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2020

시칠리아 여행: 19: 라구자: 라구자 이블라 1



[라구자 이블라 4월 25일 거리corso XXV Aprile 풍경]


4월 25일 거리corso XXV aprile가 라구자 이블라의 주요 거리다. 이 거리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냐고 물으면 깨끗한 것이라 대답할 것 같을 만큼 보통 시칠리아 거리답지 않게 깨끗하다.^^ 이 거리를 따라가면 보려 했던 두 교회를 만난다. 산 쥬세뻬 교회chiesa di san giuseppe와 산 죠르죠 두오모duomo di san giorgio. 안내서에 나오지 않는 교회들도 눈에 띈다. 시칠리아 도시마다 교회가 워낙 많으니 그러려니 하게 된다. 시칠리아가 이렇게 믿음이 충만한 곳인지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다. 

P.S. 4월 25일은 '해방 기념일festa della liberazione'인데 우리나라 광복절 같은 날이란다. 1945년 4월 25일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이 연합해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과 북부를 점령하고 있던 나치 독일군을 몰아내려고 총봉기를 일으켰고, 이 사건은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산 쥬세뻬 교회


[라구자 이블라 산 쥬세뻬 교회]


작은 광장이 나오고 산 쥬세뻬 교회가 보인다. 두오모와 산 쥬세뻬 교회 모두 로자리오 갈리아르디가 설계했다고 한다. 로자리오 갈리아르디는 팔레르모에서 쟈코모 세르포타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만큼이나 발 디 노토 지방에서는 자주 들린다. 정성껏 지은 교회다. 그런데 구조와 장식이 밸런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구조만 보면 울룩불룩 웅장한데 장식의 선은 가늘고 오밀조밀하다. 조화롭다 조화롭지 않다는 완전 개인의 취향에 따른 느낌이라고 본다. 

예수의 양부 성 요셉에게 봉헌되었지만 베네딕토 수녀원이 후원해서 지어진 교회라서 오른쪽 2층 조각상은 베네틱토 성인이고 그 아래에 있는 성녀의 조각상은 성 베네틱토의 쌍둥이 여자형제 스콜라스티카라고 한다. 정문 위 창의 철망이 수녀원 교회였음을 말하고 있다. 타원형 내부도 인상적이지는 않다. 직각과 대칭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스타일로 볼 때 바로크와 로코코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로코코 양식은 바로크 양식보다 더 못 사귄 스타일이다. 바로크 양식은 시칠리아 여행하는 동안 많이 편안해졌는데, 로코코까지는 아직... 교회가 서있는 거리의 분위기는 감동적이지만 작품으로서의 교회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라구자 이블라 4월 25일 거리corso XXV Aprile 풍경]


예쁜 기념품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온갖 물건이 있다. 파스타로 만든 드레스, 피끼딘디아를 모티브로 한 스탠드와 도자기를 포함한 온갖 상품 등.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커플이 있다. 인사를 했다. 얼마 만에 하는 한국말인지... 어느 여행 프로에서 출연자가 여행지에서 한국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가 카메라를 보고 도망가자, 나랑 한국말로 이야기 좀 해달라며 쫓아가던 그 마음이었다고 할까? 자동차로 여행 중인데 팔레르모에서는 운전을 아예 포기했었고, 다른 곳도 주차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한다. 부인이 파리 어떤 백화점에서 사고 싶었던 스탠드가 있어서 샀다고 자랑이다. 예쁘다고 잘 사셨다고, 사고 싶은 것을 사서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 부럽다고 해드렸다. 

강박적으로 여행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뭘 사고 싶다는 욕구가 아예 없어진 것 같다. 기념품이든 맘에 드는 물건이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예뻐도 보는 것으로 끝이다.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뭐든 마음에 들면 들고 다니지는 못할 테니 국제 배송을 시키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럴 정도로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지만 아예 사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두 분다 양 손에 등산 스틱이 들려있다. 이 분들은 스틱이 필요한 지 어떻게 알았을까? 무릎이 자신 없으면 진짜 등산 스틱이 필요한 곳이다.


[라구자 이블라 치콜로 디 콘베르사지오네circolo di conversazione]


길 양쪽에 호텔로, 상점으로, 관공서로 사용되는 저택도 있고 치콜로 디 콘베르사지오네circolo di conversazione라는 아르누보 느낌의 1층 건물이 있다. 동네 부르주아들, 그러니까 지역 유지들이 모여 지역사회를 걱정하며 온갖 일을 도모하던 곳이라는데, 그 모습이 영화 속 장면들처럼 그려진다.


