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2020

시칠리아 여행: 12: 엔나: 피아짜 아르메리나 Piazza Armerina 가는 길



[엔나의 아침. 아래 왼쪽은 엔나 디아즈enna diaz 버스 터미널]


7시 55분 버스였다. 길도 어둡고 길눈도 어두운데 혹시나 헤맬까 싶어 10분이면 갈 거리에 있는 버스터미널을 향해 7시에 길을 나섰다. 7시 15분 도착. 터미널에 나밖에 없다.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멍하고 앉아 한숨 돌리다 마르살라 식당에서 챙겨준 비스킷이 아직도 배낭 주머니에 있는 게 생각났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칼로리를 미리 조금 보충해두자 싶어 꺼내 먹고 있는데 곧 한 아주머니가 와서 같이 기다리게 됐다.

여럿이 있으면 타인의 존재가 별로 의식되지 않지만, 둘만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다른 존재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주머니도 그랬었던 것 같다. 배낭이 무겁지 않느냐고 말을 건네 왔다. 본인도 몇 년 전에 그만한 배낭 메고 산티아고 길을 걸었단다. [수더분한 아주머니인가 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기자 본능이었던 것 같다. 전직 기자^^] 나도 그 길을 걸었고, 늘 그리워하는 길이다. 공통 화제가 생기니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아도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름은 파올라, 이탈리아 중부 동쪽 해안가에 있는 페자로라는 곳에 산다고 한다. 그녀도 혼자 여행하는 중인데 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가는 길이이고, 3일간 일정이 며칠 겹친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됐는지 텅비었던 터미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버스들은 오고 가는데 우리 버스는 시간이 됐는데 오지 않는다. 혼자였으면 버스가 오긴 올까, 이미 왔다 간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들어오는 버스마다 따라가서 맞는지 확인을 했을 텐데, 지금 나는 파올라가 버스마다 확인하고 다니는 것을 보며 앉아있다. 그녀가 오죽 잘 하랴... 동향 이탈리아인이 있으니 이렇게 든든하다. 버스는 15분이 늦었다. 자신도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면서 내가 더 이방인이다 싶은지 버스에 먼저 올라 자리를 맡아주며 나를 살핀다.

버스가 엔나 알타를 벗어나며 칼라시베따 풍경을 보여준다. 뿌옇던 어제와 달리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도 나도 탄성을 질렀다. 감동과 아쉬움의 탄성... 잔뜩 기대했던 풍경인데 떠나는 버스 안에서 스치듯 보게 됐으니... 오늘도 아침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들판과 들판을 첩첩이 에워싼 산들이 너무 아름답다. 엔나는 맑은 날에 아름다운 도시였다.

파올라의 영어와 내 이탈리아어 수준이 비슷하다. 그러니 어떤 언어로도 의사소통이 그렇게 원활하지는 않다. 간간이 어떻게 여행을 하게 됐냐, 계획은 어떻게 세웠냐, 얼마나 여행하며, 어디를 갔었고, 어디를 갈 것이냐, 이탈리아 다른 곳은 어디를 가봤냐, 이탈리아어와 영어는 어디에서 배웠냐 등등 인터뷰를 당하며 갔다.^^






9시 피아짜 아르메리나 도착.

버스는 마레스칼키 상원의원 광장piazza senatore marescalchi 한켠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구도심에서 1km쯤 떨어진 곳인데 버스 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인가 보다. 짐칸에서 짐을 꺼내고 작별 인사를 하려고 돌아보니 파올라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헐... 그래도 우리가 좋은 여행하라는 덕담 정도는 나누며 헤어질 사이는 되지 않았나? 먼저 말을 건네 와서 수더분한 사람인가 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왠지 도도함이 줄줄 흘렀었다. 도도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뭐든 마침표는 찍어야지... 그런데 그녀가 이탈리아인이라 의사소통만 좀 원활할 뿐, 이곳이 난생 처음이긴 매한가지라 긴장하고 정신이 없을 수 있지 싶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파올라는 숙소의 마중과 배웅을 받으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짐들고 낑낑거리며 숙소 찾아 헤매는 뚜벅이 여행자가 아니었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왼쪽은 성당의 돔. 이때는 저 건물이 성당인 줄 몰랐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카시노 장군 광장piazza generale cascino에 서있는 안토니노 카시노antonino cascino의 동상]


일단 숙소로 가서 짐을 내려놔야 뭐든 할 수 있으니 숙소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것 같은, 지금까지 봤던 시칠리아 도시들의 외곽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 이곳도 내게 어떤 위협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특이한 동상이 나온다. 장군인 듯한 사람이 우뚝 서있고 그 아래에는 병사들이 낮은 포복으로 성벽처럼 생긴 비탈을 기어올라가고 있다. 이것도 왠지 공산당 느낌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용맹을 떨친 이곳 출신 안토니노 카시노antonino cascino라는 장군이란다. 그의 이름을 딴 광장에 동상이 서있다. 공산당은 아닌데, 군국주의 시절의 유산이란다.]

구도심에 가까워지니 길이 점점 오르막으로 변한다. 피아짜 아르메리나도 높이가 거의 700m에 달하는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인데, 그 정체를 서서히 드러낸다 싶다. 평평한 길이 없다. 길이란 길은 모두 경사져 있고, 완만한 비탈길과 비탈길을 잇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가파른 계단도 사이사이에 있다. 골목은 기본 좁고, 길이 매우 복잡하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이런 곳이 많았었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숙소 가는 길]

아무튼 구도심, 이곳 표현으로는 첸뜨로 스또리꼬 centro storico에 있는 숙소를 지도를 보면서도 헤매다 겨우 찾았다. 입구 주변에 안내판도 예쁘게 만들어 붙여놨고 화분으로 장식도 해두고, 밝고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숙소였다. 벨을 눌렀더니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아주머니가 나왔는데, 전날 일찍 온다고 말을 해 놓은 상황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래서 이태리어로 떠듬떠듬 상황을 말하고 배낭만 맡겨 놓고 빌라 로마나에 가려고 나왔다.






엔나에서 피아짜 아르메리나 가는 교통편

  • enna alta diaz 버스터미널(Viale Armando Diaz, 80)에서 Sais Autolinee 버스로 약 1시간 소요
  • 월금: 6:55/ 7:55/ 12:30/ 13:15/ 14:10/ 14:35/ 17:45; 토: 6:55/ 12:30/ 13:10/ 14:15; 일: 12:40 (그때그때 다를 수 있으니 다시 확인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