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카 피쪼 전망대에서 본 풍경. 위 사진 풍경 속 길이 움베르토 1세 거리. 아래 사진 속 중앙에 산 죠르죠 성당이 보인다]
산 죠반니 교회 북쪽에 산타 마리아 디 제수santa maria di gesu 수도원과 교회 건물이 있다. 15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카브레라cabrera가문 공주의 결혼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는데, 사진으로 보니 회랑과 교회 입구 등 로마네스크-고딕 양식 요소들이 예쁘다. 너무나 좋아하는 로마네스크 스타일 유적이 비교적^^ 지척에 있음에도 한쪽 하늘을 뒤덮은 짙은 검은 먹구름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시간도 빡빡한데 이 분위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싶다. 피쪼 전망대pizzo belvedere로 발길을 돌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100여년 전까지는 강이었다던 움베르토 1세 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곳에 물이 흘렀을 때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모디카에서 전망대로 꼽히는 장소는 세 곳이다. 성당 맞은 편 전망대belvedere di san benedetto, 성castello dei conti과 성의 시계탑, 그리고 피쪼 전망대pizzo belvedere. 언덕에 자리잡은 도시가 많아 산비탈에 층층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과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전경은 시칠리아에서 흔한 풍경이지만 언제나 감동이다.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느껴진다. 각각은 보잘것없을지라도 다닥다닥 함께 있으면 아름다운 어떤 것이 된다는, 나는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모디카 카페 테라짜 치오모드]
전망대 광장에 테라짜 치오모드terrazza ciomod라는 초콜릿 가게가 있다. 보나후토bonajuto가 모디카에서 제일 오래된 초콜릿 메이커지만, 치오모드도 명성이 있는 주요 초콜릿 메이커인 듯 하다. 좀 쉬고도 싶었고, 보나후토는 깜빡 했더라도 모디카에 왔는데 그래도 초콜릿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갔다. 아까 초콜릿 박물관에서도 조금 먹어보긴 했는데, 가게에 들어오니 온갖 맛의 초콜릿 시식이 가능했다. 이것저것 먹어봐도 역시 첫 입에 홀딱 빠지는 맛은 아니다.
시칠리아 도착 이튿날 팔레르모 카포 시장에서 샀던 모디카 초콜릿이 열흘이 넘도록 배낭에 그대로 있는데, 또 사봐야 먹을 것 같지 않고, 메뉴판에 나열된 것도 딱 먹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초콜라따 칼다가 있냐고 물으니,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향을 선택할 수 있느냐고 하니까, 그냥 클래식한 조합인데 원하면 오렌지나 뭐 또 다른 향(익숙한 것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중 하나를 공짜^^로 넣어 주겠다고 한다. 오렌지 향을 넣어 달라고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 있다 아저씨가 주문한 초콜라따 깔다와 비스킷 한 조각, 그리고 이미 여러 번 갈린 흔적이 있는 오렌지 하나를 가지고 왔다. 넣어주겠다던 오렌지 향은 생 오렌지 껍질을 넣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진한 오렌지 마말레이드 향을 기대했지만, 생 오렌지 껍질 향도 나쁘지 않다. 농도는 일반 초콜라따 깔다의 농도였다. 스페인에서 츄러스를 찍어먹는 정도의 농도. 초콜라따 깔다를 먹을 때마다 농도를 어떻게 내는지 궁금했었다. 마침 가게에 마침 손님도 없어 실례는 아니겠다 싶어 물어보니, 설탕과 카카오를 넣고 까룸바라는 것으로 농도를 낸다고 한다. 카룸바는 밀가루나 녹말과 다르다고 한다. 어쩐지... 탕수육 소스의 질감도 아니고 크림 스프의 질감과도 다르다.
계산하려는데 종류별로 맛보게 해놓은 초콜릿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아까 주인이 다른 손님 응대하는 동안 기다리며 종류별로 거의 다 먹어보고 초콜라타 깔다를 시킨 것... 벌써 다 먹어봤다니까, 웃는다. 주인 아저씨가 영어는 못하지만 매우 친절하고, 물어보면 비록 이탈리아어지만 성심 성의껏 설명해 준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왠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
[모디카 풍경. 이렇게 검은 먹구름을 본 적이 있던가...]
하늘에 검은 기운이 가득해졌다. 먹물에 담갔다 꺼낸 듯한 검은 구름이 건물을 삼킬 태세다. 초자연적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면 곧 악의 무리나 고난이 닥쳐오리라는 전조로 느낄 것 같다. 나는? 뭐... 뜻대로 알아서 하시겠지...^^ 마지막으로 산 니콜로 교회chiesa di san nicolò inferiore를 들르자 하고 방향을 잡고 걸었다. 비잔틴 프레스코화가 있으니 바로크에 질렸다 싶으며 가보라는 말에 혹했다. 바로크 도시답게 발코니를 받치는 기이한 코벨 조각이 있는 저택들 있다. 그 와중에 리버티 스타일로 장식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모디카 코벨 조각]
[모디카 리버티 스타일 건물]
교회 근처인 것 같은데 길이 복잡해서 방향을 잘 모르겠다. 지나가는 여자를 붙잡고 물으니 따라오라고 한다. 계단을 엄청난 속도로 내려간다. 일하러 가는 길이란다. ^^ 나도 단련이 될 만큼 됐는지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진다. 이곳에 사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따로 운동할 필요는 없겠다 했더니, 그렇다며 웃는다.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손을 흔들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같은 속도로 내려간다. 어찌나 쿨한지...^^ 그런데 교회 문이 닫혀있다. 시간표에 따르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돌아선다.
안녕, 모디카.
시라쿠자로 돌아가는 기차 안. 다들 앞칸이 시원하다며 앞칸으로 가길래 귀찮음을 물리치고 나도 앞칸으로 한 번 와봤더니 1등칸이라는 표시가 있다. 분명 표는 한 종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무식을 무경우로 오해받을까 싶어 검표원에게 물으니 다 2등칸이란다. 옛날 기차라 그렇단다. 그 말에 문득 파올라 생각이 난다. 며칠 전 피아짜 아르메리나에서 옛날 시간표를 그대로 붙여두면 어쩌냐고 버스 기사에게 마구 화를 내었는데, 오늘도 비슷했을까? ^^ 칼타지로네에서 하루 자고 카타니아로 간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기차 앞칸은 에어컨도 나오는지 춥다.
노토 도착. 이제 30분정도 가면 된다. 시라쿠자에서 모디카까지 오고 가는데 대여섯 시간 가량. 기차 시간만 하면 네 시간인데, 전후 여유를 두고 역까지 걷고 하는 시간을 다 치면 그렇게 걸린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가며 하는 일이 많다. 일단 늘 부족한 휴식을 좀 채우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조용히 생각도 하고 풍경 구경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이 시간도 없으면 계속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만 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시라쿠자 말고 라구자에서 당일치기를 했으면 오가는 시간을 좀 줄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