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디아 성 castello di lombardia
[엔나 롬바르디아 성. 아래 사진 오른쪽 탑이 가장 높다는 피사나 탑torre pisana]
엔나에서 가장 볼거리로 꼽히는 곳은 롬바르디아 성이다. 이 성이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 자료마다 조금씩 이야기가 다르다. 기원전 시칠리아 고대부족 시카니sicani가 세웠다고도 하고 이슬람 유적이라고도 한다. 시칠리아 유적에 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아직 정설이 없다 싶은 역사가 많다. 너무 이해되는 상황이다. 새삼 고고학자나 역사학자의 고충과 더불어 고고학과 역사학의 매력이 느껴진다. 아무튼, 해발 970m 천혜의 요새에 세워진 성의 현재 모습은 13세기에 페데리코 2세가 재건한 모습이란다. 그는 사방 벽을 튼튼히 세우고, 모든 각도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탑을 세우라 명했단다. 그 결과 이곳에 20개의 탑이 있었단다.
그 후 14세기 또 다른 페데리코 2세는 이곳을 사랑해서 종종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시칠리아 중세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페데리코는 2명이다. 하나는 12~13세기 독일계 호엔슈타우펜 가문 페데리코 2세(또는 1세), 다른 하나는 13~14세기 아라곤 출신 페데리코 2세(또는 3세)] 옛날에는 높은 곳이 전략적 가치가 있어서 서로 차지하려 했고, 이곳 또한 그런 곳이었으나, 기술의 발달로 그 가치가 사라지자 한때 감옥으로도 사용되기도 했었단다. 현재는 20개의 탑 중에 남은 것을 6개라 해도 멀쩡해 보이는 탑이 1개 밖에 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이탈리아 북부 지명이자 옛 부족 이름인 롬바르디아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지역의 역사적 특성이 나온다. 노르만 세력이 이슬람세력과 전쟁을 벌이던 당시 롬바르디아 출신 용병들이 도왔고, 전쟁 후 그들이 계속 주둔하며 성을 지켜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더불어 기독교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부 이탈리아인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단다.
[엔나 롬바르디아 성 내부]
이탈리아에서도 큰 성으로 꼽히고 시칠리아에서는 가장 큰 성이라고 하는데, 20개의 탑이 어디에 다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규모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6개의 탑이 보존되어 있고 가장 잘 보존된 것이 피사나 탑torre pisana라고 한다. 탑에 올라 보는 전경이 멋있다고 하던데, 그 탑에는 올라갈 수는 없다. 올라갈 수 있다 하더라도 오늘 날씨로는 별로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마을의 서쪽 끝에 있는 페데리코 탑이라는 24미터 높이의 탑이 있는데, 성에서 그곳까지 연결되는 지하 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기 전에는 못 믿을 것 같다. 둘 사이 거리가 너무 멀다 싶다 (약 1.5km). 그런데 완전 허튼 소리는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아그리젠토에 있는 기원전 500년경에 만든 지하 수로가 아그리젠토 구시가지에서 신전의 계곡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면.
아무튼 우뚝 솟은 산 꼭대기에 성을 지어 사방에 돌로 높은 벽을 쌓아야 했고, 그 좁은 곳에 탑을 20개나 세워 무언가를 감시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땅굴로 이동할 궁리를 했던 왕의 삶이 참 힘겨웠겠다 싶다. 아는 분이 사파리에서 찍어 보내주신 세렝게티 사자의 클로즈업 사진이 떠올랐다. 사자가 포효하는 순간을 찍은 것인데 얼굴도 물론 상처투성이지만 입에 최근 것으로 보이는 찢긴 상처가 있었다. 밀림의 왕도, 인간 세상의 왕도 누구나처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싶다. we’re all trying hard...
[엔나: 롬바르디아 성 외부에서 본 피사나 탑과 1차 노예전쟁을 일으킨 에우누스의 동상]
성 옆으로 데메테르 바위 가는 길 성벽 아래 사슬을 끊고 분노를 표출하는 청동 조각상이 있다. 존재감은 미미해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찾아보니 로마 공화정 시대에 일어났던 3차 노예전쟁 중 1차(135년경 BC) 전쟁의 대표였던 에우누스eunus의 상이다. 1차 노예전쟁의 발생지가 엔나였다고...
