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2020

시칠리아 여행: 16: 시라쿠자: 셋째 날 아침



비가 온다. 두오모가 있는 광장에 있는 바로 아침 먹으러 와서 앉아 있다.

엊그제 오렌지 주스도 못 알아듣는 척하던 아가씨가 뒤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 앞에서 영어로 메뉴를 줄줄이 읊고 있다. 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거다. 속된 말로 그들에게 개기다가는 혼나겠다 싶었던 거지...^^

우리나라 젊은 처자들이 바지를 짧게 입는다고 기겁하는 서양 사람을 여러 번 봤다. 상체는 노출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하체는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 했던 이탈리아인데, 이곳에서는 유난히 짧은 바지 차림이 눈에 띈다. 하체 노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 옛말이 된 건지...

옆 테이블 꼬맹이가 불어로 아기상어 노래를 하고 있다. 인터넷의 위력이다. 유튜브를 매체로 이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글로벌 트렌드 세터가 되기 위한 조건에서 이제 적어도 지리적 장애 극복이라는 요소는 빠진 것 같다.

오늘은 시라쿠자에서는 신도시 취급을 받는 시라쿠자 본토를 돌아볼 생각이다. 2,500년이나 된 네아폴리스(일종의 신도시, 뉴타운) 고고학 공원과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가, 시간이 남으면 되는 대로 시라쿠자 본토를 돌아볼 생각이다. 본토는 현재도 오르티지아에 비하면 신도시 취급이지만 그 옛날에도 신도시로 조성된 역사가 있었나보다.

너무 수학여행 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여행을 해본 적 있나 싶다. 리조트 같은 곳에 가서 먹고 자고 수영하고 책 읽고, 딱 그렇게만 해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리조트에 갔다 해도 아마도 택시 불러 타고 나가서 박물관, 미술관 찾아다닐 거다. ^^


[시라쿠자 시청 코니스cornice와 두오모 광장]


고고학 공원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시청 건물 코니스cornice의 왼쪽 끝에 도마뱀 조각이 있단다. 건물의 건축가가 사인으로 남겨두어, 이 건물에 도마뱀이라는 뜻의 일 루체르톨로네il lucertolone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쟈꼬모 세르뽀따도 사인으로 도마뱀을 스투코 조각상에 남겨두곤 했다던데, 이곳에서는 도마뱀이 사랑받는 동물인가 보다. 크기도 내 손바닥 반도 안 되고, 사람 기척만 있어도 재빨리 줄행랑을 치지만 내게는 공포에 대상이다. 파충류에 대한 선입견도 있지만, 어린 시절, 그때는 우리나라 풀숲에도 도마뱀이 있었는데, 누군가 건드리자 꼬리를 떨구고 도망갔었다. 그때 남겨졌던 초록 꼬리에 대한 선명한 기억 때문에 너무 무섭다. 라임병을 일으키는 진드기의 천적이 도마뱀이라고, 유익한 동물이라고 해도 무섭다. 자연과 격리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다른 생명체와 너무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오늘도 도마뱀 찾기는 실패다. 아무리 카메라로 확대해서 들여다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책을 잘 못 읽었나 싶다.


[시라쿠자 베네벤따노 델 보스코 궁]


시청 앞 저택palazzo beneventano del bosco 안마당에서 어제 인형극 극장에서 만났던 프랑스 커플을 만났다. 옷차림이 바뀌어 긴가민가 하는데 인사를 해왔다. 오늘 노토로 떠난다고 한다. 좋은 여행 하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영어가 서툰 친구가 뭔가를 말하려 해서 잠시 기다리니, 아주 천천히 영어로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한다. 좋은 마음이 담긴 말은 어떻게 표현돼도 아름답다. 느린 말 한마디가 참 고맙다. 그래서 나도 웬만해서는 해주지 않는 멕흐씨 보꾸merci beaucoup를 마음을 담아 해 주었다. 돌아서서 봉 브와야쥐bon voyage도 해줄걸 했다.^^ 불어를 쓰는 사람들 점수는 마이너스 백만 점이었었는데, 그 아저씨 둘이 백 점을 따서 이제 마이너스 구십구만 구천구백 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