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젠토 기차역. 기차역 오른쪽 축대 위에 교회chiesa di san pietro와 종탑이 보인다. 종소리가 시끄럽다고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아버지에게 총질을 당했던 교회. 교회 정문 오른쪽에 그들이 살던 집이 있다. 루이지 피란델로의 생가는 따로 있음.]
[아그리젠토 성당 가는 길 풍경]
[아그리젠토 성벽의 길via delle mura과 두오모 길via duomo이 만나는 광장. 오른쪽으로 가면 대성당. 표지판에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이자 새 이름 지르젠티girgenti가 보이고, 아그리젠토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다 있다]
[아그리젠토 골목]
지르젠티girgenti는 아그리젠토를 이슬람세력에게서 빼앗고 시칠리아 왕국을 세운 노르만 왕조가 붙였던 이름이었는데, 무솔리니에 의해 로마시대에 뿌리를 둔 아그리젠토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최근에 역사지구(구시가지)에 한해 다시 지르젠티라고 부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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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 산꼭대기 마을이 에리체만은 아니었다. 에리체(750m)보다는 훨씬 낮기는 해도 아그리젠토(320m)도 산꼭대기에 있었다. 아그리젠토 대성당cattedrale di san gerlando이 언덕 북쪽 끝 벼랑 꼭대기에 있어 본의 아니게 다시 두 다리로 확인해야 했던 사실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쪽 끝 옛 성벽을 따라 난 길via delle mura로 가기로 했다. 그리스 식민 도시국가 시절 쌓았다던 성벽의 흔적 것 같다. 길을 따라 한없이 올라갔다. 이렇게 계속 올라가다보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느낌... 땡볕에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팠지만, 괜찮았다. 새로운 풍경이 다리를 이끌었다. 딱 봐도 관광객이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었다. 신전의 계곡에는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는데, 정작 이 도시를 탐험하러 오는 관광객은 낯이 선지, 어떤 아주머니의 시선이 계속 날 쫓기도 했다. 그녀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대는 내가 이상하게만 보였는지도...
올라가는 길 풍경에서 손길이 필요해 보이는 것도 많이 눈에 띄었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 보였지만, 잘 관리되고 보존되고 깨끗하고 단정한 것에만 아름다움이 있지 않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무언가를 아름답다 판단하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아그리젠토의 낡음과 약간의 혼돈이 좋았다. 낡고 오래된 건물,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 허름한 건물 벽 벽화, 흙으로 변하고 있는 석벽, 골목을 복도 내지는 통로처럼 남겨두고 그 위로 지은 건물들 등... 그 모든 것을 장식하는 파란 하늘이 있고 마을 아래로 펼쳐진 탁 트인 풍경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달리기 하다시피 올라가야 하는 형편만 아니면 너무 좋겠다 하며 언덕을 올랐다.
[아그리젠토 대성당. 교회의 역사와 내부에 비해 외관은 너무 소박하다. 왼쪽 아래 사진 속 너덜너덜한 양피지 형상은 악마가 수녀에게 보낸 편지. 오른쪽 가운데는 녹아내리고 있는 종탑의 벽]
[아그리젠토 대성당]
[아그리젠토 대성당 천장 장식. 머리 두 개 있는 독수리는 아라곤 가문의 문장이라고 함]
대성당... 유구한 역사가 얼핏 보이긴 하지만 겉모습으로는 대성당인줄 몰랐을 것 같다. 소박하기 그지 없고 남쪽 벽과 종탑은 조금씩 가루가 되어 부슬부슬 부스러져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도시는 발을 들인 순간부터, 몇 천년 전의 역사가 아그리젠토인 양 착각하고 있던 관광객에게, 아그리젠토의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성당은 그 새삼스런 자각에 쐐기를 박는 듯하다, 모른 척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자각의 쓰라림(?)은 성당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조금 위로를 받는다. 이곳에 표현된 것이 이 도시의 마음이라면 이곳에 대한 악명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 공간이 누구나 마음 깊숙이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그 진주일 지도 모르겠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그리젠토 대성당. 산 제르란도san gerlando의 예배당]
[아그리젠토 대성당. 주교들의 무덤]
노르만 성인 산 제르란도san gerlando에게 봉헌된 성당이란다. 산 제르란도는 아그리젠토 최초 주교였단다. 성당은 11세기에 지어졌는데, 천정만큼은 오리지널이란다. 종탑에 올라가며 천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감동스러울 만큼 무늬도 색도 곱고 예쁘다. 바로크 스타일로 장식된 내부는 비교적 최근 급히 수리한 티가 나기는 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그리젠토 대성당 종탑에서 본 풍경]
성당 종탑이 아그리젠토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그런 종탑을 오르지 않을 수는 없다.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아 별 기대가 없었는데, 깜짝 놀랄 풍경을 보여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탑에 올라야 보일 법한 풍경이다. 도시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바다도 보이고 너울거리며 겹쳐진 산들도 보인다.
이 성당은 또한 모든 소리가 제단의 성직자에게 잘 들리는 음향효과로 유명하단다. 그걸 포르타보체portavoce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목소리 전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입구에서 제단까지의 거리가 80미터나 된다고 하는데 입구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제단에 들린단다. 정말 그런지 너무 궁금하다. 아무나 붙잡고 확인해보자고 하고 싶다.
또한 악마가 수녀에게 하나님을 등지게 하려는 유혹의 편지를 보냈으나 수녀가 그 일을 성당에 알려 유혹을 벗어났다는 일화도 유명하다고 한다. 성당 입구 위에 너덜너덜해 보이는 양피지 모양 장식이 악마의 편지를 상징하는 것 같다.
P.S.
그 악마의 편지가 성당 교구박물관museo diocesano di agrigento에 보관되어 있단다. 교구 박물관의 소장품 중에 파에드라의 석관sarcofago di fedra이라 불리는 로마시대 석관도 있는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이 석관에 대한 극찬이 있어 유명해졌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파에드라라는 인물이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되어 빚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를 조각한 석관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