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2020

시칠리아 여행: 17: 시라쿠자: 모디카modica 가는 길



방을 옮겨야 해서 짐을 싸두어야 했지만 어제 밤 너무 졸려 일단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뜻대로 잠을 잘 수 없는 나이가 되니 잠이 찾아오면 무조건 반갑고 귀하다. 옮겨 갈 방이 비지 않아 짐을 싸두면 조지가 옮겨 주기로 했다. 배낭 싸는 일이 그렇게 더디고 stressful하더니 이제 쓱쓱 싸진다. 뭐든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그냥 원래 계획대로 움직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늘을 보니 구름은 점점 걷히는데 빗발이 점점 굵어진다. 할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무슨 조화 속인지... 그래봐야 곧 멈추겠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짐 다 싸들고 노토로 이동하는 날인데, 심난했겠다 싶기도 하다. 나오는 길에 널어 놓은 빨래도 잘 챙겨달라고 하고, 늦게 택시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ride도 부탁했다. 

한가로이 두오모 광장에서 아침을 즐길 시간이 없어 페이스트리가 맛있는 비올라 바로 갔다. 숙소에서 인사를 했던 여행자가 아침을 먹고 있다. 내가 열리지 않는 문을 잡고 낑낑대고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턱 열어준 여인(?)이다. 나는 이럴 때 특히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다음 생이 있다면 힘센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아무튼... 영국에서 온 레슬리. 같이 아침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 사람이라니 손흥민을 아느냐고 묻는다. 축구를 보지 않아서 이름만 안다고 하니, 영국에서 엄청 인기 있고, 자신도 무척 좋아한단다. 예의 바르고 항상 웃는 모습이 좋단다. 한국에서 얼마 전 손흥민의 영국 생활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했었다고 하니까 찾아봐야겠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 사람이라면 지성팍을 아느냐고 물어왔었는데... ^^ 세대는 늘 교체 중이다. 그녀는 카타니아를 여행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에트나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너무 멋있다. 파란 하늘과 오묘한 빛깔의 에트나 능선. 나도 며칠 후에 갈 곳인데, 너무 기대가 된다. 헬멧 쓰고 등산 스틱 짚고 트래킹하는 사진도 있다. 트래킹도 할 수 있는 것?

수다를 즐기며 아침을 먹고 나와 역을 향해 걷고 있는데 비어있어야 할 주머니에 뭔가가 있다. 아침 쿠폰... 바에 주고 왔어야 했다. 이미 10분은 걸었어도 고민의 여지가 없다. 저녁 때 줘도 되겠지만, 그들이 하루 종일 어떤 동양 여자가 무전취식을 했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 뛰다시피 가서 주고 뛰다시피 역으로 왔다. 걷기 앱을 보니 벌써 평소 목표 걸음의 70퍼센트를 달성했다. 순탄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오늘도 본의 아니게 파워 워킹.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이 먹고 많이 소비하는 체질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이러다 보면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다. ^^






다행히 역에 사람이 많지 않아 표도 금방 사고 기차도 여유 있게 탔다. 모디카 행 기차는 노토를 거쳐 간다. 노토 가던 날과 같은 시간 기차인데 완전 널널하다. 그날은 월요일이라 학생들 때문에 만원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었는데 그 말이 맞나 보다. 낙서가 그려진 기차들이 보인다. 그래피티라고 하는 낙서가 역 분위기와 어울리긴 하는데, 시칠리아와 낙서는 왠지 이질적인 것 같다. 관광지 시칠리아와 삶의 터전 시칠리아의 차이... 그만큼의 이질감일 수 있겠다 싶다.

왼편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남서쪽을 향하는 것이 맞나 보다. 늘 확인, 또 확인. 편해진 것 같아도 마음이 완전히 놓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비가 더는 오지 않는다. 새하얀 구름은 하늘 높이 떠있고 하늘은 푸르다. 이 말을 하는 게 우습다. 쌀로 밥 짓고 콩으로 메주 쑤는 소리...^^ 하지만 이런 하늘을 일년에 하루도 보기 힘든 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푸른 하늘과 두둥실 저 멀리 떠있는 하얀 구름은 당연하지 않다.

