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2020

시칠리아 여행: 11: 엔나: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던 엔나



저녁 식사


[엔나 레스토랑baglio balata ristorante pizzeria]


숙소에서 추천해 준 레스토랑baglio balata ristorante pizzeria으로 갔다. 헐... 문 앞에 휴 그랜트가 서있는 줄 알았다. 휴가 문 앞에 서서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오라는데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베이컨, 치즈, 버섯이 들어간 크리미 드레싱의 샐러드.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조합의 샐러드와 시칠리아 식 모듬 전채요리 같은 메뉴를 시키고 싶었다. 휴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두 메뉴의 양을 물으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하는데, 말투도 그를 닮았다. 정말 관계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쉴새 없이 움직여서 물어볼 틈을 끝내 찾지 못했다.^^

샐러드는 몇 입 먹을 때는 맛있다 하며 먹었는데 계속 먹으니 드레싱이 너무 진해서 느끼했고, 안티파스토 플래터의 음식들은 너무 짰다. 시칠리아에서 짜서 못 먹겠다 한 것은 처음이었다. 먹으려고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이 짜서 3분의 2는 남겼다. 시칠리아에 와서 다른 곳에 비해 음식이 짜지 않다 했었는데, 그 생각을 단 번에 날려줬다.^^ 오늘 시킨 것은 망했어도 다시 가서 다른 메뉴를 시도해보고 싶은 식당이었다.






유럽 여행의 부작용


실상을 접하면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 중 하나가 프랑스에 대한 환상. 프랑스 혁명, 레미제라블, 잔다르크, 파리의 화가들,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 불어, 음식 등등에 대해 실상보다는 한줄 평 또는 광고 카피나 다름없는 평가에 현혹돼 갖게 되었던... 그렇다고 그것들에 대한 한줄 평이 거짓말이거나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시각이 그들과 다르고, 세상의 평판은 포장해서 광고하기 나름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 아무튼 지금은 회사 다니며 시간 쪼개서 불어 학원 다니고, 주변 사람들 핀잔 들어가며 짬짬이 불어 단어를 외우던 과거 내 열정이 무색할 따름이다.

숙소에서 인사한 커플이 있었다. 시내라고 해봐야 손바닥 만하고 관광객 가는 곳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그들과 몇 번을 부딪혔다. 분명 숙소에서 인사를 하고 낯을 익혔건만 나는 매번 인사를 하는데, 그들은 계속 누구?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지나간다. 이 도시에서 내가 흔하게 생긴 타입은 분명 아닐 텐데... 인사를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분까지는 내 소관이 아니라 상하는 것을 말릴 수 없다. 나중에 보니 불어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로카와 성을 돌아볼 때 계속 부딪혔던, 중국 여행객만큼이나 소란을 떠는 가족이 있었다. 불어를 사용하는 인간들. 내 몸집만한 셰퍼드를 목줄 없이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그 놈의 개가 계속 다가와 나를 기웃거렸다. 개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 위협적이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개를 무서워했다면 기함을 했을 상황이다. 개가 한 번 누군가에게 무리하게 다가갔으면 다시는 못하게 통제할 법 한데 그것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 행태가 불쾌해 가만히 서서 노려보면 그제서야 휘파람을 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를 몇 번... 의도가 무엇인지 까지는 알 수 없어도 의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으로 보였다. 인간이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면 저렇게 몰상식해지는 것일까? 주인이 몰상식하니 그저 호기심을 표현할 뿐인 죄 없는 개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내 데이터 저장소에 불어를 쓰는 인간들에 대한 나쁜 사례가 계속 쌓인다. 더불어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잃었다. 물론 파리 여행도 한 몫을 했고... 이제 프랑스 하면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느껴진다. 거만함은 위대한 사상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에 근거한 태도 같지만, 왠지 이웃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대한 역사적 열등감의 이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유, 평등, 박애? 그 정신이 탄생한 배경을 보면 그다지 위대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 사회의 끔찍했던 현실에 대한 증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민중을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지배한 사회가 그렇게 많지 않지 않나? 아무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은 대개 사람이라면 그냥 타고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들의 고유한 사상인양 내세우고 심지어 국민들에게 강조하며 가르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개별 시민들을 볼 때 그 정신이 없어 보이는 건 뭘까...

