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zzo chiaramonte 단지 안마당]
종교재판 박물관Museo dell’Inquisizione은 6시까지 문을 연다. 부지런히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BBC Sicily unpacked에서 소개한 곳인데 꼭 보고 싶다.
[P.S. 이 때는 종교재판 박물관만 공개되는 줄 알았는데, courtyard나 다른 방과 전시실도 공개되는 듯... 개인적으로 볼 수 있는지 문의]
박물관은 키아라몬테 궁전palazzo chiaramonte과 인근 건물을 포함하는 단지 안에 있다. lo steri라는 별명이 있는 이 건물은 14세기 시칠리아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했던 키아라몬테 가문의 궁전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기문이 몰락하고 아라곤 출신 스페인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고, 그 후 왕실 세관을 거쳐 1601년부터 1782년까지 종교 재판소와 종교 재판에 회부된 죄수들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단다. 한동안 버려졌다가 1970년대에 복원되었고 현재는 팔레르모 대학 소유이고 대학의 네트워크의 중심이라고 한다. 강의실로 쓰려 복원하다 종교재판 시절 이단으로 고발되어 갇힌 사람들이 남긴 낙서가 발견됐고, 그래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낙서 말고도 시칠리아의 상징 같은, 레나토 구투조renato guttuso가 그린 부치리아la vucciria 그림이 있다.
[P.S. steri는 hosterium(=fortified building)에서 온 말이란다. 이 궁전의 주인 Manfredi I Chiaramonte는 모디카에 엄청난 영지를 가진 백작이었단다.]
이곳은 개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매 시간마다 안내가 있는데 언어별 안내 시간이 다르다. 다행히 40분쯤 기다리면 영어 안내가 시작된다고 한다. 학생이나 건축가냐고 묻는다. 그러면 할인이 되나 본데, 그 질문이 순간 낯설다. 아무런 타이틀 없이 산 지 너무 오래되었나보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 한 잔 하고 싶어 갈만한 곳을 물으니, 단지 안 안뜰 구석에 카페가 있다고 한다.
카페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다. 조용히 커피를 앞에 놓으니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지난 이틀을 생각해보니 패닉에 가까운 상태였지 싶다. 시행착오의 시간, 적응 기간이라도 해두자... 오늘은 지난 이틀보다 차분히(? 혹은 진정된 상태로) 보내고 있는 걸 보면 평소의 나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루틴... 매일 똑 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는 비관에 빠졌을 때는 나를 옥죄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그날그날 쫓기듯 정신이 없으니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라는 걸 느낀다. 여행에도 여행에 맞는 루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여행이 모험이 됐다. 의도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로 모험 아닌 여행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됐든 기왕 할 것, 잘 해보자 싶다. 내일 아침 트라파니로 떠나서 시칠리아를 한 바퀴 돌고 거의 한 달 후에 다시 팔레르모로 돌아온다. 인형극를 비롯해서 아직 못 본 것은 그때를 기약하기로 한다. 오페라와 노르만 궁은 일정 때문에 그때 봐야 하고...
[박물관 전시실. 접견실ala delle udienze이었다는데, 낙서가 마치 프레스코화 같다.]
카페 직원이 와서 문닫을 시간이라고 한다. 카페를 나와 안내 없이 볼 수 있는 전시실을 보고 있으니 오늘 안내를 담당한 직원이 와서 부른다. 학생으로 보이는데 순한 인상이다. 관람객은 모두 네 명이다.
[레나토 구투조의 부치리아]
[오른쪽 남자가 레나토 구투조인듯...]