아그리젠토에서 만난 토니 말에 의하면 9월에 비가 잦고 10월이 되면 날씨가 또 돌아온다고 한다. 9월은 8월 보다는 낫겠지만 겪어보니 여행하기에 완전히 좋은 날씨는 아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휴가가 8월에 끝나서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해는 연일 날 바싹 구우려는 기세로 햇빛을 쏘아댄다. 엔나와 피아짜 아르메리나를 빼고는 계속 에어컨을 켜고 잤다. 온도도 높고 바닷가라 그런지 습도도 높았다.

오늘도 팔레르모 어딘가에 흘린 손수건이 아쉽다. 하나 사려고 계속 가게들을 기웃거려도 아직 손수건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손수건을 써보면 편리함이 휴지와 비할 바가 아닌데 여기도 손수건 쓰는 사람은 거의 없나 보다. 모기 기피제를 다리에 뿌리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는 1년에 한번 물릴까 말까 하는 모기를 벌써 다섯 방이나 물렸는데, 특히 기차나 버스 안에서 다리를 잘 물린다. 잘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꼭 챙기긴 하는데, 역시나 잘 안 쓴다.

사람들이 덥다고 다 앞쪽 칸으로 간다. 그런 부지런을 떨고 싶지 않아 그냥 버티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 창을 열었는지 어딘가에서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이라도 조금 있으니 훨씬 낫다. 사실 나도 타자마자 창을 열어보려 했었다. 그런데 열리지 않아 원래 안 열리나보다 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앉아있던 거였다. 아침에 숙소 문을 못 열고 낑낑대니 레슬리가 열어줬던 일이 떠오른다.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지만, 힘 센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생각해보니 어떤 종류든 약함은 노력해서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인정해서는 안 될 것으로 내게 각인돼있는 것 같다. 인정하면 한계가 되고, 섣불리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할까 하는 노파심에서 나온 가르침 덕분이었지 싶다. 이제 나도 이런저런 노파심이 있는 시기를 살다 보니 그런 가르침에 공감하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뭐든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의 씨앗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토를 지났다. 지금부터는 처음 지나는 구간이다. 굴을 지나며 귀가 막힌다 했더니, 기차가 산으로 올라왔다. 또, 굴. 또, 굴. 여행 안내서를 좀 읽어보려는데 풍경에 팔려 자꾸 시선이 창밖을 향한다. 기차여행... 좋다.






P.S. 시라쿠자에서 모디카 가는 교통편

시라쿠자에서 버스(AST 버스)나 기차로 모디카에 갈 수 있다. 나는 시라쿠자에서 모디카를 당일치기로 다녀왔지만, 라구자에 갈 계획이라면 라구자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편이 훨씬 더 가깝고, 교통편도 라구자에 더 많다. 스케쥴은 바뀌었을 수 있으니 다시 확인할 것.

  • 시라쿠자 버스 정류장: 원래는 corso umberto, 196였던 것 같으나, 당시는 공원parco del foro siracusano옆 corso umberto I에 있었음. 모든 버스가 다 이곳에 서서 매우 혼잡함. 잘 보고 찾아서 타야 함.
  • 모디카 버스 정류장: 움베르토 1세 거리corso umberto I 끝에 있는 piazzale falcone-borsellino 
  • 시라쿠자> 모디카
    기차(약2시간): 월토: 5:36/ 10:27/ 14:10/ 15:35/ 17:41/ 20:19; 일: 없음
    AST 버스(2시간 40분): 월토: 8:00/ 14:30; 일: 없음
  • 모디카> 시라쿠자
        기차: 월~토: 5:03/ 5:50/ 8:26/ 14:33/ 16:47/ 19:54; 일: 없음
        AST 버스: 월~토: 19:30; 일: 없음


[시라쿠자 버스 정류장. 구글 지도]

[모디카 버스 정류장. 구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