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벌써 그립다. 바닷가를 걸으러 동쪽 바닷가에 나갔더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요새forte vigliena 주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고 낚시하는 아저씨도 있다. 진짜 고기가 잡힐까 싶어 기웃거리니 잡은 고기를 보여준다. 고기가 낚이니 낚시를 하겠지...^^
쥬데까giudecca라고 불리는 유태인 구역 골목을 좀더 걸어보고 싶어 골목으로 들어갔다. 손바닥만한 오르티지아 동남쪽, 그러니까 비아 로마via roma 동쪽, 비아 델라 마에스트란자via della maestranza 남쪽 지역을 말한다. 이 작은 구역에 교회도 많고, 박물관, 극장, 레스토랑, 바 등 없는 것이 없다. 지금 오르티지아에 사는 유태인은 많지 않은데 예전(육칠백 년전...^^) 이름이 지금까지 사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구역에 미크베mikveh라는 유태인 공동 목욕탕bagno ebraico이 있다. 대중 목욕탕이 아니라 유대교 식으로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위한 곳이라고 한다. 6세기경 만들어졌는데 15세기 스페인 종교재판inquisición 시절, 유태인들이 오르티지아에서 쫓겨나며 입구를 숨겨놓고 가서 잊혀진 채로 있다가 1986년 호텔로 개축하며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칠리아에 와서 완전히 잊혀졌다 최근에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듣는다.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잊혀질 수 있을까. 지금도 그렇게 망각의 강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있을까?
[시라쿠자 유대인 공동 목욕탕 밖 풍경]
[시라쿠자 바뇨 에브라이코bagno ebraico. 인터넷 사진]
목욕탕은 알라 쥬데까alla giudecca이라는 호텔 지하에 있는데,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다기 보다 사람들이 오면 그때그때 안내를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비가 너무 삼엄하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 함께 보게 됐는데, 목욕탕과 이어진 대기실을 문을 모두 잠그더니, 이곳에 아무도 못 들어오니 염려 말고 소지품을 모두 놔두고 지하로 내려가라고 한다. 목욕탕이 습하고 미끄러워 안전상의 이유라고 하는데, 선뜻 수긍이 어렵다. 난 배낭인데... 엄밀히 말하면 배낭은 넘어졌을 때 완충물 역할을 하는 보호장구인데...^^ 진짜 이유는 유대인 시설이 테러의 대상이 되기 쉬운 탓이지 싶다. 그리고 신성한 곳이니 사진도 찍지 말라고 하는데, 이곳도 인터넷에 구석구석 찍어 올린 사진이 다 있다.^^
지하 암반을 깎아내서 목욕 시설을 만들었다. 여흥을 위한 목욕탕이 아니어서 부수적인 것들은 없고 돌을 파낸 욕조가 몇 개 있다. 깊은 풀에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었다. 아치도 있고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모양으로 돌을 깎아내 공간을 만들었지만 솜씨 좋은 장인의 솜씨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대교에 의식을 거행하기 전 몸을 정화하는 의식이 있고, 아주 오래 전 이곳에 유대인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싶을 만큼 공간 자체는 별 매력이 없었는데, 이런 공간을 파내도 될 만큼 지반이 거대한 암석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물은 깨끗해 보이는데, 석회가 많아 마실 수는 없다고 한다. 다른 설명도 많이 들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
[시라쿠자 산 필리포 아포스톨로 교회. 아래 오른쪽이 미크베mikveh 입구]
다니다 보니 근처 산 필리포 아포스톨로 교회chiesa di san filippo apostolo에도 미크베가 있다. 안내서에 나오지 않은 것을 보니 공개된 지 얼마 안됐나 보다. 사진으로 보면 이곳 미크베가 더 커 보인다. 교회 네이브 중간에 목욕탕 입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교회지만 당시에는 유대교 회당이었을 것 같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는 없고 요청하면 안내를 해주는 것 같은데, 하나 봤으니 됐다 싶다.
[시라쿠자 산 죠반니 바티스타 교회chiesa di san giovanni battista]
[시라쿠자 쥬데까 풍경]
골목 골목 걸으며 구경했다. 작은 교회들, 저택의 바로크 장식들, 기념품 가게... 화분만으로도 평범한 골목이 아름다운 골목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골목via del crocefisso. 한 좁은 골목에 베스파가 서있다.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한번 타보고 싶다. 내가 과연 저걸 타고 차들과 경쟁하며 도로를 다닐 수 있을까? 문 열려 있으면 들어가서 보고 닫혀있으면 말고, 걷고 사진 찍고... 내 여행 취향은 고적 탐방 보다 이런 쪽이다 싶다. 그렇다고 고적 탐방 숙제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너무 내내 숙제만 하고 있나 싶다.
스카프를 파는 가게가 있다. 혹시 손수건이 있을까 싶어 들어갔다. 가게를 지키던 여자가 안락의자에 기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몇 번의 인기척을 하니 그제서야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 미안하다며 일어난다. 이 섬의 일상이 느껴진다. 혹시 손수건으로 쓸만한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모두 실크라고 한다. 모두 자기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하며,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준다. 천을 직조하는 것 빼고 그야말로 완전 수제 스카프. 스카프 가장자리 마무리까지 다 손으로 한단다. 그곳이 공방 겸 가게다. 영어의 억양이 시칠리아 사람은 아니라 출신을 물으니 영국사람이라고 한다. 시칠리아에 온지는 십오륙 년 됐다고.
내가 한국사람인 것을 알고는 우리말로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센다. 디자인 학교 다닐 때 한국인 친구가 있었단다. 손수건을 사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파는 곳이 없다고 하니, 작은 스카프를 권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인데, 밖에 걸어 전시를 했는데, 주변 건물에서 페인트 칠하다 페인트를 떨어뜨려 자국이 남았는데, 별 수를 다 써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싸게 줄 테니 손수건으로 쓰란다. 색도 마음에 들고 흠이 있는데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만져봐서는 전혀 수분을 흡수할 태세가 아니다. 그래도 천연 섬유이니 땀 정도는 닦을 수 있겠지 싶어 그러마 했다. 아니면 스카프로 쓰면 되니까... 그런데 역시 손수건으로 쓰긴 무리였다. 그 밝고 맑고 명랑한 여자는 페인트 묻은 스카프를 내게 잘 처리했고, 나도 그 스카프가 싫지 않다. 인터넷에 drawnonsilk라고 치면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