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상으로 카스텔베트라노에서 마리넬라 디 셀리눈테까지는 13km 밖에 안 되는데, 버스로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내려보니 주차장 한 가운데. 다들 뿔뿔이 흩어지는데 믿고 따라가도 될 것 같은 관광객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버스 타고 이곳에 온 관광객은 나 밖에 없나 보다.
지도로 봐서 입구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근처를 헤매다 표지판을 보고 공원parco archeologico di selinunte e cave di cusa 입구를 찾았다. 입구 근처에 바가 있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점심 시간이 다 됐으니 당이라도 보충하고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아이스크림 먹고 물 한 병 사고 매표소로 갔다.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입구]
공원 입구가 거창하다. 제대로 관광지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이 보인다. 알레시오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매표원에게 가이드 투어가 있거나 가이드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누구 말도 다 맞는 말이 없다. 뭐... 무슨 연유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가이드... 없어도 그만이다. 이곳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으니 내가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일 수가 없다.^^
미니 기차를 많이 타던데 이 좋은 곳에서 걷는 기회를 시작부터 포기하고 기차를 탈 수는 없다. 그냥 천천히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만큼만 걸으며 보자 싶다.
오늘 관광의 결론을 말하면 머피의 법칙이 작용했는지 비는 오지 않았고 땡볕 땡볕 그런 땡볕이 없었다. 셔츠가 다 젖을 만큼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였지만, 물만 있으면 죽지는 않지 하며,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각오를 해서 그런지, 날씨가 그렇게 괴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떤 돌무더기가 어떤 신전의 돌무더기 인지, 어떤 돌덩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 돌덩이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혼자서 조용히 수천 년전 유적과 더불어 들, 풀, 꽃, 하늘, 나무, 바다를 시선에 담으며 간간히 바람을 느끼며 새소리 벌레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우선 동쪽 언덕collina orientale으로 갔다. 시간은 별로 없는데 공원이 너무 넓어 동선이고 뭐고, 중요도 순서대로 보기로 했다. 동쪽 언덕에는 신전 E, F, G와 플로리오 빌라 박물관museo baglio florio이 있다. 이곳의 세 신전에 붙여진 알파벳에는 복원 정도 상·하·최하의 의미가 있나 싶다.
신전 E는 셀리눈테를 소개하는 곳 어디에나 나오는 셀리눈테의 얼굴이다. 그런데 지금 서있는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던 모습이 아니라 복원해서 세워놓은 것이란다. 넓은 들판 위로 서서히 신전 E가 보인다. 하늘과 붉은 들판이 만나서 생긴 선의 틈을 벌리고 신전이 솟아오른 것 같다. 붉은 잇몸을 뚫고 올라온 이빨 같다고나 할까.
[셀리눈테 동쪽 언덕 풍경]
로마의 고대 유적지를 생각하면 초록 구름을 이고 있는 것 같은 소나무가 생각나는데, 시칠리아의 고대 유적지는 선인장과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주변에 종류를 알 수 없는 침엽수, 올리브나무, 유도화, 유칼립투스 나무, 종려나무, ficus, 버드나무처럼 늘어진 나무들, 기타 알 수 없는 여러 나무들이 있지만, 유난히 손바닥 선인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익지 않아서 그런지 이 녀석의 열매는 완전 초록인데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신전 E]
세제스타 고고학 공원의 온전한 신전을 본 지가 삼 일밖에 안 돼서 그런지 세제스타의 신전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의 설렘이나 신남은 없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마음은 변하는 것이구나. 마음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 하지만 또 다른 설렘이 있다. 공간 자체... 신전과 하늘과 구름과 식물과 땅 등등...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 모든 색의 조화... 비현실적 아름다움...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신전 E]
이곳 또한 도리아 양식 신전이다. 시칠리아에 남아있는 신전은 모두 그렇다. 기둥에 홈이 제대로 파여있고 밑단에 징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없다. 그리고 내부에 제단도 있다. 완성되어 신전으로 기능했다는 이야기다.
