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2020

시칠리아 여행: 10: 아그리젠토: 맛집 - 잃어버린 학꽁치aguglia persa



[아그리젠토 맛집 아굴리아 페르자aguglia persa]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은 비교적 늦게까지 문을 여니 일단 밥부터 먹기로 하고 짐을 챙겨 방문을 열고 나왔더니, 누군가 숙소 홀에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 그 청년이다. 그래서 너 레스토랑 간다 하지 않았어?라고 물었더니, 황당한 표정이 된다. 자세히 보니 닮긴 했어도 그 청년은 아니다. 심지어 청년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인다. 이런 착각을 하다니... 또 자존심에 상처. 내가 사람 얼굴을 얼마나 잘 구별하고 기억하는데... 다 옛일인가 보다.ㅠㅠ

청년이 말했던 레스토랑으로 갔다. 가깝고 맛도 있다고 하니 거기서 후다닥 먹자 싶었다. 청년이 아직 밥을 먹고 있다. 개의 식사도 존중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서 그의 식사를 또 방해할 수는 없다. 터키인의 계단 교통편을 물어보려 했는데 다 먹으면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잠시 후 어쩌다 그쪽 테이블을 보니 어느새 청년은 가버리고 없다. 뭐, 나중에 물어보면 되지 하고 주문을 하고 밥을 먹다 창밖을 보니, 내가 청년인 줄 착각했던 사람과 청년이 여행가방을 챙겨 들고 어디를 간다. 헐~

레스토랑 직원들이 청년과 친해 보여 사정을 물어보니, 다른 사람은 청년의 형인데, 형 여행가는 길에 배웅하러 가는 것이란다. 음, 그러냐... 어쩐지 닮았더라, 그래서 아까 내가 청년인 줄 착각했잖아... 아줌마 본능 수다를 떨며, 그런데 다시 오기는 하느냐고 물었더니, 저녁에 올 것이란다. 그래? 그럼 이따가 물어보면 되겠다 하고 밥 먹고 신전의 계곡으로 갔는데 결국 그 청년은 다시 보지 못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동네 밥집이라고 예상했던 레스토랑aguglia persa은 발을 들여놓자 마자 오뜨 뀌진haute cuisine의 향기가 폴폴 풍긴다. 크고 예쁜 접시에 예쁘게 꾸며 조금 주며 비싼 음식을 나는 오뜨 뀌진이라 정의한다. ^^ 메뉴판의 음식의 가격도 이곳이 오뜨 뀌진을 추구함을 말해주고 있다. 분식처럼 먹는 맛있는 파스타 집인 줄 알고 왔는데... 

어렸을 때면 fancy한 접시에 열광했겠지만 요즘엔 소박하고 hearty한 soul food가 좋다. 섬세하고 복잡하고 과시적(?)인 오뜨 뀌진은 더 이상 내 취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뜨 뀌진을 싫어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단지 추구하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분위기는 세련됐지만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파스타는 너무 배가 부를 것 같기도 하고 아침 식사만으로도 하루에 필요한 탄수화물의 몇 배를 먹는 느낌이라 탄수화물을 피해 안티파스토antipasto 두 가지를 시켰다. 물소 치즈mozzarella di buffala 요리와 문어 샐러드. 어제 먹은 문어 샐러드가 너무 맛있어서 또 먹어보고 싶었다. 둘 다 조리법보다는 다 재료가 다하는 요리. 나는 요즘 단순하고 맛있는 음식이 좋다. 조리 과정도 복잡하지 않고 양념도 단순한... 음식은 예쁘게 담겨 나왔고, 예상대로 조금 줬다. 그래도 내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고 맛있었다.

다 먹고 나가려니 날씨가 난리다. 가방을 챙기며 부적이다 하고 우비를 챙겼는데, 오늘은 이 부적이 힘을 못쓴다. 천둥치고 바람이 세지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가 심상치 않아질 조짐이 보인다. 우비만 챙겼는데 다시 숙소에 들러 우산도 챙겨서 나가야 할 것 같다.


P.S. 잃어버린 학꽁치aguglia persa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곳은 알고 보니 론리플래닛 추천 식당 중에서도 특별히 별을 받은 식당이었다. 엠페도클레 항porto empedocle에서 유명한 il salmoriglio ristorante의 주인이 차린 식당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