팔레르모 시장을 봤다면 그림에 등장하는 것 중 낯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림 속 도미orata도 시장에서 본 것처럼 휘어 있다. 가이드에게 혹시 그 이유를 아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싱싱해 보이려고 생선장사가 휘어 놓은 것이다, 사후 강직이다 등등 관람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ㅎㅎ 무엇 하나 대충 그린 것이 없다. 황새치 머리, 휜 orata, 눈을 감을 수 없어 부릅뜬 채 매달린 토끼, 매달린 채 발골 당하는 소, 뱀처럼 긴 호박, 채소, 과일, 절인 올리브, 케이퍼, 치즈, 소세지, 햄, 심지어 호두까지... 모두 다 식별 가능하다. 빽빽하게 그려진 대상들이 그림의 가운데 있건 가장자리에 있건 덜 중요해 보이는 것은 없다. 잘 눈에 띄지 않을 디테일에는 하이라이트 조명을 비춘 듯 하다. 모든 게 주인공이라는 게 굉장히 신선하다. 내게 창작의 원칙 혹은 기교를 가르쳤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주변을 희생시켜 주제를 부각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그림을 두고 산만하고 주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평론가들에게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이 아끼는 그림이란다. (시칠리아를 다니다 보면 불쑥불쑥 이 그림을 만나게 된다.) 이제 나도 아낀다. ㅎㅎ 처음 볼 때는 너무 강렬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서게 하는 느낌이었는데, 자꾸 볼수록 좋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가 생각나기도 하고, 민중화라고 불리는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 중 한 명이 구투조라 했는데 누군지 헷갈린다. 그의 사진을 찾아봤다. 머리모양과 미간에 세로로 패인 주름으로 봤을 때 맨 뒤에 있는 남자가 그다 싶다. 그가 그가 맞는다는데 한 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잡아 끄는 사람들은 스페인 종교 재판관.]
진지하고 공부 열심히 하게 생긴 가이드는 단지 안 다른 건물로 우리를 이끈다. 원래 지하 감옥에 이단자들을 수용했다 공간이 부족해 다른 건물을 지어서 수용했다고 한다. 낙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종교재판이 시칠리아에서도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단다. 이 낙서들이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고 아직도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몰랐다는 말이 너무나 믿어지지 않아 어떻게 몰랐을 수가 있냐고 물었더니, 종교재판이 금지되자 종교재판에 관한 흔적을 모두 말살했기 때문이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행태다. ㅎㅎ 모든 문서를 폐기했고, 증거들을 태웠고, 고문 도구와 흔적을 모두 없앴단다. 감옥의 낙서는 석회를 발라 깨끗이 지웠단다. 그렇게 몇 백 년이 흘러 종교재판은 몇 백 년 사이에 시칠리아에서 사라진 역사되었다고 한다. 목격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았는데, 실제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과거였음에도 그런 일이 있을 뻔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해자의 기록은 없으니 피해자의 구전이나 기록이 역사를 보존하는 방법이었을 텐데,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굳이 그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하고 싶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아픈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덜 아프다. 그런 아픔을 견디며 모멸과 냉소를 각오하고 용기를 낸 위안부 할머니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후손은 그 문제를 알았을까? 세월에 그런 만행들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런 사건만큼이나 두려운 일이다.
[왼쪽: 레판토 해전. 위 두 성인은 san rocco와 santa rosalia라고...; 오른쪽: 신을 향해 열심히 기도하지만 괴물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왼쪽 아래가 변기. 재판관을 조롱하는 화장실 낙서. 재판관이 타고 가는 당나귀가 똥을 싸고 있다.]
[종교 재판관들. 모두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다. 아래 부분 가운데에 저울을 들고 있고, 오른쪽 인물은 잘린 머리들 들고 있다.]
낙서들이 복원된 방들을 보여준다. 안내를 받으면 혼자였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을 알게 된다. 죄수들을 신분에 따라 성별에 따라 따로 수용했다고 한다. 수용자에 따라 낙서가 다르다. 여자 수용실의 낙서는 꽃과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있다. 방마다 낙서의 색이 다르다. 붉은 낙서가 있고 검은 낙서가 있다. 붉은 낙서가 있는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갇혔던 곳이고, 검은 낙서가 있는 곳은 부유한 사람들이 갇혔던 곳이란다. 가난한 사람들은 붉은 바닥 벽돌 간 것을 사용했고, 부유한 계층은 감옥에 석탄이 제공돼 석탄으로 그렸단다. 재판관들이 볼 수 있는 곳에는 신앙을 과시하듯 고백하는 낙서들이 있는 반면, 그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화장실 벽에는 그들을 조롱하는 낙서가 있다. 그렇게라도 하며 원통함을 견뎠구나 싶다. 심판관들은 죄수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절대로 수용실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심판관이 수용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단다. 수도회 수사diego la matina였던 사람인데 심문을 받다 차고 있는 수갑으로 재판관을 죽였단다. 그는 나무 의자에 묶인 채 몇 달을 보내다 화형 당했고, 죽은 재판관은 순교한 성인으로 시성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그 수사에게 봉헌됐단다. 음... 낙서의 내용은 신앙을 고백하고, 고문을 기록하고, 종교 재판을 풍자한다고 한다. 섬에 유대인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낙서도 있고 사투리를 포함해 각종 언어로 쓰인 낙서도 있단다. 영어로 쓰인 낙서가 눈에 띈다. 또 화가의 솜씨 같은 낙서도 있다. 나이, 성별, 인종, 국적,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든 종교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실제 이교도를 제거하기 보다는 정적이나 원한이 있는 사람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고, 재판관들의 돈벌이 수단이었단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써서 풀려났다고...
