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2020

시칠리아 여행: 06: 트라파니: 아침 산책



[트라파니 아침바다]

[via torrearsa 풍경]


숙소를 나오면 바로 토레아르사 길via torrearsa이다. 이 길 따라 북쪽 끝에 생선 시장 광장piazza mercato del pesce이 있다. 그 광장에서 왼쪽, 즉 서쪽으로 북쪽 해변을 따라 난 길via mura di tramontana ovest이 너무 아름답다. 옛 집들 바로 옆에 길이 있고 길 옆에 바로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가 있다. 골목 끝에 또는 집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 곳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까? 아침에 수영복차림으로 나와 해수욕 하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니...


[트라파니 북쪽 해변 풍경]

해변 길을 따라 걷는데 생선 튀김 냄새가 난다. 빵 굽는 냄새도 난다. 부부 싸움 하는 소리도 들린다. 워낙 목소리들이 크니까 사실 싸움인지 대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자는 계속 고래고래 악을 쓰고 남자는 같이 악을 쓰다 허허 웃고 만다. 또 다른, 아까보다는 젊은 듯한 남녀의 목소리도 들린다. 역시 싸움인지 대화인지 구분이 안 된다.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멀리 고깃배로 보이는 배들도 있다. 수영하는 사람들 옆에 갈매기가 둥둥 떠서 쉬고 있다. 이번 생에는 그른 일상이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이 누군가의 불가능한 꿈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들이 눈물 나게 부럽고 그런 건 아니다. 자유롭게 꿀 수 있는 그 많은 꿈을 다 실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고, 실현되지 않은 꿈이나 로망으로 있을 때 좋은 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아저씨가 바닷가 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분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나밖에 없다. 휘파람을 불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고마운 일인가? 오래 전에 떠나온 세계라서...^^ 인사만 하고 빨리 지나쳤다.




가다 보니 길이 끝난다. 더 앞으로 갈 수 없고, 길 끝에 터만 남은 요새가 있다. 매일 같은 바다에서 다른 표정을 볼 텐데, 하물며 내가 지금껏 본 바다와는 얼마나 다른지... 아침 햇살은 새파란 바다조차 따뜻하게 보이게 한다. 트라파니는 오랜 역사에 비해 유적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듣는단다. 다 필요 없어, 아름다운 바다가 있잖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새에 올라 실컷 바다를 보고 나서 이 길과 평행한 남쪽 길로 건너 가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그 길로 건너가는 골목이 없다. 그래서 삥 돌아 원하는 지점으로 왔는데, 휘파람을 분 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저씨는 나를 지나쳐 앞서 간 적이 없는데, 축지법을??? 어떻게 빨리 내려왔는지 너무 궁금해 아까 바닷가 그 분 맞느냐고 영어로 물으니,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아까 그 아저씨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얼른 buona giornata(have a nice day)! 를 외치고 가려니, 거기서 예쁘게 사진 찍던 사람이네 라고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그 아저씨가 맞았다. 누군가의 눈에 예쁘게 보였다는 말이 황송하다. 이탈리아어를 조금 알아 듣기는 하겠는데 영 말로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아저씨에게 이탈리아어로 동네 사람들만 아는 지름길을 알아 낼 수는 없을 것 같아 또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아침 산책 나온 댕댕이들. 저런 개를 키워보면 사자를 키워보고 싶다는 황당무계한 로망 혹은 망상이 사라질까...]

[직접 나와 장을 보기도 하고, 이탈리아 영화에서 본 것처럼 바구니를 내려 물건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도시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 끝이 없다. 좀 더 탐험을 하고 싶지만 더 꾸물거리다 버스를 놓치면, 세제스타가 떠오를 때마다 후회하고 자책할 터라 서둘러 어제 알아 둔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