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2020

시칠리아 여행: 16: 시라쿠자: 산 죠반니 교회와 카타콤베



[시라쿠자 산 죠반니 교회]

로마 통치 시절 기독교인은 도시 안에 무덤을 쓸 수 없었다. 당시 시라쿠자의 규모가 줄어 본토는 시외에 해당하게 되었고, 그러므로 본토에 기독교인의 묘지인 카타콤베가 형성되게 되었다. 고고학 박물관 바로 옆에 카타콤베로 유명한 산 죠반니 교회basilica di san giovanni가 있다. 이 밖에도 비냐 카시아vigna cassia 카타콤베도 있고 성 밖 산타루치아 교회chiesa santa lucia extra moenia 지하에도 카타콤베가 있다.

팔레르모에 유명한 카타콤베catacombe dei cappuccini가 있다. 수천인지 수만인지 하여튼 엄청나게 많은 시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에 어린 소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 소녀의 별명은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 그 소녀를 보려고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했다. 하지만 어떤 여행기에서 오래된 인형의 머리카락처럼 뒤엉킨 채로 사망 당시 유행하던 차림새를 한 시신의 텅 빈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글을 읽고, 원래 없던 볼 생각을 더 굳혔다. 그런데 조지가 이곳 카타콤베는 가볼 만하다고 했다. 시신 없는 카타콤베는 로마에서도 가본 적이 있어 거부감이 없었다. 시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피하는 건 아니다. 나는 사후에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할 뿐이다. 안내 투어로만 볼 수 있다는데 문 닫기까지 한 시간쯤 있으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구로 들어 갔더니 직원이 서둘러 5유로를 내라며 이미 투어가 시작됐으니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투어는 다 무너지고 벽만 조금 남은 교회와 시라쿠자 초대 주교 산 마르치아노 묘지를 보고 카타콤베를 보는 코스인데 카타콤베 입구에서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다.

카타콤베는 당시 더는 사용되지 않던 고대 그리스 수로를 재활용한 것이란다. 지하 공간이라 공기가 서늘했다. 제법 넓은 주 통로가 있고 통로에서 가지가 자라 뻗어나가 듯 확장된 것 같다. 3세기에서 6세기까지 묘지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말투까지 잊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꼭 닮은 가이드가 엄숙한 어조로 신성한 곳이니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한다. 시신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초상권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 당연하다 싶겠지만, 시신도 없고 사용하지 않은지 천 년도 더 된 장례 공간이 신성하다는 이유로 카메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곳일까 싶다. 설마 카메라가 혼령을 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을까... 그러라고 해도 그럴 사람이 있을까? 


[산 죠반니 카타콤베 사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사진을 찍어 벽에 붙여 놓았다. 오른쪽 위가 로쿨로loculo, 오른쪽 아래가 아르코솔리오arcosolio]

로마의 카타콤베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거주하고 몰래 기도를 했던 곳이었다면, 이곳은 그냥 묘지였다. 현재 납골당의 지하 동굴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신분이나 지위, 경제적 형편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도 여전하다. 형편에 따라 세가지 형태의 매장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로쿨로loculo, 아르코솔리오arcosolio, 포르마forma. 로쿨로 방식은 사각으로 벽을 뚫고 시신을 안치하고 뚫린 면을 타일이나 대리석 등으로 막는 방식, 아르코솔리오는 아치 모양으로 파낸 후 아치 바닥을 관처럼 파내 시신을 안치하고 뚜껑을 덮는 방식, 포르마는 통로 바닥을 파서 매장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럼 성당이나 교회 바닥에 수없이 많은 무덤이 포르마forma 방식인가? 아무튼...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르코솔리오 방식이었고, 포르마 방식은 경제적인 이유나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택했단다. 아르코솔리오 방식의 한 무덤 뚜껑에 구멍이 세 개 있다. 영생으로 가는 길에 먹고 힘을 낼 와인과 우유, 꿀을 부어주던 구멍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던 공간이었다는 여러 개의 아치가 있는 둥근 공간rotunda에 고고학 박물관에서 본 아델피아의 석관의 모조품이 있다. 이곳에 있던 귀한 장례 용품들이 대부분 도굴을 당했는데, 다행히 이것은 도굴을 면했다고 한다. 석관 뚜껑 오른쪽의 예수 탄생 장면은 예수 탄생 도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가장 오래 됐다는 건지...


