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2020

시칠리아 여행: 04: 팔레르모: 예수회 교회 Casa Professa





팔레르모 구시가지는 꽈뜨로 깐띠에서 교차하는 두 도로에 의해 4구역으로 나뉘는데 북동쪽은 로지아loggia 또는 카스텔라마레castellamare, 북서쪽은 카포capo, 남서쪽은 알베르게리아albergheria, 남동쪽은 칼사kalsa 지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지구별로 동선을 짜볼까 생각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선순위도 있고, 관람 시간 제약도 있고… 다행히 동선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웬만하면 걸어서 10여분 안에 갈 수 있고, 걸으며 우연히 만나는 도시의 모습도 재미있다.

카포 지구에 있는 성 아고스티노 교회에서 알베르게리아 지구에 있는 예수회 교회Chiesa del Gesù까지 걸으니 1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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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교회 Chiesa del Gesù는 카사 프로페사Casa Professa라고도 한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한데 어디에도 시원한 대답은 없다. 모교회mother church 또는 수도회의 본산 혹은 로마 카톨릭 조직에서 cathedral 같은 역할을 하는 교회를 일컫는 예수회 고유의 명칭이 아닌가 싶다. 예수회가 1549년에 시칠리아에 들어왔는데, 들어와서 처음으로 지은, 그러니까 시칠리아의 첫 예수회 교회라고 한다. 16세기 중반에 짓기 시작해서 완공하는 데 100년이 걸렸단다.

[아무도 교회 이름의 유래를 가르쳐 주지 않아 내가 파봤다. 험한 것이 나왔다? 아니라고 못할 만큼 유래가 복잡하다.^^ casa professa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종신서원을 한 사제들의 집이란 뜻이다. 그런데 예수회에서 종신서원의 의미는 보통 가톨릭 사제의 청빈, 정결, 순종 3대 서원에 추가로 '교황에 대한 특별서원'이 있단다. 교황이 명하는 선교 사명을 위해 어디든 가겠다는 서원이란다. 예수회에서는 마지막 서원까지 마친 사제를 professed father, 즉 이탈리아어로 professo(종신서원을 한; 종신서원을 한 사제)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 마지막 서원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란다. 그래서 예수회에서 professo라 함은 정예 멤버라는 뜻이고, 정예 멤버가 되어야 예수회의 주요 행정, 정책에 관여할 수 있단다. 깨알 정보: casa professa가 된 이유는 casa가 여성명사라 professa로 어미변화를 한 것. 그러니까 casa professa는 정예 멤버가 모인 예수회의 중심 본부... 그런 의미란다. 예수회가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니 그럼 casa professa는 예수회가 있는 지역에는 하나쯤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18세기에 교황청에 의해 일시적으로 해산당한 후 재건되는 과정을 겪으며 casa professa라는 명칭을 쓰는 예수회 교회는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시칠리아에는 있다. 시칠리아에는 모든 역사가 화석처럼 남아 있다.^^]


[카사 프로페사 정면]


교회의 정면은 매우 소박하고 평범하다. 모르고 지나가다 정면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들어갈 일은 없을 것처럼 생겼다. 16세기 교회의 전형적인, 절제된 모습이란다. 그런데 지금 있는 게 그때부터 있던 건물은 아니다. 2차 대전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는데, 새로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인터넷에 폭격당한 교회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기적이다. 귀중한 문화유산이 반달리즘으로 파괴되는 것은 짐승이 죄 없이 고난을 겪는 것만큼이나 화나고 가슴 아프다. 이토록 아름다운 인류의 유산을 파괴해도 정당한 이유는 없다. 이렇게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니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영화 Il Gattopardo에 이 교회 정면이 등장한단다. 표범을 뜻하는 Il Gattopardo는 시칠리아의 귀족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가 쓴 소설인데, 이탈리아에서는 클래식으로 꼽히는 책이란다. 이탈리아 고등학교 권장 도서라고... 
공화국에 대한 열망으로 통일을 꿈꾸던 역사적 격변기(리소르지멘토)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중세 사회와 별다를 바 없었던 시칠리아의 귀족 살리나 공작의 선택을 다루고 있다. 결국 통일운동은 새로운 왕국의 탄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살리나 공작은 신흥 부르주아 세력의 등장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정 한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귀족으로서 부르봉 왕가의 운명과 함께 가는 게 정의라 생각하며 몰락을 선택한다.
위엄있는 몰락, 몰락의 아름다움, 몰락의 품위... 이런 형용 모순의 존재를 역설한다, 내가 느끼기에...  책을 읽는 내내 시칠리아를 다시 여행하는 느낌. 쓸쓸함, 찬란함, 스산함, 아름다움, 다정함, 부조리, 야수성, 극강의 사치, 극강의 단맛... 내가 보고 느낀 시칠리아를 더 잘 표현한 책이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다. 
교회에 감동해서 교회를 한 장면 등장시킨 영화의 원작에도 관심이 갔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한 장면 등장했다는 장소가 소중해진다.^^ 영화는 못 보고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어서 봤는데, 원작과 분위기, 결말이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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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에는 아직도 폭격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폭격의 흔적인지 그저 쇠락한 모습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자라면서 폭격의 흔적을 본 적 없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끔찍한 흔적을 철부지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었을까... 우리 부모님, 어르신들, 사회, 나라 등등 우리의 대단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의 모습 중 부조리와 불합리에 너무 주목하지 않기로 한다. 믿고 기다리며 기대를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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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서에는 오전 관람이 11시 반까지라 해서 그야말로 부리나케 걸어왔는데, 하루 종일 관람이 가능하단다. 헐... 기분 좋은 어이없음이다. 

