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파니 한적한 주말 아침. via torrearsa, 산 아고스티노 교회chiesa di san agostino, 사투르노의 분수fontana di saturno. 산 아고스티노 교회는 12세기초 루제로2세가 템플 기사단을 위해 지어준 교회란다. 현재 정면은 14세기 것. 2차대전떼 거의 다 파괴된 것을 복원한 모습이라고... 사투르노는 그리스 신화속 크로노스와 동일 신. 트라파니의 페니키아 시절 이름이 그리스어로 낫을 뜻하는 drepanon이었는데, 크로노스의 낫을 의미한단다. 전설에 의하면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할 때 썼던 낫을 바다에 던졌는데 낫이 떨어진 자리에 땅이 솟아올라 지금의 트라파니가 되었단다. 실제 트라파니의 지형이 낫의 날처럼 생겼다.^^]
발의 물집은 어제보다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오른쪽 새끼발가락은 여전히 터질 듯 통통하다. 가만 보니 물집이 여러 겹이다. 물집 아래 또 다른 물집... 참나... 어제 안 터졌으니 오늘도 안 터지지 않을까? 원래 정신은 닥쳐야 차려지는 법. 오늘도 안일하게 요행에 의지하며 출정... ^^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아침을 먹고 가려 바를 찾는데, 일요일인 탓인지 바들이 문을 닫았다. 걷다보니 via torrearsa 끝에 문 연 곳이 하나 보인다. 시칠리아에 온 후 처음으로 드디어 바에서 아침 먹게 됐다. 이른 아침 바에서 아침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분위기로 보아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오래된 바다. 트라파니에 관광객이 많지 않다니 웬만한 바는 다 이런 분위기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너무나 눈에 띄는 존재다. 비록 정치적 이슈가 될 정도로 주목 받는 minority는 아니지만 따져보면 나만큼 다수에 속해 본 적 없는 사람도 드물 거다. 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주목쯤이야 별것 아니라는 거다. ^^ 시선을 못 느낄 수까지야 없지만 무심할 수 있으면 이런 곳 나쁘지 않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신호를 발산하면 즉각 반응이 온다. 문제 거리를 하나 던지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두고 토론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오늘은 냅킨을 찾아 두리번거리니, 냅킨이 내 테이블에 놓인다.^^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셨는데 양에 차지 않는다. 빠니니 하나를 더 먹고 일어났다.
에리체에 가기 위해 가리발디 광장에서 9시 15분 버스를 타야 한다. 트라파니 시내버스인 ATM버스로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에리체로 올라갈 계획이다.
오던 날 버스 정류장을 미리 알아뒀다. 가리발디 광장 근처 viale regina elena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항구 입구를 바라보고 오른쪽 길가에 있고, 다른 하나는 길을 건너서 광장 오른쪽 공원 앞에 있다. 오늘 타야 할 201번은 항구 입구 오른쪽에 있는 정류장에 선다. 주중이었다면 조금 먼 곳에 있는 또 다른 정류장까지 갔어야 했는데, 주말이라서 이곳에 서는 거다. 아무튼 숙소에서 가까운 가리발디 광장에서 버스를 타면 되니 잘 됐다. 담배가게에서 시내버스 표 2장을 샀다. 어제 케이블카 표를 왕복으로 사 놓았으니 시내 버스도 왕복으로.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오늘도 승객이 나밖에 없다. 일요일 첫 차라 그런가? 몇 개 정류장을 지났지만 아무도 타지 않는다. 시칠리아에서 나만 버스 타고 다니는 거야??? 버스가 북쪽 해안가를 지난다. 잠깐 창 밖 풍경이 아프리카 여행을 떠올린다. 아프리카 어딘가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황량하다. 설마 이걸 두고 북아프리카의 정취가 있다고 한 건 아니겠지... you never know what you gonna get이라는 표현에서 get을 see로 바꾸면 시칠리아 풍경이 설명 될 것 같다. 기사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없으니 노선을 바꾸어 가겠다고 한다. 끝내 버스에는 나 밖에 없었다.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가 이렇게 승객이 없어 어쩌나 싶다가, 하루에 몇 대 없으니 더욱 이럴 수 밖에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느리게 돌아가는 곳이라 해도, 현대인이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에 의지해 살기는 어려울 테니... 그러니 각자 자구책을 마련할 테고, 그러니 버스 승객은 더 없어질 테고, 그러니 버스는 더 줄고... 그러니 인구는 많지 않아도 차가 넘치고, 마음 놓고 걸어 다닐 길이 없고... 시칠리아 교통 문제를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줄이야... ^^
팔레르모도 이곳도 구도심의 교통 상황을 보면 chaos 같다고 생각하다, 알레시오 말이 떠오른다. 아무도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고가 나지도 않는단다. 규칙이, 겉으로 보이는 절도가 꼭 진정한 질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동네에도 신호등이 없던 시절에는 무질서해 보여도 나름 질서도 있고 잘 다니던 교차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신호등이 설치되며 상습 정체구간이 됐다. 지날 때마다 신호등 설치를 원망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무질서로 보여도 나름의 질서가 있을 수도 있다. 남일에 너무 왈가왈부하지 않는 걸로.
