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2020

시칠리아 여행: 04: 팔레르모: 산 아고스티노 교회



[13세기 아키볼트 입구와 장미창; 왼쪽 아래는 남쪽 입구. 장식은 15세기 domenico gagini의 작품; 오른쪽 아래 사진 속 아키볼트 양쪽 검은 두 점이 교회를 세운 두 가문의 문장이라고 함.]

[쟈코모 세르포타가 장식했다는 실내]

숙소에서 가까운 산 아고스티노 교회Chiesa di Sant’Agostino를 먼저 보기로 했다. 다비드도 모르는 곳이었지만, 안내서에도 나오고 구글 평이 좋다. 

13세기에 당시 시칠리아를 주름잡던 키아라몬테Chiaramonte 가문과 스클라파니Sclafani가문이 세운 수도원 교회라고 한다. 입구를 검은 돌로 테두리를 두른 아키볼트archivolt가 장식하고 있다. 

[아키볼트에서 보이는 지그재그와 톱니 문양 장식과 아키볼트 가장자리의 현무암 테두리는 끼아라몬떼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한다. 스클라파니 가문은 현재 시칠리아 주립 미술관에 있는 죽음의 승리Trionfo della Morte가 걸려있던 건물의 건축주. 그 그림은 병원으로 건물 소유가 바뀐 후 안뜰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였단다.]

그 위에 특이한 장미창이 있다. 아키볼트 옆에 커다란 점같아 보이는 알아볼 수 없는 장식이 붙어 있는데 이 교회를 세운 두 가문의 문장이란다. 입구는 13세기 것 그대로 있는 것이고 장미 창은 14세기 것이란다. 교회 북쪽에 작은 회랑도 있다. 회랑에서 교회 내부로 들어가는 고딕 스타일 입구와 창도 원래 모습이란다. 시칠리아에서 보기 드문 고딕 양식의 건물이라 하는데, 외형과 골격만 당시의 모습으로 보인다.

새하얀 내부는 17세기 쟈코모 세르포타의 스투코 조각들로 장식 되어 있고, 조각 사이사이 시칠리아 화가들의 그림이 있다. 산타 치타 오라토리오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 새하얀 공간이 꽤나 인상적이었을 것 같다. 

미사가 시작되려는지 사람들이 모여들고 제의를 갖춰 입은 신부님 모습이 보인다. 미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상식과 양식이 있는 사람이다. 어제 몬레알레에서 난데없이 몰상식한 관광객 취급당한 설움의 뒤끝이 남았다.^^ 교회가 잘 보존·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당 기부함에 동전을 넣고 서둘러 교회를 나왔다.





[왼쪽 위: 산 아고스티노; 오른쪽 위: 시칠리아 수호성인 산타 로잘리아. 양치기 소녀 복장을 황금으로 만들어 입고 해골 옆에 세상 태평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귀엽다. 십자가, 백합(순결), 해골(죽음과 고독), 장미 화관(이름의 유래) 등이 그녀의 상징이라고 한다] 

[13세기 오리지널 고딕 스타일 아치 입구와 회랑 풍경]


P.S. 시칠리아에는 교회가 진짜 많다. 작은 마을에도 몇 십 개의 교회가 있다. 상상도 못한 시칠리아의 모습니다. 와서 보지 않았으면 시칠리아가 이렇게 경건한 곳인지 아마 평생 몰랐을 거다. 안내서에 소개되지 않은 교회도 엄청 많다. 너무 많으니 크고 유명한 교회만 소개하기도 벅찼을 것 같기는 하다. 매번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감동적인 곳이 있다. 교회 공개 시간은 비슷한 것 같아도 다르다. 각자 다 사정이 있다. 하루 종일 여는 곳도 있고, 중간에 break가 있는 곳도 있고, 오전에만 열기도 하고 오후에만 여는 날도 있다. 어떤 교회는 공개 시간표가 붙어 있는데도 아예 문을 열지 않아 몇 번이나 헛걸음을 했던 적도 있다. 안내서에 나온 유명 교회의 시간표는 대체로 맞지만 다 맞지는 않는다. 몇 번 골탕을 먹었다. 교회는 안 다녀도 교회는 열심히 찾아 다닌다.^^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면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내서에 나오지 않은 교회라면 대체로 오전 12시 전이 좋고, 아침 8시경 아침 미사 시간이 가장 안전한 시간인 것 같다. 오후라면 4시경이 비교적 안전한 시간이다.



[Chiesa dell'Immacolata Concezione (인터넷 사진)]


P.S. 카포 지구에서 꼭 봐야 할 교회는 카포 시장 안에 있는 콘체지오네 교회Chiesa dell'Immacolata Concezione였던 것 같다. 차양에 가려 외관도 잘 보이지 않고, 입구도 허름하고 시장통 한 가운데라 주변이 북새통이었다. 참고하던 두 안내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 그 앞을 여러 번 지나며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리석 상감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손꼽히는 예쁜 교회였다. 심지어 팔레르모 바로크 양식의 정점으로 꼽힌단다. 역시 이탈리아에서, 특히 팔레르모에서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하면 안 됐던 거였다. 내가 보았던 marmi mischi(시칠리아 특유의 대리석 상감 장식)의 극치, 산타 카테리나 교회와 비교해도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더 정교하고 섬세하단다. 교회 입구에 늘 카르마를 구하는 손이 있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교회라는 뜻인 건데, 그 때는 그걸 알리가 없었다. 이 교회를 계속 지나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해 론리플래닛에는 산타 카테리나도, 콘체지오네도 나오지 않았었다. 봤던 론리플래닛 중 유일하게 실망스러웠던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