겉모습으로는 내부가 어떨지 절대 상상할 수 없다.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몬레알레 성당은 모자이크로 압도한다면, 이곳은 대리석 intarsia [대리석 상감. 이런 스타일을 mixed marbles라는 뜻의 marmi mischi라고 한단다.] 장식으로 압도한다. 형형색색 대리석을 종이 오리듯 오려서 온갖 형상을 표현했다. 대리석 상감과 온갖 조각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모두 대리석 조각으로 보인다. 그런데 스투코 조각들이 있고, 모두 쟈코모 세르포타의 작품이란다. 팔레르모 성당, 몬레알레 성당, 산 아고스티노 교회에서 이렇게 장식한 예배당을 봤지만, 전체를 이렇게 장식한 교회는 처음이다. 밝고 곱디곱다 못해 현란함이 극에 달했다. 그런데 묘하게 통일감이 있고 단정하게 느껴진다. 극과 극이 통한다는 게 이런 걸까?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교회가 시칠리아 바로크양식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어도 위대한 바로크 예술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marmi mischi로 실내 장식에 집중한 팔레르모 바로크양식과 노토, 라구자, 모디카 등 val di noto의 건축적 바로크양식이 너무 달라서 하는 말일 듯...]

로마 예수회 교회가 생각난다. 단순한 정면을 보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었다.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교회는 로마 예수회 교회였는데, 어쩌면 이 교회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준 안내문을 보며 보고 있는데, 일군의 사람들이 가이드와 함께 들어온다. 가이드의 설명을 조금 엿들어보니 역시 가이드가 좋다 싶다. 참고하는 두 안내서에 이 교회에 대한 설명은 반 페이지 남짓밖에 안 되고, 교회에서 준 안내문도 누구의 예배당인지, 누구의 작품인지 하는 정도의 정보가 있는데, 가이드는 어떤 무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다 설명해 준다. 염치 불고하고 따라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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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카메라 액정으로 우연히 사진을 봤는데 뭔가 이상했다. 자동으로 맞춰둔 ISO 설정 다이얼이 엉뚱하게 돌아가 있는데 언제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오전에 찍은 사진이 모두 모래알을 뿌려놓은 것 같은데, 사진 찍자고 다시 갈 수는 없다. 그게 왜 하필 팔레르모 바로크의 정수 예수회 교회 사진들이냐고??? 진짜 속상한데 작은 액정 속 사진은 그 와중에도 예쁘긴 하다. 크게 확대해서 보지는 않는 걸로... 

P.S. 교회 남쪽 면에 회랑이 있는데 지금은 도서관Biblioteca comunale di Palermo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미리 알았더라면 한 번쯤 들어 가봤으면 좋았겠다 싶다. 이 지역은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유대 지구였다고 한다.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유대인을 추방했는데, 당시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시칠리아에서도 모두 추방됐단다. 그러고 예수회가 들어왔는지, 아무튼 이 일대가 예수회의 영역이었던 같다. 근처  Palazzo Marchesi의 종탑이 casa professa의 종탑이었는데, 그 저택의 지하에서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에 앞서 몸을 씻었던 목욕탕Miqveh이 발견됐단다.



[카사 프로페사: 중앙 제단]

[카사 프로페사 중앙 제단: 다윗 왕이 아비가일을 만나는 장면; 삼위일체; 다윗 왕이 아히멜렉 사제에게 병사들을 위한 빵 다섯 덩이를 받는 장면]

[카사 프로페사: 예수회 창시자 이냐시오 Sant'Ignazio di Loyola와 하비에르 San Francesco Saverio의 예배당]

[cappella di sant’anna: 마리아와 양쪽에 아버지 요아킴과 엄마 안나가 있다; cappella della sacra famiglia: 성가족 예배당. 세르포타의 작품이라고 함; 예수회 성인 곤자가의 예배당cappella di san luigi gonzaga]






[예수회 고유의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 'IHS'도 보인다.]


[카사 프로페사: 토요일의 오라토리오oratorio del sab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