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2020

시칠리아 여행: 06: 트라파니: 푸르가토리오 교회Chiesa del Purgatorio - 연옥 교회



[트라파니 푸르가토리오 교회. 조각상들은 예수의 12제자라고 함]

[위는 트라파니 성당, 아래는 예수회 교회.]


마르살라 염전 투어까지 시간이 좀 있다. 어제 저녁 여행이 확정됐다고 참석여부를 묻는 문자가 와서, 참석하겠다고 연락을 해뒀다.

남는 시간 동안 트라파니 구시가지 교회들을 좀 돌아보려는데 성당cattedrale di san lorenzo에서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고, 가보고 싶은 예수회 교회chiesa del collegio dei gesuiti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일명 연옥 교회라 하는 푸르가토리오 교회로 갔다. 아담하고 예쁜 바로크 양식 교회다. 정식 이름은 chiesa delle anime sante del purgatorio. 직역하면 연옥의 성스러운 영혼들의 교회. 가톨릭에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누군가 기도를 해주면 그 영혼이 빨리 천당으로 올라간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음을 증명하듯 푸르가토리오 교회는 곳곳에 있다. 연옥의 영혼이 이 교회에 내려와 있다는 걸까? 아니면 연옥의 영혼들과 통하는 채널이 이곳에 개설되어 있다는 걸까? 옛날 전화국 교환수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교환수에게 전화해서 번호를 말하며 연결을 부탁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러니까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전화국 트라파니 지부? ^^


[푸르가토리오 교회 성상들]

트라파니에서 이 교회가 가볼 만하다고 꼽히는 이유는 트라파니의 유명한 종교 행렬에 사용되는 예수 수난 성상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행렬은 미스테리 행렬processione dei misteri di trapani이라고 불린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17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매년 성금요일 오후 2시부터 24시간 동안 진행된단다. 이 교회에서 시작된 행렬은 트라파니의 좁은 골목과 광장을 촘촘히 누비고 다음날 오후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상들이 교회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가 된단다. [성금요일: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뒤 로마 군대에 체포된 다음 날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날. 부활절 직전의 금요일]

24시간의 행렬... 예수의 고통을 백만분의 1이라도 느껴보거라 하는 고난 체험 행사가 아닐까 싶다. 어딘가에서 이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챌린지 차원으로 온전히 24시간을 함께 해보고 싶다. 미스테리의 디테일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성상들은 예수 수난 20 장면을 실물크기 조각상으로 만든 것이다. 각 장면 마다 어부, 제빵사, 이발사 등 담당 길드가 있고, 해당 길드가 행렬 시 운반을 맡는단다. 부활 주간에는 시칠리아 어디에서든 성대한 행사가 열리지만, 트라파니 행렬은 이 조각상들 덕분에 특히 인기가 있단다. 이때 트라파니에 오려면 미리 호텔을 예약해둬야 할 정도란다.

교회 예배당이 있어야 할 양쪽 가장자리에 성상들이 쭉 놓여있다. 전시라기 보다는 보관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각 장식마다 장면 이름이 써있고, 장식을 책임지는 길드의 이름이 쓰여있다. 각 조각상 앞에 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독일어로 해당 장면에 대한 설명, 만든 장인, 어떻게 수리했고, 어떻게 망가져서 누가 다시 고쳤고 등 해당 성상의 역사 등을 적은 표지판이 있다. 이들에게 소중한 행사이고 전통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트라파니 현대 미술관La Salerniana Museo D'Arte Contemporanea. 17세기 감옥이었다고 함.]


[트라파니 성 프란체스코 교회 Chiesa di S.Francesco d'Assisi]


연옥 교회를 나와 서쪽으로 걸었다. 옛 건물의 흔적을 천을 덧대 기운 듯이 남겨둔 건물들이 꽤 눈에 띈다.  입구 위를 네  남상주로 장식한 현대 미술관이 나오고, 골목 끝에 소박해 보이는 교회가 있다. 성 프란체스코 교회chiesa di san francesco d'assisi라고 한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다. 양복에 양장을 입은 신도와 사제의 조각상이 눈에 띈다. 13세기부터 있던 교회라는데 장식들이 비교적 최근 것으로 보인다. 관리의 손길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