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020

시칠리아 여행: 07: 트라파니: 에리체 & 교회들 1



[발리오성Castello del Bálio 탑]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산 쥴리아노 교회의 돔과 종탑]


비너스 성을 나와 발리오 성 주변 공원을 돌아보는데 안개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발리오 탑도 올라가 보고 싶어 입구를 찾는데 모든 문이 닫혀있다. 쿨(?)하게 포기할 수 있다. 올라가봐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근처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이 걸어 올라온다. 저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들은 내가 모르는 무엇을 보고 올라오는 것일까? 비너스 성에서 보이는 에리체 풍경을 나만 못 보고 간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주차장이 있다며 웃는다.^^ 

순간 안개가 걷히더니 교회의 종탑과 돔이 보인다. 산 줄리아노 교회chiesa di san giuliano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와~ 하며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안개가 순식간에 풍경을 다시 가린다. 비너스의 밀당?^^ 아쉬움에 잠시 서성이다 사람들이 떠났다. 그러자 다시 안개가 걷히고 풍경이 보인다. 저기요, 다시 보여요! 라고 그들을 불러 세우고 싶다.






[밥 먹으러 온 고양이들]


에리체도 손바닥(?)만한데 길이 평행 수직 이런 개념 없이 나있다 보니, 여기가 저기 같고 도대체 방향을 못 잡겠다. 관광안내소 추천 경로를 따르겠다는 생각은 진작 버리길 잘했다.^^ 날씨 때문인지 높아서 그런지 구글 지도도 되다 말다... 다행인 것은 길을 잃어봐야 멀리 갈 수가 없다. 사방이 낭떠러지라... 골목길을 헤매는데 시간여행 하는 기분이다. 살아보지 않은 중세가 이랬을 것 같다.

어떤 골목에 들어섰는데 고양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든다. 골목에 사는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매일 밥을 주는 모양이다. 한참을 못 지나가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괜찮다며 지나가라 하신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 걸음으로 걷게 된다. 속으로 식사를 방해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에리체: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바다로 툭 튀어나온 산이 monte cofano]

또 조금 걸으니 낭떠러지가 나오고 안개가 걷혀 비너스 성에서 보여주지 않은 비탈의 풍경을 보여준다. 와, 이거다... 9월의 첫날인데 풀밭이 벌써 황금빛이다. 겨울에 눈도 온다는데, 가을도 빠른가? 아무리...


아주 높은 곳에서 에리체를 내려다 보면 그냥 돌 덩어리나 거대한 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돌이 모든 것을 덮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공을 들였거나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건축물은 없어도 돌이라는 재료의 투박한 아름다움이 감동적이다. 돌로 지어진 것들은 솜씨가 조금 모자란 듯 보여도 좋고, 무너져 내리고 있어도 좋다. 군데군데 이끼도 끼고 돌 틈 사이를 비집고 풀도 나고 꽃도 폈다.

예쁜 골목 앞에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다. 한 가정집 마당이 예쁘다. 누군가 한 명이 사진을 찍으니 다른 사람들도 줄줄이 사진을 찍는다. 나도 이번엔 동참하고 싶다. 남의 집 마당을 너무들 찍어대니 어떤 아저씨가 한 번 찍는데 5유로씩 내라 한다.^^ 우리 집 마당이라면 웃을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산 쥴리아노 교회chiesa di san giuliano


[산 쥴리아노 교회]


11세기 노르만 시대에 건설됐고 여러 번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교회의 바로크 스타일 종탑과 돔이 에리체의 주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눈에 잘 띄어 방향잡이가 되어준다. 18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보니 깔끔하고 소박하게 옛 장식들을 살리며 보수했다. 에리체의 성금요일 행렬에 쓰이는 성상들misteri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왠지 이곳의 성상이 트라파니 연옥교회에 있는 것들보다 예쁘고 보기 편하다. 좀더 감정적 intensity가 절제된 느낌...

P.S.
이 교회는 노르만 지도자가 이곳에서 아랍세력을 몰아내고 지은 첫 기독교 교회로서 이곳이 기독교의 땅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11세기에 아랍 세력을 몰아내고 시칠리아를 정복해서 다시 기독교 세계로 편입시킨 노르만 지도자 루제로 1세는 산 쥴리아노의 도움으로 에리체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을 기리는 교회를 지었고, 이후 산 이름도 산 쥴리아노로 바꿨다고 한다.





산 도메니코 교회, 산 피에트로 교회, 에토레 마요라나 과학 문화 센터


[산 도메니코 교회, 산 피에트로 교회, 에토레 마요라나 과학 센터]


에토레 마요라나 과학문화 센터centro di cultura scientifica ettore majorana는 세계적 명성이 있는 유명한 과학 학술 센터라고 한다. 산 도메니코 교회와 수도원chiesa e convento san domenico은 현재 이 센터를 위한 강의실로 사용되고, 산 피에트로 교회chiesa di san pietro는 학술센터의 본부로 개조되어 쓰인다고 한다. 관광 경로에 포함된 것을 보면 일반인도 접근이 가능한 곳인 것 같은데 문이 닫혀있다.




에리체 단것: 제노베제 genovese


[에리체: genovese]


한 골목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어서 들여다보니 마당 안쪽에 이탈리아 제과점인 파스티체리아가 있다. 가게 안은 더 바글바글하다. 사람들 틈을 그나마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맛집 앞에서만 나는 게 아닐까...^^ 

pasticceria san carlo. 이 집에서 뭐가 제일 유명하냐고 물으니 genovese라고 한다. 거의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간다. 저렇게 많이 사야 하나? 직원들은 너무 바삐 움직여서 붙잡고 뭘 물어 볼 상황이 아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으니, 한 개도 살 수 있단다. 조금 전 지나친 파스티체리아도 수녀원의 오래된 제과점antica pasticceria del convento이라는 이름이었고, 에리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제과점 pasticceria maria grammatico 역시 수도원에서 배운 솜씨를 자랑한다. 팔레르모에서도, 이곳에서도 단 것과 수도원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주문을 하니 초코를 줄까 오리지널을 줄까 묻는다. 한 개를 먹는다면 당연 오리지널이다. 사람들이 마당에서 서서 먹길래 나도 그들을 따라서 마당에 서서 먹었다. 안에 크림이 들었는데 리코타 치즈로 만든 것 같다. 카놀로 보다는 덜 달고 구워서 그런지 부드럽다. 몇 입 만에 꿀꺽. 배가 고플 시간이라 더욱 꿀맛이다.

P.S. 
genovese는 시칠리아 서부 지역 팔레르모, 트라파니 등에서 먹는 돌체dolce(=sweet. 과자나 케이크 류)라고 한다. 특히 에리체의 명물이란다. 속에는 커스터드나 리코타 크림을 넣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