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체 미니어처 박물관]
미니어처 박물관erice in miniatura. 스페인 구역 가는 길에 있고 에리체 패스에 포함된 곳이라 들렀다. 에리체의 옛 생활상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았다. 정교하고 익살스럽고 흥미롭지만, 이 와중에 즐길 장르는 아닌 것 같다. 패스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가지 않았을 듯...
[에리체 산타 오르솔라 교회]
스페인 구역quartiere spagnolo 가는 길에 교회가 있다. 산타 오르솔라 교회chiesa di sant'orsola. 누군가 관리는 하는데, 장식은 거의 사라지고 지붕, 바닥, 기둥, 벽 등 골격만 남았다. 벽에 프레스코화의 흔적이 군데군데 얼룩처럼 남아있다. 지저분하다고 하얗게 회칠해버리지 않고 남겨둔 게 고맙다. 골격만으로도 아름답다. 장식이 없으니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이 온전히 느껴진다. 텅 빈 공간이 주는 감동과 위안이 있다.
스페인 구역quartiere spagnolo
[스페인 구역 가는 길. 왼쪽은 porta carmine, 오른쪽은 porta spada. 가운데 벽이 엘리미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이 세웠다는 사이클롭스의 벽]
에리체 북쪽 끝 성곽 밖에 스페인 구역이 있다. 17세기 스페인이 군대의 병영으로 쓰려고 건물들을 지었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완공하지 못했단다.
북쪽 성문porta del carmine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길이 좋다. 돌로 포장된 길 한쪽은 성벽이고, 길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졌다. 이 길은 porta trapani와 port spada를 잇는 사이클롭스의 벽의 일부이다. [사이클롭스의 벽은 진흙이나 회반죽 없이 돌로만 쌓은 벽을 일컫는다고. 그래서 인력이 아니라 괴력의 거인 사이클롭스가 쌓았을 거라며 사이클롭스의 벽이라고 했단다.]
이 벽을 최초로 쌓은 사람들은 기원전 800년 경 엘리미인이이고, 현재 상부와 성문은 노르만 시대에 쌓은 것이란다. [페니키아 글자로 beth(house), ain(eye), phe(mouth)라 새겨진 돌이 있는 부분도 있다고 함. 눈으로 침략자들을 보고, 입으로 삼키는 안전한 집이라는 메시지라고... 나는 못 봤음.]
이 길 끝에 있는 porta spada는 칼의 문이라는 뜻인데, 시칠리아 만종 사건(1282년) 때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고, 전투에서 패한 앙주 가문 에리체 통치자들이 학살을 당했던 사건에서 이름이 유래했단다.
[스페인 구역 풍경. 바다로 튀어나온 산이 monte cofano]
길 끝에 이런 풍경이 펼쳐있을지 몰랐다. 전략적 요충지는 대개 경치가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군인의 차지였고... 다행히 시절이 변해 지금은 전망대belvedere 같은 곳이 됐다. 비너스 성을 지탱하는 절벽도 보이고, 도시의 측면도 보이고, 어느새 갈색으로 물든 산비탈도 보인다. 탁 트인 하늘 속 구름과 monte cofano와 바다, 산 아래 펼쳐진 마을과 밭과 길이 만들어 내는 무늬가 너무 멋있다. 저절로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이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일상의 풍경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병영에 어울릴 법한 건물에 작은 민속 박물관도 하나 있다. 에리체 패스를 사지 않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가서 휙 돌아보고 나왔다.
에리체 패스... 사지 말 걸 그랬다. 이놈의 패스가 선택과 집중을 불가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