기사 아저씨가 다 왔다고 내려주며 케이블카 정류장을 가리키며 알려준다. 단독 승객이라 받는 특별 대접이다.^^
케이블카 정류장에는 나 말고 한 커플이 더 있다. 일반 줄과 급행 줄이 있다. 여행사에서 표를 살 때 급행 줄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케이블카가 오자 커플이 먼저 가라며 양보한다. 내보기에는 그들이 먼저 온 것 같아 사양했는데, 그것도 별 의미가 없다. 케이블카가 줄지어 계속 온다. 시칠리아에 이렇게 줄줄이 다니는 탈 것도 있었다.
오늘은 모든 탈 것이 전용이다. 버스도, 케이블카도...^^ 이 지역 전경이 다 보인다. 신시가지, 트라파니 시내, 염전, 바다까지. 풍경이 유럽 풍경화에서 종종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스산하다. 날씨 탓인 것 같다. 신시가지에는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이 빽빽하다. 오늘 풍경만해도 장관인데, 맑은 날에는 에가디 제도isole egadi도 보이고 튀니지까지도 보인다는데, 글쎄 서쪽 섬들까지는 몰라도, 아프리카 대륙이 보인다는 말은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아프리카가 전보다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아직도 아프리카는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 때문에 더 멀게 느껴지는 대륙인 것 같다. 어제, 그제는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영 아니다. 여행의 모든 날이 다 날씨에 좌우되지만 오늘은 진짜 날씨가 받쳐줘야 하는 날인데...
P.S.
트라파니 항구porto di trapani에서 한 번에 에리체까지 가는 AST버스도 있다. 버스가 빠르고 편하고 경치도 좋지만, 그래도 한 번은 케이블카를 타볼 것을 권한다. 케이블카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른 장관이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트라파니 일대 전경이 다 보였다. 저 멀리 염전과 바다까지...
P.S.
구시가지에서 케이블카 정류장(via capua, 4, 91016 casa santa, trapani)까지는 꽤 멀다. 트라파니 시내버스인 ATM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데, 가는 방법은 주중feriale과 주말festivo(일요일과 공휴일만 주말, 토요일은 주중)이 다르다. 주말에는 201번, 주중에는 21번이나 23번. 정류장도 다르다. 201번 정류장은 가리발디 광장 근처, 21번과 23번 정류장은 '1월 30일 거리via xxx gennaio'에 있다. 201번 정류장은 항구 입구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고, 21번과 23번 정류장은 1월 30일 거리 남쪽 끝 소방서vigili del fuoco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P.S.
어디서든 버스 정류장은 미리 알아놓는 것이 좋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어려웠던 미션이 정류장 찾기였다 싶을 만큼 버스 정류장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쯤 있다고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니다. 동네사람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다. 그들도 자주 타는 버스가 아니면 모른다. 모르면 모른다 하면 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 싫어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알려주기도 한다.^^ 이곳 정류장도 어렵게 찾았다. 광장 옆 공원 앞에 있는 정류장 밖에 안 보이는데, 표지판에 다른 버스 번호만 있고 201번이 없어 경찰에게 물었는데 매우 불친절한 태도로 모른다 했었고, 결국 헤매서 찾았었다.
[구글 지도: 트라파니 201번 정류장]
[구글 지도: 트라파니 21번, 23번 정류장]
[구글 지도: 에리체 케이블카 정류장 & AST버스 정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