말로만 듣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의 현장... 실제 피해자들이 남긴 증거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런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그렇게 까지 비이성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것 같다.
P.S. 궁전에 대한 글에 카를 5세에 반대하는 세력을 처형해 머리를 창살에 달아 걸었던 흔적이 건물 벽에 있단다. 사진 속에 흔적이 있을까 사진을 확인해보니 사진 한 장이 없다. 이 건물주 가문이 워낙 유력가문이라서 그랬는지 이 건물 스타일을 따라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고, 키아라몬테 스타일chiaramontano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란다. 어딘가에서는 우아하고 엄숙하다고 표현했던데 내 눈엔 육중해 보이기만 하고 멋이 없다 생각했었다. 맘에 안들어도 그렇지 사진이 한 장을 안 찍었다. 이 건물 앞을 몇 번을 지났는데... 아무리 멋이 없어도 기록인데... 아무튼, 멋은 없다 하면서도 건물 벽에 성에서 볼 수 있는 총안도 있었고, 장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뭘까 하며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그 벽에 사람 머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내가 걸었던 길에 피가 뚝뚝 떨어져 줄줄 흘렀다니 먼 옛날의 일이라도 섬뜩하다. 역사가 너무 잘 보존되어 옆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는 것도 꼭 좋은 일은 아니겠다 싶다. 좋지 않은 역사는 청산되지 않은 것만 기억하는 걸로... 아닌가? 다 기억해야 하는 건가? 에고, 모르겠다. 스페인 총독이 거주할 당시 총독은 대문으로 출입하지 않았단다. 사람들에게 공격 받을까 두려워해서 비밀 통로가 있었고, 그곳을 통해 드나들었다고 한다. 총독이면 혼자 다닌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호위병을 대동하고도 떳떳이 다닐 수도 없을 만큼 원성을 샀을까? 성에 갇힌 것과 다름없이 살며 무엇을 누렸을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그들에게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랬다니 그랬나 보다 하는데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리발디 정원 담장 쇠창살]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나무가 있는 가리발디 정원Giardino Garibaldi이 바로 키아라몬테 궁전 앞에 있다. 그 동안 못 봤던 정원 담장 쇠창살 조각이 눈에 띈다. 죽은 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곳곳에 잔혹한 코드가 박혀 있는 듯...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그만 목격하고 싶다.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고 없는 일이 아니고 인간의 삶이 계속되는 한 지구 어딘가에서는 인간의 잔혹사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오늘은 그만 직시하고 싶다.
밧줄의 산타 마리아 교회Chiesa di Santa Maria della Catena
[밧줄의 산타 마리아 교회Chiesa di Santa Maria della Catena. 교회의 정면은 카탈루냐 고딕 스타일이라고 한다.]
바닷가 쪽으로 인상적인 교회 건물이 보인다. Chiesa di Santa Maria della Catena. 굳이 해석하자면 ‘그 밧줄의 성모 마리아 교회’. 교회 이름에 밧줄이 들어간 연유가 있는 전설이 있다. 14세기 말 세 명의 죄수가 piazza marina에서 처형될 뻔하다 험악한 날씨 때문에 이 교회로 오게 됐단다. 죄수들이 교회 안에 있는 성모마리아의 프레스코 화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도를 했더니, 그들을 묶은 밧줄이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목숨을 구했단다. 교회를 지은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경건하게 다 보고 싶지만, 인간적으로 교회가 너무 많다. ^^
[P.S. 마리오네트 박물관Museo internazionale delle marionette Antonio Pasqualino이 Palazzo Chiaramonte 단지 북쪽 면에 접해있다. 평이 좋은 박물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