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bisso bistro. 단테 서점이라는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꽈뜨로 깐띠의 카포 쪽 모서리에 단테 서점Libreria Dante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가게가 있는데, 알고보니 식당Bisso Bistrot이었고 가이드북에 나온 맛집이다. 서점이었는데, 후손이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변경했단다. 맛집에서 점심 한번 먹자 싶어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좋다. 식사 주문은 12시 30분부터 받는다는데 기다려도 좋단다. 벽 보고 앉는 바가 있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맛집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여유로울 배포는 내게 없다.
채소가 고파서 샐러드를 일단 시키고, 시칠리아에 왔으면 한 번은 먹어야 할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와 시칠리아 와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 한 잔을 시켰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와 후식 카사타]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주 재료가 가지다. 가지를 튀겨 토마토 소스를 넣고 버무려 리꼬따 살라따ricotta salata(=salted)라는 시칠리아 특산 치즈를 뿌려 먹는다. 내가 시킨 것은 생면 파스타였는데, 생면 식감이 특이하면서 너무 맛있다. 탄력이 엄청 좋은데, 씹으면 미끄덩하고 이 사이를 빠져나가는 우동 면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탄력이 있어도 쫀득해서 이가 면에 박힌다. 이런 식감의 생면은 처음인 것 같다. 구멍 큰 강판으로 간 치즈도 페코리노(=양) 젖으로 만든 것이라는데 ricotta(=recooked)라서 그런지, 페코리노 로마노pecorino romano와는 완전 다르다. 양젖 치즈 특유의 향이 강하겠지 했는데, 묻지 않았으면 양젖 치즈라는 것을 몰랐을 만큼 특유의 향이 없다.
감탄하며 신나게 먹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칠리아 식사 시간은 본토 보다 늦단다. 점심 1시, 저녁은 9시가 보통이란다. 서빙하는 직원들이 양해를 구하며 내 양쪽 빈 좌석에 손님들을 앉혔다. 그러는 중에 주인인지 매니저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직원에 비해 나이가 좀 있는 여자의 눈초리가 몇 번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그러려니 했다. 양이 적당해서 후식도 시켜 먹었다. 시칠리아에 왔으면 한 번은 먹어야 하는 cassata와 커피로. 그러고는 갈 길도 바쁘고 사람도 많아 빨리 일어섰다.
계산은 카운터에서 하면 된단다. 계산서를 보여주는데 가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착하다. 어제 샐러드 한 사발에 병에 든 음료수 한 잔 마신 것과 별 차이가 없다. 50유로를 냈다. 34.50유로를 거슬러 받으면 된다. 그런데 20유로짜리 한 장과 동전 한 주먹을 쥐어준다. 아까부터 눈초리가 곱지 않던 여자다. 잔돈이 아닌 큰 돈을 냈다는 언짢음의 표시인 것 같기도 하고 (50유로짜리도 큰 돈이고 100유로짜리를 내면 경기한다), 이때가 기회다 하며 눈치를 제대로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짜증이 확 난다. 고이 받아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10유로짜리 없니 라고 이탈리아어 반말로 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2인칭으로 말하면 반말이다.) 한 성질 하는 티가 났는지 기세가 누그러지며 없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손님이 얼마나 많이 들고나는데, 10유로 한 장이 없을까. 뻔한 거짓말이다.
사람들로 꽉 찬 카운터가 계산대와 붙어 있어, 카운터에 앉은 사람들의 주의가 우리에게 집중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모으는 존재인데, 실랑이의 냄새까지 풍기니... 어찌나 자잘한 동전으로 줬는지 15유로가 한 주먹이나 된다. 동전을 카운터에 확 뿌렸다. 그러고는 동전을 액수 별로 분류해 맞는지 확인하고 하나하나 주웠다. 그러자 이해가 안될 만큼 기세가 꺾였다. 눈치까지 보며 친절한 어조로 맞느냐고 묻는다. 인상을 계속 쓰며 맞다고 대꾸하고는 보란 듯이 천천히 지갑에 꾸역꾸역 넣었다. 다 넣으니 손바닥 반 만한 지갑이 겨우 닫힌다.
저런 인간이 내가 무서워서 꼬리를 내렸을 리 없다. 보는 눈이 많으니, 시끄러워 좋을 게 없겠다 싶어 낯빛을 바꾼 것뿐... 교활한 인간…
문제는 이 집이 그 여자 빼고는 딱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음식이 꾸밈 없이 소박하고 맛있고 게다가 가격도 착하다. 언짢은 기분으로 나와서 걷는데 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이 된다. 결론은 다시 가는 걸로. 그런 사람은 적절히 다뤄 줄 일이지 피할 일이 아니다. 피하는 건 그런 인간들의 영역을 넓혀주는 것... (그런데 괜한 고민이었다. 다시 갈 시간이 없었다.^^)
P.S.
환전할 때 고액권은 쓰기 어려울 수 있으니 주로 50유로짜리로 달라고 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미국에서 100불짜리를 내면 좋아하지 않았고, 받기는 해도 펜 같은 것으로 위폐인지 확인하기도 해서 뭔가 번거로웠다. 그 기억 때문에 환전할 때 큰 액수 지폐를 되도록이면 피하는데... 이번에는 신용카드나 ATM을 되도록 안 쓰려는 생각으로 한 달치를 환전하려다 보니 액수가 꽤 됐다. 돈 꺼내러 금고에 갔다 온 직원이 내 말대로 하니 부피가 너무 크다며 대부분 100유로짜리로 챙겨와벼렸다. 다시 바꿔오라고 돌려보내기도 싫고 설마 못 쓰기야 하겠냐 싶어 그냥 받았는데... 관광객이 쓰는 돈이 다 푼돈이다 보니 쓸 때마다 스트레스다. 100유로짜리를 내면 거의 모두 경기를 한다. 사정을 말하니, 다비드가 몇 장 바꿔줘서 버티고 있는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100유로는커녕 50유로만 내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뭘까? 식료품을 빼면 우리나라나 물가도 비슷한 것 같은데… 이 섬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도 이러는데 다른 곳은 어떨지 걱정이다. 은행에서는 바꿀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어쩌라고? 아무튼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