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먹고 어딘가로 가느라 바빠서 들르지 못했던 재래 시장을 들러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레오나르도와 아르키메데스 박물관museo leonardo da vinci e archimede이 있다. 숙제는 그만... ^^ 까라바죠라는 이름의 피자집도 보인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고 하기 전에는 굳이 그곳에서 피자를 먹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 까라바죠랑 못 사귀었다.^^
[시라쿠자 오르티지아 아폴로 신전]
시장은 아폴로 신전tempio di apollo 북쪽에 있다. 그냥 지나만 다니던 신전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성당 있는 자리에 있던 아테나 신전과 시청이 있는 자리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하면 이 작은 섬에 신전이 세 개나 있었다. 하지만 교회에 비하랴... ^^
시장은 바닷가에 있는 점을 빼면 팔레르모에서 봤던 전통 시장들과 별 다른 건 없다. 일요일 빼고 매일 오전에 열린다고 한다. 팔에 온갖 형형색색 문신을 한 아저씨가 굴을 까준다. 이곳 사람들은 문신에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다. 문신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세보면, 없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더 적을 것 같다. 주문을 하면 굴 한 개와 레몬 한쪽, 그리고 모스카토 와인을 콸콸콸 따라 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나를 먹었는데, 향긋하고 달콤하다. 하나 더 주문하며, 낮술도 아닌 아침 음주가 과하다 싶어 와인은 많이 남았으니 됐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굴, 레몬 한쪽, 모스카토 와인 한잔 콸콸콸. 저 문신을 보며 감히 그의 루틴에 딴지를 걸다니... ^^
올리브, 토마토, 케이퍼, 멸치 등등의 온갖 절임 류, 생선, 해산물, 치즈, 견과류, 채소, 과일, 허브, 향신료... 요리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한 달 살면서 매일 장봐서 정성껏 밥해먹고, 걷고, 구경 다니면 이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북적북적한 시장 골목 살루메리아 앞에 긴 줄이 있다. 맛집 줄이 분명하다. 모르면 몰라도 줄 선 맛집을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줄 꽁지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줄이냐고 물으니, big sandwich를 파는데 매우 유명한 곳이란다. 아깝다. 내 배에 샌드위치 넣을 공간이 없다. 안타까움에 발걸음을 못 떼고 서성이고 있으니, 치즈와 살루미 조각을 얹은 접시를 들고 다니며 줄 선 사람들에게 권하던 직원이 내게도 접시를 내민다. 시식용 조각이 제대로 한 입 크기다. 엉엉... 너무 맛있다. 맛도 좋고, 인심도 좋고. 줄이 긴 이유가 있다. 카제이피쵸 보르데리caseificio borderi라는 곳인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송사가 넘친다.
먹는 것을 소홀히 했더니 시칠리아에서 못 먹고 온 것이 너무 많다. 다른 것 못 먹은 것은 아깝지 않는데, 살루미와 치즈 넣은 샌드위치를 매일 밥처럼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시라쿠자에서 6박7일을 지내며 이곳 샌드위치를 못 먹은 것은 정말 뻬까또peccato!(what a shame!)다.
시장 끝 남쪽 바닷가에 쇠창살이 에워싸고 있는, 누가 봐도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가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시절 세웠다는 감옥carcere borbonico di siracusa이란다. 창문이며 담장에 박힌 육중한 쇠창살이 수녀원을 떠올린다. 수녀원과 감옥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는 것... 19세기 스페인 부르봉 왕가 막바지에 세워져 20세기 말까지 감옥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