[셀리눈테 신전 E 안내판]
안내판을 보니 상세한 설명이 있다. 신전의 내부 구조, 그리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첼라cella 벽만 부분적으로 서있었고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는데 다시 세워놓은 것이라는 것, 원래 고대 그리스 이전 건축물인 megaron이라는 건축물 위에 지어졌다는 것, 헤라의 신전이었다는 것, 신전의 가장 깊숙한 부분인 아디톤adyton에 헤라의 조각상이 있었다는 것, 트리글리프triglyph 사이의 메토프metope에 팔레르모에서 봤던 조각들이 있었다는 것, 원래 12개의 메토프 조각들이 있었는데 현재는 5개만이 팔레르모 고고학 박물관에 남아있다는 것, 프리즈frieze와 페디먼트pediment를 구분하는 게이손geison 위에는 채색된 사자 머리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오래 전 그리스 신전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도리스 양식 신전 양 끝 기둥의 문제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공부할 때 지났어, 놀아, 놀아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공부 끝.^^ 그리스 신전 공부는 이만하면 됐다. 가이드 없이도 표지판만 잘 보고 다녀도 되겠다 싶게 곳곳에 표지판을 잘 붙여 두었다. 모두 외국어로 쓰인 설명이고 생소한 용어가 많아 그리스 신전 구조와 관련된 용어를 잘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냥 보면서 공부해도 된다. 자꾸 보다 보면 더러 익혀지기도 한다.^^
P.S.
도리스식 구석의 갈등doric corner conflict
도리아식 신전 디자인 원칙 중에 시각적 안정감을 위해 '모든 트리글리프의 중심은 기둥의 중심과 일직선을 이루어야 한다'와 '두 면이 만나는 프리즈의 모서리에는 트리글리프가 있어야 한다'가 있었다고. 그런데 두 원칙은 공존할 수 없는 원칙인 거다. 그래서 두 번째 원칙을 지키면서 기둥을 굵게 하거나(파르테논 신전), 모서리 기둥과 옆에 있는 기둥 사이를 좁히거나(파르테논 신전), 가장자리 메토프를 크게(델피의 아테나 프로나이아 신전) 하는 방식으로 첫 번째 원칙을 지키지는 못해도 시각적 안정감을 꾀했다고 한다. 아예 포기한 신전도 있다고. 나폴리 인근 파에스툼의 헤라 신전...
cm 단위의 오차 발생에 관한 이 문제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그 시대의 건축가, 철학자, 제사장들을 생각하면 왜 저래? 싶기도 하지만, 그 고민을 고민이라 인정하면 그 시대가 얼핏 보인다. 지금의 엄청나게 발전한 건축기술과 장비를 동원해도 만들기 힘든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 그 시대에는 도대체 얼마나 중요했을지,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만들수 있었을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온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부으며 온 사회가 함께 했을 고민... 관광객으로 길어봐야 20분 남짓 그 유산을 보고나서 그렇게 집착할 문제야? 그게 뭐라고... 하며 코웃음 치려던 마음을 정신 차리고 가다듬는다.^^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신전 F]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신전 F]
옆에 있는 신전 F는 아테나, 헤라클레스, 디오니소스 중 한 명의 신전이란다. 신을 ‘명’으로 세도 되는 것인지? 신전 어딘가에 쓰였던 돌임을 알기는 알겠지만, 돌무더기다. 그 옆에 있는 신전 G는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꼽히는 규모라고 한다. 제우스, 아폴로, 페르세포네, 데메테르 등 올림포스의 주요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이라고 한다. (다른 자료를 보니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이라고도 한다. 이 또한 아직 정설은 없는 듯.)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소아시아 didyma에 있는 아폴로 신전과 유사점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전의 흥미로운 점은 셀리눈테 신전들에 사용된 돌의 주요 채석장인 카베 디 쿠자cave di cusa에 이 신전에 기둥으로 쓰기 위해 채취해 가공한 돌 60 덩이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채석장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데, 보려면 예약을 해야 한단다. 신전 F는 돌 무더기라도 구조가 식별 되게 정리를 좀 하려 한 듯 한데, 신전 G는 기둥이 몇 개 서있기는 해도 알레시오 말처럼 완전 돌무더기로 보인다.
[셀리눈테 플로리오 빌라 박물관museo baglio florio]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박물관 보다는 들판을 하늘을 나무를 풀을 바람을 즐기고 싶다.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멀리 신전 C가 보인다. 저곳이 아크로폴리스다. 발을 잘 못 들였다가는 엄청나게 돌아갈 수 있어서 마침 서있는 꼬마기차 기사에게 어떤 길이 빠르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말 한마디로도 유쾌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 박물관을 통과해서 벌은 시간으로 길가의 풀과 꽃과 나무와 하늘을 보며 갔다.
