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2020

시칠리아 여행: 21: 카타니아: 카타니아 &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카타니아 산타 아가타 대성당]


카타니아를 보는 날이 하필 일요일과 월요일이다. 관광객에게는 월요일이 안식일인데 안식을 지킬 여유가 없다. 일단 새 도시에 왔으니 성당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도리고 예의다 싶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시나브로 마을의 큰 어른인 수호성인께 먼저 문안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 의식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데 성당 지하에 있다는 로마 시대 목욕탕을 일요일 오후에 개방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내일 성당과 목욕탕을 한 번에 가기로 하고, 추천해준 곳 중에 숙소에서 가장 먼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monastero dei benedettini di san nicolò l'arena에 갔다 우르시노 성castello ursino을 보기로 했다.




카타니아 대성당이 있는 두오모 광장을 지나쳐 산 니콜로 수도원으로 향했다. 걷다 보니 뒷골목, 범죄, 낙서, 혼돈, 더러움, 찌든 때 등의 단어가 떠오르고 함부로 들춰내서는 안될 어두운 구석이 있어 보인다. 첫 목적지로 가는 길인데 박살 난 차 유리창 조각이 길바닥에 모자이크처럼 뿌려져 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또 차 유리 조각이 길바닥에 널려 있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시칠리아 도시 와는 달리 좀 거친 곳인가?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것은 시칠리아 최고의 바로크 도시는 카타니아라는 느낌이다. 방치되어 때가 꼬질꼬질하고 조금씩 부스러져 내려 어둡고 음울해 보여도 시칠리아 제 2의 도시다운 면모가 느껴진다. 단지 규모로 제 2의 도시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단테 광장. 로마 목욕탕 유적]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은 로마 유적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수도원 입구 단테 광장piazza dante alighieri에 로마 시대 목욕탕terme romane의 배관 시설로 보이는 유적이 노출되어 있다. 현재 카타니아 대학이 수도원을 사용하는데, 평일에는 개별 관람과 가이드 투어 모두 가능하지만 수업 없는 날에는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단다. 오늘은 이탈리아어 가이드 투어만 남았다고 한다. 영어 가이드 투어는 평일 1시에만 있다고 하고, 개별 관람은 아무 때가 가능한데 관람 구역이 많이 제한된단다. 오늘 이탈리아어 안내를 들으며 보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더러는 조금 알아 듣는 게 있겠지 싶기도 하고, 궁금하면 나중에 찾아봐도 되지 싶다. 그냥 몰라도 되고...


[산 니콜로 베네틱트 수도원 입구 계단. 왼쪽 아래가 산타 아가타가 박해당하는 장면]


안내를 시작하기 전에 가이드가 관람객 상태(?)를 점검한다. 미국인 둘, 프랑스인 둘, 그리고 나. 그러니까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사람이 다섯이나 된다. 설명하는 동안 우리가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것이 안되 보였는지 이탈리아어 설명 끝나고 따로 불러서 영어로 짧게 설명을 덧붙여 준다. 가이드 얼굴이 발코니 코벨 조각을 닮고 말투가 익살스러워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다 하며 설명을 듣기 보다는 보고 있었는데, 친절하기까지...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용암에 손상되지 않은 공간.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로마시대 유적]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수도원 부엌]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수도원 식당]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수도원인데 규모가 엄청 크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이 투어가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은 에트나 화산 분화와 지진인 것 같다. 구석구석에 이 시설이 목격하고 겪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화산 폭발 이전에 만든 공간과 이후에 건축한 공간은 1층의 높이가 다르다. 용암이 2층 높이로 흘러 그 흔적이 벽에 남있다. 

수도원의 식당, 부엌, 수도원장의 사무실, 정원, 회랑, 로마 시대 모자이크, 용암으로 인해 현무암으로 메워진 곳을 파내서 만든 공간, 지진으로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었던 지하 공간에 만든 도서관, 16세기에 음식 저장고로 쓰였던 지하 공간 등을 보여주었다. 늘 지나다닐 수 밖에 없는 층계참 벽이 흰색과 회색 스투코로 장식되어 있는데, 아가타 성녀의 박해 장면을 매우 직설적으로 그린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다. 으악... 적어도 내 신앙은 저 장면으로 더 공고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산 니콜로 베네틱트 수도원. 수도원장 방. 핑크가 소녀의 색이라는 편견이 없었던 듯... 오른쪽 아래는 수도원장 방의 창밖 풍경. 멀리 바다까지 보인다]

[산 니콜로 베네틱트 수도원. 수도원 2층에도 남아있는 용암의 흔적]

[산 니콜로 베네틱트 수도원. 수도원 식료품 저장 공간. 흘러든 용암을 파내고 지금은 박물관]


[산 니콜로 베네틱트 수도원. 수도원장 방의 외부 장식]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벽을 창을 중심으로 바로크 스타일로 장식했는데 유난히 주변 장식이 화려한 창이 있다. 수도원 원장의 방이었다. 교회 건축과 미술이 좋아서 수도원이든 교회든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보러 다니고, 그것들에 담긴 예술가와 장인의 솜씨와 열정, 노고에 감동한다. 하지만 정작 건축물에 담긴 철학이나 사상에 감동했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산 니콜로 베네딕트 수도원 담장. 담을 쌓은 것이 아니고 덮친 용암에서 건물을 파내고(?) 옹벽처럼 남은 용암]


수도원 서쪽 끝으로 가니 용암이 굳은 돌이 수도원 건물 높이의 담처럼 건물 서쪽 벽을 에워싸고 있다. 용암이 강처럼 흘러 건물을 덮쳤던 것이다. 얼핏 보면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과거가 보인다. 재난의 흔적이 이렇게 고스란히 생생히 남아있으니 잊을 수가 없지 싶다. 누구라도 이런 곳에 살다 보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될 것 같다. 수도원 안팎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정비가 끝나 좀 더 정돈된 모습이면 훨씬 더 흥미로운 장소가 될 것 같다.


[카타니아 산 니콜로 교회]


수도원 오른쪽에 거대하고 이상한 정면의 가진 수도원 교회chiesa di san nicolò l'arena가 있다. 지진으로 건설 수요가 급격히 늘자 건축비가 올라 원래 계획을 축소해서 마무리해서 이런 상태로 남았단다. 성 같기도 하고 신전 같기도 하고... 엄청난 규모로 지으려던 교회를 저렇게 마무리했다는 것은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건축주의 지위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 점쳐본다. 문이 닫혀있어 볼 수는 없었는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 있다고 한다.

에트나 화산의 존재가 지금까지 여행한 다른 바로크 도시들과 카타니아를 구별짓는 것 같다. 에트나의 존재가 이곳 사람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다른 바로크 도시들은 대지진 이후 어떻게 도시를 재건했는지에 대한 스토리였다면, 이곳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에트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지진은 과거라고 흘려 보낼 수 있겠지만, 에트나는 늘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는 너무나 생생한 현재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에트나는 애증의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알고 온 것이 아닌데 카타니아의 첫 방문지로 이 수도원은 너무 의미 있었다. 카타니아를 보는 내 시선이 이곳을 방문하기 전후로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누군가 카타니아를 여행한다면 가장 먼저 이곳에 가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