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그리스 극장]
[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그리스 극장. 객석이 세월에 깎여 자연과 많이 가까워졌다. 터키인의 계단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듯...]
그리스 극장teatro greco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드디어 이 공원의 주인공인 반원형 대리석 극장이 새파란 하늘 아래 쫙 펼쳐져 있다. 와... 흰 대리석이 햇빛에 반사돼 더 새하얗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 공간에 실제로 서보지 않고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
역시 돌 비탈을 깎아서 만든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극장이라고 한다. [그리스 극장의 특징이 되도록 자연의 암반을 극장모양으로 깎아 만드는 거라고...] 그리스 극장에서 보이는 풍광은 <<세제스타>>가 최고이지만 보존 상태는 이곳이 최고지 싶다. 시칠리아 남아 있는 그리스 극장 중 가장 크고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그리스 고대 문자로 히에론 2세hieron II라고 쓰인 좌석 표시도 있다는데 못 찾았다. [극장의 상부와 하부를 구분하는 가로 통로 벽에 'BAΣIΛEOΣ IERΩNOΣ'(히에론 왕), 'BAΣIΛIΣΣAΣ ΦIΛIΣTIΔOΣ'(필리스티스 여왕) 등 왕과 왕비의 이름이 쓰여있는데 마모가 심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단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고 여러 번 증·개축을 거쳤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이곳 역시 검투사들의 싸움에 적합하게 바꿔서 검투사 시합을 열었단다. 극장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데, 매표소에서 본, 보기 드문 홀로 여행자 홍콩 아가씨가 셀카봉을 들고 셀카에 열중이다. 셀카봉으로 각이 나오기 어렵겠다 싶어 찍어주냐고 물으니 거절은 하지 않지만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나름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나도 누가 사진 찍어주겠다면 호의가 고마워 거절은 안 해도 그닥 반기지 않으면서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 ^^
극장 꼭대기에 올라가니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극장 위쪽으로 고대 수로를 타고 흐르는 물이 작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동굴grotta del ninfeo과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거나 무덤으로 사용된 돌을 파낸 작은 굴들이 있는 거리via dei sepolcri가 있다.
[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무덤들의 거리via dei sepolcri]
[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천국의 채석장 풍경]
표지판을 따라 천국의 채석장들latomie del paradiso로 갔다. 시라쿠자에 있는 채석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채석장이라고 한다. 지금은 정원처럼 가꾸어져 있어 채석장이었던 흔적이 거의 없는데, 디오니시우스의 귀와 밧줄 장인의 동굴grotta dei cordari이 채석장이었음을 알려준다. 천국의 채석장들이란 이름은 언제 붙여진 것이었을까? 역설적인 이름이다. 채석장에서 일했던 일꾼들은 대부분 전쟁포로나 노예였다고 한다. 이승에서 지은 모든 죄를 떨어낼 만큼의 고된 노동이 제공되는 곳, 그래서 때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곳, 그렇게 이승을 떠나면 천국에 닿는 되는 곳... 그런 뜻을 담은 이름이라면 그럴듯하다.
[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밧줄 장인의 동굴 grotta dei cordari]
밧줄 장인의 동굴 안에는 물도 있고 깊이도 깊어 밧줄 장인들이 수 세기 동안 작업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습해서 밧줄 가닥이 부서지지 않아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이 동굴 안에는 천정의 붕괴를 막으려 기둥 모양으로 남겨둔 돌도 있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사각 기둥 모양의 돌도 있는 등 채석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붕괴 위험으로 더 이상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라쿠자 고고학 공원. 디오니시우스의 귀orecchio dionisio]
조금 더 들어가니 디오니시우스의 귀orecchio dionisio가 나왔다. 고대 건축물에 쓰인 돌을 채취하다 생긴, 높이가 23미터에 달하고 깊이는 60미터나 되는 S자 모양 인공 굴인데, 입구가 귀 모양으로 생겼다. 입구 밖에서부터 마이크 테스트하듯 울림을 즐기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울림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무려 16번의 반향이 일어난단다. 사진으로 볼 때는 이곳이 이렇게 유명해야 할 이유를 공감할 수 없었는데, 들어가보니 공간의 생김새와 규모, 그리고 소리의 울림이 신비로움을 일으킨다. 간간히 비둘기도 푸드덕거리며 날고... 사람들이 노래를 한 구절 부르기도 했는데, 끝까지 멋있게 부르는 사람은 없다. 노래를 잘하면 한 곡 부르고 싶은 분위기다.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흥얼거리는 소리가 울림 때문에 듣기 좋다. 시라쿠자의 유명한 유적 중에 사진으로 봐서는 명성을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아레투사의 샘과 바로 이 디오니시우스의 귀일 것 같다. 상상보다 훨씬 웅장하고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신비함이 있다.
채석장 굴들이 종종 감옥으로 사용되었단다. 아테네와 전쟁을 하던 당시 7천명의 포로를 이곳에 가두었었다고 한다. 시라쿠자의 폭군 디오니시우스 1세dionisius I도 이곳에 정적을 가두고 입구 위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시라쿠자의 가장 유명한(?) 손님인 카라바죠가 디오니시우스의 귀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데 채석 방식이 신기하다. 돌을 돌산 꼭대기에서부터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파낸 것이다. 그러니 탄광처럼 굴이 생겼고, 붕괴를 막으려 중간 중간 돌기둥 모양으로 천정을 지탱하도록 돌을 남기며 채굴했단다. 지금은 공개되지 않는 밧줄 장인의 동굴 안 사진을 보면 돌을 잘라낸 분명한 흔적이 있는데, 디오니시우스의 귀에서는 채석의 흔적이 얼핏 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동굴 깊숙이 들어가면 석공의 끌 자국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공원 안에 천국의 채석장 말고도 산타 베네라의 채석장latomia di santa venera 등 다른 채석장들도 있고 로마시대의 공동묘지necropoli grotticelle도 있다고 한다. 안내서가 영 부실해서... 그 공동묘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무덤에 아르키메데스의 묘tomba di archimede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잘못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시라쿠자 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뭐든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 실제 아르키메데스의 묘는 어디인지 모른다고 한다.
시칠리아에서 그리스 세력의 본산이었던 시라쿠자에는 다른 그리스 유적지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보고 싶은 관심이 생길 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미 too much of greek이라는 느낌도 있고, 제한된 시간에 후다닥 보고 감동하기에는 너무 형체가 없고, 그것을 즐길만한 상상력과 지식이 없고... [그런데 묵은 여행기 정리하며 새삼 감동하고 그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