀맞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서둘러 계산대로 돌아가 계산서를 뽑는다. 잔돈 40전을 받아야 하는데 됐다고 하니, 고맙다며 굽신거린다. 언제부터 그리 공손했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뭔가 좋은 할 말이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밤비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세상 어디에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면 무례로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언짢은 기색을 보이거나 돈 몇 푼을 주면 금방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씁쓸하다.
팔라쫄로 아크레이데 유감
팔라쫄로 아크레이데는 바로크 타운 중에서 관광지로 꼽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우연히 본 교회chiesa dell'annunziata의 정면에 꽂혀 가게 됐다. 그런데 뭔지 모르게 좋았다. 어제 모디카에서 느꼈던 것이 알 수 없는 불안이라면 오늘 팔라쫄로에서 느낀 것은 알 수 없는 편안함과 따뜻함이었다. 더 작고 더 소박하고 더 낡고...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더 좋다고 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이 느낌의 이유를 모르겠다. 말라도 젖은 느낌, 밝아도 어두운 느낌, 맑아도 흐린 느낌. 살림이 넉넉하진 않아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니, 풍요롭고 여유롭고 품격 있는 삶을 다 스러져가는 듯 위장한 채 사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팔라쫄로 아크레이데는 방문한 도시들 중 유일하게 계획에 없었던 도시였는데, 깜짝 선물 같았다. 평화롭고 신비하고 따뜻했다. 누군가 축하를 전하려 그곳으로 이끌었던 걸까? 초월적 존재를 굳이 부정하지는 않아도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끔 그 기운을 부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고,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섬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있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