유럽여행의 부작용이다. 이 불편한 부작용이 언젠가는 회복될까?





그리워진 엔나


[엔나 밤 거리]


안내서와 어느 여행사 홈페이지의 글을 읽고 상상한 엔나는 토스카나나 피에몬떼에서 봤던 것 같은 작고 한적하고 정갈한 전원 마을이었고, 여러모로 에리체를 떠오르게 하는 마을이었다. 산 꼭대기에 있다는 점,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얽혀있고 데메테르 숭배 의식으로 유명했던 곳이라는 점, 변화무쌍한 날씨. 하지만 사람이 많았어도 정갈하고 조용하고 영적인 느낌이 들었던 에리체와 달리 엔나는 지저분했고 심란했다. 시칠리아 내륙이 텅 비었다는 것은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내륙 도시가 텅 비었다는 것인지... 그런 말로 내 상상력을 부추겼던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의 엔나는 골목골목 차들로 꽉 막혀있었고, 좁아터진 인도는 어깨 빵이라도 해야 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는 차들이 팔꿈치를 스칠 만큼 가까이 지나다녔고, 길가에는 쓰레기와 온갖 동물의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부슬부슬 무너져 내리는 건물, 버려진 건물, 풀밭이 되어가는 건물 벽들이 스산함을 더했다.


[엔나 나폴레오네 콜라이안니 광장piazza napoleone colaianni. 시칠리아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나폴레오네 콜라이안니를 기념하는 광장]


어떻게 그런 감각이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공간, 건물, 조형물 등에 대해 공산당 느낌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느낌은 아니다. 엔나의 어떤 광장의 동상과 주변 건물들에서 그런 느낌이 확 들었다. 공산당 프로파간다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 같았다. [찾아보니 동상의 인물 Napoleone Colajanni는 시칠리아 사회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란다. 설명할 수 없는 내 느낌적 느낌의 근거^^]

그리고 슈퍼에서 멀쩡하게 생긴 아가씨는 물 값으로 내게 바가지를 씌웠다. 그 값이 맞느냐고 묻는 것으로 나는 네가 부당한 가격을 청구하는 걸 알고있다는 뜻을 전했음에도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말똥말똥 쳐다보며 맞는다고 대답했다. 바에서도 1유로 넘게 내본 적이 없는, 슈퍼에서는 0.5유로면 충분한 물 500ml에 1.5유로를 내라했다. 돈 귀신이 붙었으면 어쩔 수 없지... 안 산다 하기도 귀찮아 먹고 떨어져라 하며 달라는 대로 주고 나왔다.

시칠리아에서 산꼭대기 마을은 흔하다. 평지 마을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사실 이탈리아 다른 곳에도 많다. 몰려다니며 땅따먹기 하던 시절, 산꼭대기 만큼 천혜의 요새가 없었으니... 그러니까 엔나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높기는 하지만, 산꼭대기 마을이라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자랑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엔나는 이곳에 오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보상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의 일기는 이곳에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끝을 맺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앙심(?)은 무리한 일정 탓이거나 날씨 탓이거나 무례한 프랑스 사람들 탓이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시간에 쫓기는데 무례한 인간들에 날씨도 좋지 않으니 심사가 꼬이기 시작했을 것 같고, 노력하면 더 얻을 것이 있는 순간과 주어진 만큼이 내 몫임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심통을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밝고 명랑한 은총이 느껴지는 성당, 마을 동쪽 끝 데메테르 바위에서의 일출, 서쪽 끝에서의 노을, 칼라시베따 풍경, 계단과 경사로 이어진 도시 바탈길의 느린 산책... 동화처럼 영화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곳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곳이었다. 구비구비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오르며 보았던, 장엄했고, 쓸쓸했고, 안타까웠고, 아름다웠던 시칠리아 속살은 무엇을 지불했던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리고 시칠리아에서 처음으로 에어컨 없이 잤던 날이기도 했다. 비가 왔어도 서늘하고 쾌적했다.


[엔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