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만종 사건vespri siciliani
이 성당은 시칠리아 만종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프랑스 앙주 가문이 시칠리아를 침략하여 지배하고 있던 1282년, 시칠리아 사람들이 그들의 학정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부활절 저녁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무렵 프랑스 군인이 시칠리아 여성을 희롱하자 그녀의 남편이 그 군인을 살해했고, 이에 동조한 시민들이 일제기 봉기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로 프랑스인들을 몰아냈고, 이때 수천명의 프랑스인이 목숨을 잃었단다. 그래서 만종사건i vespiri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사건의 현장은 팔레르모에 있는 성령교회Chiesa di Santo Spirito. 아직 산타 오르솔로 공동묘지cimitero di sant'orsola 안에 있다. 이때 '치치리ciciri'의 발음을 제대로 하는지 여부로 프랑스인을 색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사건은 폭동에서 끝나지 않았고, 시칠리아 사람들이 스페인 아라곤 왕국에 도움을 요청해, 국제 전쟁으로 번졌다. 스페인 아라곤 왕국 대 프랑스-나폴리왕국 연합군 간의 전쟁이 되었고 전쟁은 20년이나 지속됐다.
이때 시칠리아로 온 아라곤 왕국의 왕은 페드로 3세. 그의 아들 페데리코 3세(=아라곤의 페데리코 2세)가 전쟁 동안 에리체를 베이스캠프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왕위에 오른 페데리코 3세는 에리체 사람들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에 대한 보답이자 승리의 상징으로 에리체 성당을 지었다.
깨알 정보: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도 있다. 베르디의 i vespri siciliani
에리체 성당
[종탑과 에리체 성당. 로마네스크 스타일 정면]
[성당 종탑에서 본 풍경]
[성당 종탑]
에리체를 돌고돌아 처음에 가려던 에리체 성당으로 갔다.
일단 성당 건물 옆에 따로 서있는 종탑torre di federico에 올라갔다. 시칠리아 만종 사건 당시 프랑스 군의 침입을 감시하는 용도였는데, 나중에 성당의 종탑이 되었단다. 28미터이고, 6개의 종과 108계단이 있단다. 108?^^
트라파니 쪽 전경이 보인다. 수많은 송신탑들이 거슬리긴 해도 염전과 바다도 보이고 촉촉히 젖은 마을도 보이고... 흐릿하긴 해도 낫 모양이라는 트라파니 지형이 고스란히 보인다. 비가 와서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못 본다고 한탄을 하며 다녔는데,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본질적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 종탑 내부는 19세기 말에 수리하며 많이 바뀌어서 원래 분위기는 없다고...]
[에리체 성당]
[에리체 성당 내부]
에리체 성당에 붙어있는 이름이 많다. la real chiesa madrice insigne collegiata가 공식 이름이고, 주로 real duomo나 duomo di erice로 불린단다. 또 duomo dell'assunta 또는 chiesa madre라고도 한다.
이름에 쓰인 단어를 풀어보니 이 성당의 지위, 역사, 위신이 드러난다. 일단 cattedrale가 아니니 주교좌는 아니다. 'real'이 붙어있으니 왕실 후원으로 지었다는 뜻이다. chiesa madrice는 이 도시의 기독교 전통의 근본이라는 뜻. insigne는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 collegiata는 주교좌는 아니지만 성당 참사회가 운영하는 교회라는 뜻. duomo dell'assunta는 이 교회의 주인이 maria assunta, 즉 하늘로 들어올려진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는 뜻. duomo는 지역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크고 멋있는 교회라는 뜻.