당시 로마 귀족들이 곡창지대였던 이 지역의 땅을 독점해 거대 농장을 만들어 노예들을 가축처럼 잔혹하게 부렸다고 한다. 에우누스는 노예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시리아 출신 노예였는데, 귀족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자신을 시리아 신 중에서 데메테르에 해당하는 여신 아타르가티스atargatis의 화신이라 칭하며 사람들을 모아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군대는 많을 때는 20만 명에 달했고, 엔나뿐아니라 아그리젠토, 타오르미나와 메시나까지 점령하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단다. 결국 로마군에게 잔인하게 진압당했고, 살아남은 노예들은 본보기로 십자가 형에 처해졌고, 에우누스는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역사는 아니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는 맞는 것 같다. 작은 실마리라도 남겨둬야 잊혀지지 않지... 그러니까 평화의 소녀상 가지고 시비걸지 말라고!
데메테르의 바위 rocca di cerere
[엔나 데메테르의 바위]
[엔나 데메테르의 바위에서 본 풍경. 맨 위는 엔나, 가운데는 칼라시베타, 아래는 롬바르디아 성]
[엔나 데메테르의 바위에서 본 풍경]
엔나의 전경을 보려면 성에서 약간 북쪽에 있는 데메테르의 바위Rocca di Cerere가 훨씬 낫다. 체레레cerere는 데메테르의 로마 버전 케레스ceres의 이탈리아 식 표현이다. 바위에 오르면 막힌 곳이 없어 사방 전경을 볼 수 있다. 구불구불한 비탈길도 보이고, 엔나의 북쪽 측면도 보이고, 뱀처럼 들판을 가로지르는, 로마제국의 수도교를 연상시키는 고가도로도 있다. 날씨가 아쉬울 뿐이다.
이 바위는 시칠리아의 고대 부족 시카니sicani가 세웠던 데메테르 신전의 유적이라고도 한다. 시라쿠자의 통치자였던 젤로네gelone가 세웠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데메테르 신전의 유적이라는 것은 일치한다. 이곳에서 데메테르 숭배 의식이 행해졌고, 이곳이 그 숭배의식으로 유명했던 것은 이 주변이 시칠리아에서 듀럼밀(파스타용 밀) 생산하던 곡창지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옛날 사람들의 염원이 모였던 곳이라 생각하니 그저 바위덩이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 몸집만한 개를 데리고 다니며 바위를 전세낸 듯 소란을 떨고, 개가 계속 내 주위를 어슬렁거려도 보고만 있는 프랑스 일당이 분위기를 깬다.
바위에서 내려오니 성 근처 한적한 공터에서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전동휠을 타며 논다. 그 중 한 명이 처음 타는지, 옆에서 친구들이 도와주고 있다. 어떤 풍경 못지않게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인화라던 외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가장 예쁜 것도, 가장 추악한 것도 사람이지...
[비 오는 엔나]
페데리코 탑으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가면 해는 벌써 지평선 아래로 떨어졌을 거고, 짙은 구름에 비도 오락가락 해서 열의가 생기지 않는다. 내일 아침 일찍 피아짜 아르메리나로 가야 하니, 엔나는 이렇게 끝이지만, 길었던 하루 탓인지 별 아쉬움도 없다. 됐고, 밥이나 맛있게 먹자 싶다. 숙소에서 먹은 아침과 젤라또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다. 여행하며 이렇게 먹는 것은 단식이다.
P.S. 크리스피 광장piazza crispi 또한 엔나가 자랑하는 전경을 보는 전망대belvedere다. 내려다보면 그림처럼 예쁜 또 다른 산꼭대기 마을 칼라시베타calascibetta 사진을 찍는 포토존... 이 광장에는 또한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조각상이 있는 분수가 있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했다는 장소는 현재 엔나 남쪽에 있는 페르구자pergusa라는 호숫가라고 한다.
[크리스피 광장에서 본 칼라시베타와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조각상(인터넷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