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2020

시칠리아 여행: 17: 시라쿠자: 하루를 마치며



저녁 식사


[시라쿠자 오르티지아 레스토랑 아 푸티아]


기차에서 내려 어제 문 닫아서 못 먹은 식당 아 푸티아a putia으로 달려왔다. 이곳 저녁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자리가 꽉 찼다. 캐주얼한 인테리어도 예쁘고 테이블 셋팅도 예쁘다. 옆 테이블에 나온 부루스케타가 맛있어 보여서 시키고,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시켰다. 고기와 채소가 고팠다. 

부루스케타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다. 빵에 올린 것들이 다 달랐다. 게눈 감추듯 먹었다. 아까부터 힐끗 거리던 옆 테이블 부부가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나오니 시선이 더 대담해졌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으면 힐끗 거리지 말고, 인사를 하고 물으라고!!!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미치지 않고는 예의를 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렇게는 못하고 참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못 참고 그들의 시선을 응대하며 내가 너무 많이 먹니? 하고 물었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는지 당황한 듯 하더니 상투적 예의를 지키며 아니라고 대꾸했다. 점심을 못 먹어서 말 한 마리도 먹을 수 있어 라고 말하고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라 이름을 대는 대신 아주 작은 나라라고 하며 너는 아주 큰 나라에서 왔음이 틀림없다고 한다. 중국사람으로 봤다는 뜻이다. 참나... 왜들 그렇게 소신이 있는 건지... 역시 그렇게 global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니라고 나도 아주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다시 물으니, 알아 들을 수 없는, 처음 들어본 나라에서 왔단다. 그래서 지도를 열어 어디에 있느냐고 했더니,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 작은 섬을 가리킨다. 아일 오브 만isle of man. 그래서 영국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하며 우물쭈물 대답하고 만다. [나중에 찾아보고 나서 그들의 대답이 왜 그렇게 애매했는지 이해했다. 영국 왕실에 속하는 땅이고 영국의 보호를 받지만 자치령이나 다름없는, 내게는 신개념인 나라였다.] 내 친구들 중에 '만'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웃는다. 

혼자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 하니, 무척 용감한가 보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다 했다. 오기 전에는 겁이 많이 났으나 와보니 안전해서 지금은 마음껏 즐기고 있다고 했더니, 자신들도 그렇다고 한다. 남편이 한국 사람과 비즈니스를 한다며, 그 사람의 이름이 '은정'이란다. 그래서 한국 이름 맞고, 한국에서 많이 쓰는 여자 이름이라고 했더니, 여자가 맞는다면서 자기가 발음을 제대로 했냐고 묻는다. 아주 정확했다고 하니 좋아한다.

힐끔거리는 시선에 매우 익숙함에도 허기 탓인지 그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에 짜증이 났었다. 불쾌함을 돌려주고 싶은 걸 참고 말을 건네 이야기를 나눠 보니 교양(?)이 있지는 않았어도 그리 무례하거나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고, 역시 언짢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구상에 아일 오브 만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시선에 신경질 부리지 말고 그러려니 순하게 받아들이거나 눈 마주치면 인사로 공격(?)하는 게 최선의 복수이지 싶다.^^


숙소에 돌아와보니 무화과를 넣은 쿠키 두 개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어제 토로네에 대한 보답인가보다. 먹다 보니 다 먹으면 달아서 죽을 것 같다. 그래도 배고프면 맛있을 거야 하고 놔두었다.

원래 하루에 두 끼를 먹어 아침 먹고 이른 저녁을 먹는 게 자연스럽지만, 활동량이 많아 점심을 챙겨 먹으려 하는데 시간이 나지 않는다. 다른 여행에서는 조금 늦게라도 점심을 챙겨 먹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매일 굶주린 배를 붙잡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정신 없이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돌아다니다 모든 것이 문을 닫는 6시 이후쯤 뭔가 먹고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인다. 엄청 바쁜 여행이다.





모디카 유감


모디카는 계단의 도시였다. 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계단이 많은 곳은 처음 봤다. 시칠리아 여행을 하려면 무엇보다 무릎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14곳을 다녔는데 그 중에 평평한 곳은 4곳 밖에 없다.

시칠리아의 도시들은 정돈된 깔끔한 느낌은 주지 않으려나 보다. 왠지 실제 인구보다 3배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고 느껴질 것 같다. 도로는 주차된 차들로 빽빽하고, 그래서 더욱 좁아진 좁은 골목 골목 사이로 차들이 질주한다. 가뜩이나 좁은 인도마저 차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때때로 인도를 걸으면서도 팔이 다소곳이 안으로 모아진다, 질주하는 차와의 마찰이 염려돼서... 지금까지 도시가 대부분 그랬고 모디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모디카만 그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곳에서 마음이 안정이 안됐다. 보나후토에 가겠다는 것도 잊고, 성당 맞은편 언덕 전망대 올라 성당 정면을 제대로 감상하겠다는 것도 잊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뜬금없어 보이는 야자수들 때문이었는지, 궁합이 맞지 않는 땅이 있는 것인지, 시시각각 몰려오는 먹구름 때문이었는지, 원래 강바닥이었던 길을 따라 수맥이 도시를 휘감아 흘렀는지, 왠지 모르게 마음 속 불안 버튼이 계속 눌려있는 느낌이었다. 원래 모디카에서 하루 자려고 호텔까지 예약했다 취소한 건데, 도시를 돌아보는 내내 여기에서 오늘 밤을 보내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다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이상하다. 그런 느낌은 이곳 말고는 어디에서도 없었다.]

[그날엔 모디카를 건너뛰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았고, 시칠리아에 다시 온다 해도 이곳엔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여행기를 쓰며 기억을 떠올려보니 나쁜 느낌이 다 사라졌다. 불안했었다는 기억은 있어도 불안했던 느낌은 기억나지 않는다. 안내서에 너무 소홀히 다루어졌던 곳. 여행기를 정리하며 다시 이것저것 찾아보니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고,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소히 볼 것도 많다. 다음이 있다면 성당 맞은 편 전망대belvedere di san benedetto와 시계탑torretta dell'orologio에도 올라가보고, 보나후토antica dolceria bonajuto에 가서 초콜릿으로 맛을 냈다는, 조리법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의 고기 파이 엠파나티기mpanatigghi도 먹어보고, 모디카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살바토레 콰지모도salvatore quasimodo의 생가도 가보고, 베틀렘의 산타마리아 교회chiesa di santa maria di betlem도 가보고 제수의 산타마리아 교회santa maria di gesu의 로마네스크 아키볼트archivolt도 보고, 성당 계단에 앉아 도시에 석양이 내려앉는 모습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