[시라쿠자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아델피아의 석관. 맨 위층의 띄가 뚜껑이었다고 함.]


카타콤베 투어가 끝나니 다시 매표소로 나온다. 처음에 보지 못한 교회와 묘실을 보려 하니 그곳도 가이드와 동행해서만 볼 수 있는지 입구가 닫혀 있었다. 직원에게 그곳을 어떻게 보냐 물으니, 15분 후에 시작하는 다음 가이드 투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까 내게 표를 팔고 서두르라고 재촉했던 젊은 여자가 내가 산 표로는 볼 수가 없다고 하며 나선다. 이유를 물으니, 할인된 가격의 표라서 그렇다며, 그곳을 못 보기 때문에 이미 할인을 받은 것이란다. 게다가 말투가 할인된 가격에 다 보겠다는 몰염치한 관광객 취급이다. 딱 기가 찬다. 마지막 투어라 선택이 없었다면 몰라도, 다음 투어가 있는데, 왜 네가 네멋대로 내 관람을 이미 시작된 투어의 중간에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했냐고? 그래서 나머지 입장료를 내고 기다려서 보겠다고 하니, 아까 안내했던 아저씨가 개입해서 그 여자에게 뭐라뭐라 한다. 그랬더니 기세가 수그러들며 그럼 그냥 기다렸다 못 본 것만 보고 가란다.

기다리고 보니 그 여자가 이번 투어 안내자였다. 그 여자... 교회와 산 마르치아노 묘지cripta di san marciano를 안내를 마치기가 무섭게 나를 콕 집어 너는 여기서 나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내가 카타콤베로 따라 들어갈까 너무 염려가 됐던 것은 아닐 거다. 조금 전 내 앞에서 박살난 권위를 어떻게든 수습해 다시 세워보려는 안간힘일 것 같다. 얼마 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이 너무 각박한 걸까? 그렇게 살지 말지...





산 죠반니 교회는 산 마르치아노의 지하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17세기까지 시라쿠자 성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러 번의 재건축 되었지만 1693년의 지진으로, 1908년 지진으로 현재 모습으로 남았다고 한다. 지붕은 없고 풀이 자라고 있는 두 개의 정면과 벽, 기둥, 아치 등이 남아있지만, 그냥 남아있는 것들을 살려서 만들어 놓은 공간의 느낌이 좋다.


[시라쿠자:산 죠반니 교회. 산 마르치아노의 지하 묘지와 성 바오로가 설교를 했다는 제단. 인터넷 사진]

이 교회는 산 죠반니에게 봉헌됐지만, 주인공은 산 마르치아노 san marciano 같다. 안내서에 의하면 시라쿠자의 첫 번째 주교였던 그는 254년에 성인의 지하 묘지 기둥 중 하나에 묶여 매질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어떤 곳에는 그가 1세기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베드로 성인의 제자였고, AD 35년 베드로 성인의 뜻으로 이곳으로 보내졌다고 하니, 그가 1세기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전설도 아니고 역사인데, 1세기 사람이 254년에 순교할 수는 없지 않나... 뭐, 그런가 보다 하지만, 보면 볼 수록 시칠리아 역사학자의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산 마르치아노는 산타 루치아와 함께 시라쿠자의 공동 수호성인이란다. 산 마르치아노의 묘지 겸 예배당에 비잔틴 시대의 것이라는 프레스코화가 있다. 그런데 산 마르치아노의 유해는 지금 이곳에 없다. 아랍 세력에 정복당한 후, 성인의 시신이 훼손당할까 염려해서 옮겼는데, 지금은 엉뚱한 곳에 가있다고 한다. 한 앱스에 작은 제단이 있다. 바오로 성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길에 설교를 했던 제단이란다. 이곳도 사진 엄금이다. 사진 인심이 참 야박한 곳이다. 관리 주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엄숙주의에 빠진 것 같기도... 궁금하면 인터넷 찾아보면 된다. 인터넷에 다 있다. [오르티지아에 있는 대성당 정면 제일 왼쪽 기둥 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 마르치아노 성인이다. 대성당 안에 그에게 봉헌된 예배당도 있다. 몬레알레 성당에도 그의 모자이크가 있다.]


[왼쪽은 몬레알레 성당 모자이크 속 산 마르치아노(아래 가운데 인물). 오른쪽은 시라쿠자 대성당의 산 마르치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