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살라 가리발디 문porta garibaldi]
이 여행에서 처음 맞는 월요일. 도시와의 인연도 복불복이다 싶다. 할 일이 거의 없다. 박물관, 미술관 모두 문을 닫았다는 뜻이다.^^ 좀 더 영리하게 계획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일까? 그저 여행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고 창의력을 발휘할 순간인가?
[가리발디와 함께 시칠리아에 원정 온 천인대 기념물monumento ai mille과 해안 풍경]
[마르살라 해안 풍경]
바닷가를 걸으려 가리발디 문porta garibaldi 밖으로 나갔더니 타 죽을 것 같은 태양 아래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천인대 기념물monumento ai mille이 보인다. 가리발디가 빨간 셔츠를 입은 천명의 원정대와 함께 섬에 상륙한 사건spedizione dei mille을 기념하는 기념물. 그들이 타고온 두 척의 배를 형상화했단다. 금속판 장식에는 태어난 연도로 보이는 숫자와 사람 이름들이 빼곡히 타공되어 있다. 숫자와 이름의 의미가 궁금한데 설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첫 이름은 1791 parodi tommaso, 마지막 이름은 1845 menin domenico [태어난 연도, 성, 이름이란다. 15세부터 69세까지... 통일 이탈리아 공화국을 꿈꾸며 시칠리아를 향해 항해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학교 졸업하고 동창들과 만주로 독립운동하러 가신 적이 있던 외할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면 어떤 마음일지 조금은 알 수 있었을까?]
햇빛은 나를 태워 죽일 기세지만 해안가를 따라 릴리베오 고고학 박물관parco archeologico lilibeo과 시칠리아 섬의 최서단이라는 보에오 곶capo boeo를 지나 마르살라 해안을 한 바퀴 돌고 싶다.
고고학 박물관은 현존하는 유일한 카르타고 전투선으로 유명한 곳이다. 1차 카르타고 전쟁에서 침몰했다고 추정되고 1971년에 에가디 제도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길이는 35미터이고 넓이는 5미터로 추정되는 배의 일부란다. 그 옛날에 그렇게 큰 배가 있었다고? 현대인들의 과거에 대한 습관성 폄하...^^ 68명의 선원이 노를 저었단다. 로프, 항아리 등도 발견되고 선원들을 고무(?)하는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대마초 더미도 나왔다고 한다. 환각상태 활용에 대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었다. 참나... 공원 안에는 로마시대 공동주택insula romana 형태인 3세기 로마 빌라도 있는데 목욕탕 유적도 있고, 모자이크도 있다고 한다. 마르살라까지 와서 보기 힘든 페니키아 유적을 못 보고 가는 건 아무래도 좀 서운하다.
기념물을 지나 바닷가를 걷는데 이 땡볕 아래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인도는 있지만 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 같아 산책을 즐길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도 걷고 싶지만 남들 안 하는 짓은 안 하기로 한 결심이 떠오른다. 엉엉... 걸어봐야 박물관도 휴관이고, 물집이 터지지 않을 거라고 요행에 기대어 마냥 발을 혹사시킬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떠오른다. 내일 셀리눈테를 위해 멈추고 시내로 돌아가는 게 맞지 싶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마르살라 거리via giuseppe garraffa 풍경. 아래 두 사진은 카르타고와 로마시대 유적]
쥬세페 가라파 거리via giuseppe garraffa에 카르타고 인들이 쌓은 벽과 로마시대에 포장된 도로의 유적이라는 곳이 있다. 3천년전 삶의 현장이 도시 가운데 발굴 보존돼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멋있지도 않고,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지만, 지금의 내가 그 오래전 과거와 이어져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이 볼품없는 유적이 소위 prime estate... 그러니까 목 좋은 땅을 차지하고 존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지 싶다.
[마르살라: 문 닫힌 교회들. 시계방향으로 santuario dell'addolorata, chiesa del purgatorio, complesso monumentale di san pietro, chiesa di san giuseppe]
연옥 교회chiesa del purgatorio를 지나 숙소가 있는 레푸블리카 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 한쪽에 산 쥬세페chiesa di san giuseppe종탑과 시립 박물관complesso monumentale di san pietro의 뾰족 지붕이 보인다. 종탑 지붕과 뾰족 지붕의 타일 장식이 예쁘다.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에서도 그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칠리아에서는 유난히 타일 지붕 장식이 눈에 띈다.
[마르살라 시립 박물관complesso monumentale di san pietro와 공연 포스터들]
레푸블리카 광장 주변에 마르살라의 주요 시설이 있다. 두오모duomo di san tommaso di canterbury가 있고, 두오모 왼편에는 시청이 있고 오른쪽에는 시립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15세기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문화센터로도 쓰인단다. 카르타고,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이 있고 가리발디(1860년 5월 11일 상륙)의 승전 캠페인과 관련된 무기, 편지, 초상화, 사진, 제복 등의 유물이 있고, 도서관이 있고, 회랑에서 종종 야외 공연을 한단다. 마르살라 부활절 행렬에 쓰이는 성상misteri 전시실도 있고 마르살라에서 디자인된 꼭두각씨pupi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 뒤쪽에는 museo degli arazzi라는 박물관이 있는데 16세기 벨기에에서 짜인 태피스트리를 전시하는데 규모는 작아도 컬렉션이 훌륭하단다. 조금 떨어져 piazza carmine에는 회랑이 예뻐서 가보고 싶었던, 14세기 수도원을 개조했다는 시립 미술관pinacoteca comunale marsala ente mostra nazionale di pittura contemporanea이 있다. 성당을 빼고는 이 모두가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마르살라 두오모]
두오모의 외관은 바로크 스타일이고 내부는 현대식이다. 벽돌로 아치도 만들고 기둥도 쌓아 올렸다. 대리석 장식이 다 떨어져나간 로마시대 건축물 같은 느낌이다. 온갖 장식으로 장식한 공간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아름다운 공간. 규칙적으로 꼼꼼히 쌓아 올린 벽돌 자체가 훌륭한 장식 같다. 그런데 이 자리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한다. 2세기 초부터 9세기 까지 있었고, 이후 아랍 지배 시절 쇠퇴했다가, 노르만 왕조가 들어서고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머스 베켓에게 봉헌하는 교회를 지었고(1176-1182), 그 교회가 지금까지 변화를 거듭하며 이어져오는 것이란다. 성당은 17세기 초 개조가 시작되어 100년도 더 걸려 끝이 났고, 19세기 말에는 돔이 무너져 다시 수리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대적(?) 모습을 지니게 되었나 보다.
P.S. 현재 마르살라의 수호성인인 토머스 베켓은 1173년에 시성되었단다. 시성된 지 3년 된 영국 성인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성인이 노르만 왕조 윌리엄 1세와 2세와 가까운 관계였음을 반영한다고 한다. 실제 노르만 왕조는 당시 영국 왕실과 한 가문 출신이었고, 윌리엄 2세는 영국 왕 헨리2세의 딸과 결혼하는 등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