[라구자 이블라 두오모 광장 풍경]

산 죠르죠 성당


정면에 긴 광장piazza duomo이 보이고 그 끝에 두오모duomo di san giorgio도 있다. 오면서 보았던 돔도 정면 왼쪽 뒤로 보인다. 성당 정면이 성당을 향한 긴 광장과 마주보지 않고 살짝 틀어져 있다. 지도를 보니 축을 정확히 동서 방향으로 잡았다. 교회 입장에서 볼 때 광장이 틀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제단과 주 출입구의 방향이 반대다. 보통은 동쪽에 제단을 두고 서쪽에 주 출입구가 있는데, 이 교회는 주 출입구가 있는 정면이 방위상으로 동쪽을 향한다. 그러고 보니 산 쥬세뻬 교회도 그렇고 수페리오레의 대성당cattedrale di san giovanni battista도 그렇다. 동서 방향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많다고는 해도 얼추 지리상 방위와 맞추는 것 같은데, 이곳의 주요 교회는 다 그렇지 않다. 무슨 이유가 있지 싶다. 교회의 방향을 말할 때는 실제 방위와 상관없이 제단이 있는 쪽을 동쪽, 정면을 서쪽이라고 한다. 시칠리아 바로크 스타일의 특징이 정면에 웅장한 계단이 있는 것이라 했었다. 서쪽에 계단을 두는 스타일을 고수하려니 낮은 곳을 서쪽으로 높은 곳을 동쪽으로 잡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계단도 삐딱하고 광장도 삐딱하고... 막힌 방향으로 틀어져 보이는 성당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성당처럼 중요한 건물을 지으며 이렇게 터를 결정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조금 놀랍다고 해야 하나... 대 지진 후에 새로 터를 잡아 지은 건데... 원래 대성당은 이블레오 정원giardino ibleo 남쪽에 있었다. 지금도 그곳에 옛 성당의 입구가 남아있다.


[라구자 이블라 산 죠르죠 성당]


가까이에서 성당의 정면 장식을 보니 멀리서 보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가까이 보니 훨씬 더 예쁘다. 산 쥬세뻬 교회처럼 오밀조밀 복잡한데, 이곳 장식은 왠지 섬세하다고 표현하고 싶고,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느낌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시칠리아의 주요 교회는 거의 다 돔이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설계됐다는 돔은 못 본 것 같다. 한 때 교회에 돔을 얹는 유행이 섬을 휩쓸었는지, 대부분의 돔은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 잃은 이방인에게 등대가 되어주는 이 두오모의 거대한 돔도 나중에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성당 앞 계단을 에워싼 철제 난간도 매우 공들여 만든 티가 난다.


PS. 성당 입구에 있던 안내판을 읽어 보니 성당의 축과 광장의 축이 각을 이룸으로써 동적이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는 설명이 있다. 왠지 변명처럼 들리는 설명을 한 것을 보면 그 점에 대해 딴지를 거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듯 하다. 주 출입구 안쪽에 산 죠르죠의 순교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조각한 여섯 개의 판넬이 있다고 한다. 네이브와 아일을 구분하는 10개의 튼튼한 기둥이 있는데, 지진의 공포가 남긴 유산이란다. 이 말이 인상적이다. 악몽 같은 경험 또한 귀한 유산이 될 수 있다. 돔과 20개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내부를 밝히고, 돔의 높이는 도로에서 43미터이고, 프랑스 파리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단다. 측면 입구 위에 말을 타고 있는 산 죠르죠의 이미지와 은제 성물함이 있다고. 왼쪽 트란셉트와 연결된 성물실sacristy에 안토니오 가지니antonio gagini가 옛 교회를 장식했던 석회암에 조각한 봉헌화votive picture의 유물이 있단다. 원래는 다섯 개의 니치에 산 죠르죠와 다른 네 명의 전사였던 성인의 조각이 있고, 아래에는 성인의 일화를 담은 부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 개 니치와 네 개 조각 밖에 없고, 예전 모습으로 복원되어있지도 않지만, 원 작품의 훌륭함을 짐작할 수는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성당 건축 연도, 건축가, 예배당을 장식하는 작품과 작가 등 자세한 정보가 있다.







안내서의 라구자 설명은 너무나 간단했는데, 골목 어귀마다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보니 유적의 번호만도 30번을 넘어간다. 보아하니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과 별도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과 교회가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한달 동안 달랑 섬 하나를 여행한다는 것이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지만, 시칠리아 입장에서 한 달은 언감생심인 것 같다. Roma non basta una vita라는 표현이 있다. 한 번의 일생으로 로마를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표현이다. 시칠리아에 그 표현을 적용해본다면 Sicilia non basta un mese. 시칠리아를 알기에 한 달은 충분하지 않다.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보고 즐기자... 마음을 자꾸 내려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