원래 이 자리에는 성모 승천에 봉헌된 교회가 있었단다. 시칠리아 유적 중에 빈 땅에 지었다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비너스 성의 자재들이 이 교회의 건설에 사용됐단다. 현재 비너스 성은 그냥 스스로 무너져내린 것이 아니었다.ㅠㅠ
19세기 초 neo-gothic 스타일로 리모델링 했다는 내부 장식은 아기자기 오밀조밀 예쁘다. 세상 풍파를 다 견뎌온 것 같은 겉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데 너무 찍어낸 듯 또는 너무 계산적으로 보여 막 감동적이고 그렇지는 않다. 레이스로 덮어놓은 듯한 아이보리색 천정 장식, 산호색 기둥, 군데군데 남아있는 옛 타일들. 예배당들은 15세기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에리체 성당 제단과 천정]
[성당 바닥 타일. 왼쪽 타일은 페데리코 2세(=아라곤의 페데리코 2세이자 시칠리아 왕국 페데리코 3세)가 1314년에 건축했음을 표시]
[에리체 성당 성구 보관실 유물들]
페폴리 탑torretta pepoli
[에리체: viale conte pepoli에서 본 풍경]
성당에서 나왔는데 버스 시간까지 3~40분 여유가 있다. 비너스 성을 다시 갈까 하다 입구를 찾지 못해 지나쳤던 페폴리 탑torretta pepoli에 먼저 가보자 싶다. 길의 풍경이 아침에 걸었을 때와 사뭇 다르다. 섬 하나가 보인다. 에가디 제도 섬 중 하나일 것 같다. 생각보다 가까워 보인다. 진짜 튀니지까지 보이려나?
부지런히 발리오 공원까지 걸어 올라가서 탑의 입구를 물었다. 입구의 위치 대신 유료임을 알려준다. 숙소에서는 아침식사 되냐고 물으니 5유로라고 하더니, 여기에서는 입구를 묻는 질문에 유로임을 말한다. 왜? 트라파니 풍토야? 저런 사람들을 처음 본 건 아니다. 백화점에서 간간이 봤다. 자신이 명품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원 중에 저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경우를 당한 느낌이지만, 그냥 오지랖이라고 해두자. 나 에리체 패스있는 사람이야.^^ 다행히 입장료뿐만 아니라 입구도 아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라 해서 지나쳤던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묻지 않았으면 절대 못 찾았다.^^
[에리체 페폴리 성]
[페폴리 탑에서 보이는 우 절벽과 좌 절벽]
[페폴리 탑에서 본 발리오 성]
이곳은 agostino pepoli 백작(1848-1911)이 지어 개인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너스 성의 복원에 참여했던 인물이란다. 그런 연유로 이런 명당(?)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염전을 가진 귀족 가문 출신이고 트라파니 시장을 지냈고 자신의 개인 컬렉션으로 museo regionale pepoli를 세웠단다. 세제스타 가는 길에 봤던 박물관 이름이 여기에서 왔구나... ^^ 이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흐릿한 것이 또렷해지는 느낌이 있다.
아침에 비하면 하늘이 너무 개여서 탑으로 가는 경치가 너무 좋아 신이 났다. 입구에서 검표원이 누군가와 트라파니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 이야기를 한다. 이런 정보를 놓칠 수는 없지... 내게도 그 가게를 알려달라 했더니 주소와 가게 이름을 종이에 적어준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정말 좋다. 날이 청명하지는 않아 멀리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색의 채도를 한껏 높이는 것 같다. 아침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아침에 비너스 성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분(?)이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됐다 싶다.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 케이블카를 타러 가야 한다. 그런데 트라파니 문porta trapani를 나오니 AST버스가 서있다. 트라파니 항구까지 가는 AST버스가 있는 걸 알고 있었는데, 저게 그 버스구나 싶다. 저 버스를 타면 한 번에 트라파니 항구까지 간다. 왕복으로 산 케이블카 표와 시내버스 표가 생각이 났지만 시간이 더 중요하다 싶어, 과감히(?) 케이블카 표를 날리기로 했다. 아침 버스와 달리 이 버스에는 사람이 많다. 남들은 이 버스로 에리체에 오는 것이었나 보다.^^
버스는 곧 출발했다.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내려간다. 그 경치 또한 좋다. 버스에 사람이 많으니 사람들을 비집고 사진을 찍겠다고 할 수가 없다. 사람 없는 버스가 그립다. 그렇다고 오늘 아침과 세제스타 가던 날처럼 버스 승객이 나 하나이길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