[셀리눈테 아크로폴리스의 층계식 성벽과 그 주변 풍경]
층계 식으로 쌓은 요새의 벽이 나온다. 벽 왼쪽으로 바다와 해변이 보이고 뒤로는 신전 E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다. 내 일상적 행동반경 안의 풍경을 생각할 때 이 풍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시칠리아 풍경을 마주하며 비현실적이란 말을 남발하고 있다.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다는 말도. 입으로는 혹은 머리로는 도시가 좋다, 도시 취향이다 하지만 정작 큰 감동은 자연에서 받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자연과 문명의 조화... ^^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신전 C]
신전 C는 아폴로 신전이었다고 한다. 북쪽 면의 기둥은 원래 17개인데, 그 중 14개를 1925년부터 1927년 사이에 세웠다고 한다. 숫자로 말하면 꼭 맞는지 확인하게 된다. 얼핏 13개인데 하다 좀 떨어진 기둥까지 포함인가보다 하고 수긍. 신전 C는 이 부근 풍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전 C가 없으면 세계무역센터 없는 맨해튼만큼이나 허전해 보일 것 같다.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유적들]
O, A, B, D 신전, 비잔틴 시대의 시가지, 북쪽 요새 등을 상상력을 발휘하려 애쓰며 지나서 더욱 상상력이 필요한 지역을 지나며 성심 성의껏 보고 아크로폴리스를 한 바퀴 돌았다.
신전 B는 아그리젠토 출신 철학자이자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엠페도클레스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 설이 있단다. 그가 고안한 관개시설 덕분에 말라리아의 창궐을 피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는데, 기독교에서 성인에게 교회를 바치는 것과 같은 전통이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 새롭다. 뭐든 완전 새로 태어난 것은 없다. 다 과거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너무 중요한데, 학습에 매진하던 시절 이과라는 핑계로 그 부분을 소홀했던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학교 공부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그 말을 학교공부를 등한시해도 된다는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될 것 같다. 학습 과목이 너무 많았고, 그 많은 교과서를 다 들고 다니느라 한쪽 팔이 길어질 정도였지만, 욕심껏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교과과정이었다 싶고, 골고루 다 열심히 성의껏 공부하는 것이 맞았다.
시간을 보니 데메테르의 신역이 있는 가제라 언덕을 돌아보려면 세제스타에서처럼 초조해하며 땡볕 아래서 언덕을 오르내리며 달리기를 해야 할 것 같고 거리도 멀어 얼마나 걸릴 지 시간이 가늠이 안 된다. 빈약한 상상력 때문인지 공간 지각력의 부족 때문인지 자꾸 돌 무더기로 보이는 유적으로 미루어 또 돌 무더기가 있을 거야 하며 그냥 천천히 걷기를 즐기며 내려가자 싶다.
몇 갈래 길 중에 마음에 드는 길을 선택해 걸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여행지에서 종종 사진을 찍는 대신 녹음을 한다고 했었다. 지금이 바로 녹음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유칼립투스 나무를 흔들어 나는 소리,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 새소리. 대낮에 이런 소리가 있는 공간에 홀로 조용히 있어보기는 처음 같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잠시 멈추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머물 수 없는 여행자. 오래 멈추지 못하고 발길을 서둘렀다. 차 한대가 슈~웅 하고 지나간다. 순간 차 안에 있는 사람이 부럽다. 방해 받지 않으며 걷는 것이 내 일상 소원이고 시칠리아에서 실컷 그러고 있다. 그런데 차를 탄 사람이 부러운 걸 보니 걷기에 대한 갈증이 좀 풀렸나 보다.
이곳의 돌더미를 언젠가 신전E처럼 다시 쌓아 올리는 날이 올까? 우주의 만물은 순환하니 옛 것이 자연스럽게 스러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새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옛 것만 못한 것으로 대체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 세대의 어떤 것이 3천년 후에 발굴됐을 때, 역사적 가치가 아니라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역사와 관련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에 와서 결국은 과거의 흔적 쫓기를 하고 있다. 예쁜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쫓는데,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웬만하면 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보니 과거를 쫓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리스 신전은 건축적 역사적 의미가 담긴 그리스 신전이 아니라, 단순히 회화처럼 그 신전과 신전이 놓인 풍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실제 그 공간에 있어보니 내 관심이 조금은 입체적이 되는 것 같다.
야생화가 핀 봄이 이곳을 방문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했었다. 지금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이 황량한 들판에 꽃이 피어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싶다. 언젠가 봄에 와서,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고 태양의 기세에 눌려, 가봐야 돌덩이들 굴러다니겠지 뭐 하며 가지 않았던 곳들까지 구석구석 걸어보고 싶다.
[셀리눈테 고고학 공원. 공원에서 걸어 나오며 20분 안에 찍은 사진들. 풍경과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