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며...
그리스 신전을 보러 세제스타에 가야겠는데, 타란톨라trantola버스로 갈 수 있다는데, 정류장 위치를 모르겠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찾아봤으면 더 찾는다고 나올 것 같지 않을 만큼 찾았다. 결정적이고 중요한 정보라 그렇게 뒤진 건 아니었다. 그저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이었을 뿐... 당연히 트라파니에 가서 물어보면 쉽게 알 것이라 생각했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날 탓했을 뿐, 버스 정류장을 몰라서 세제스타에 못 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트라파니...
여우 아저씨에게 물으니, 모른다. how amazing! 이 아저씨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자신을 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그래도 켕기는 구석은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시작하는데,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고 얼굴은 뭔가 잔뜩 마뜩잖은 표정이다. do you know... 로 시작하는 질문이었는데... 모르면 no 라는 대답으로 충분했고 그 이상의 기대는 결코 없었다. 찾아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단지 네가 아는지 모르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어본 죄로 그냥 갈 수는 없고... 또 기다리라는 거잖아. 그의 마지못한 서비스가 하나도 고맙지 않다. 설마 누구에게든 일단 '기다려'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인터넷에서 그렇게 찾아도 못 찾은 것을 그가 인터넷에서 찾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혹시나 inner circle 만의 정보망이 있을 수 있으니 benefit of doubt를 주고 싶기도 하고, 시간 여유도 좀 있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 정류장 위치는 못 찾고, 물어보지도 않은 버스 시간을 알려준다. 뭐라도 찾았다는 티를 내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버스 시간과 다르다. 2시에 버스가 있단다. 그럴 리가... 나 또한 12시에도 있느니 어쩌니 하며 가타부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그냥 dog 무시... ^^
숙소를 나와 아까 봐두었던 관광 안내소로 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심통 맞아 보이는 안내원이 대항해 시대에 그려졌을 법한 지도를 하나를 꺼내 펼치더니 원을 크게 그리며 이 근처에 있으니 근처에 가서 다시 물어보란다. 실측으로 반경 200미터는 되지 않을까... 참나...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시칠리아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닌데... 팔레르모에서 정류장을 끝내 찾지 못했던 것도 어쩌다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었다. 버스 정류장 위치쯤은 누구나 알 테니 이곳에 오면 간단히 해결될 거라는 낙관은 큰(?) 오산이었다.
[친절하고 고마운 바 Caffetteria Maria 77.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다]
둥근 원 속 지역은 기차역 주변이다. 항구가 있는 남쪽 해변을 따라 걷는데, 동네가 영 썰렁하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까지도 잔뜩 겁을 먹었었는데 버스에서 내린 지 몇 분 안에 무안할 지경으로 긴장을 다 풀었다. 이곳도 치안을 염려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안내원이 그린 원 안에 들어왔는데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동네와 달리 밝아 보이는 카페가 하나가 보인다. 카페로 들어가 scusi(= excuse me)! 라고 외쳐 보았다, 누구든 쳐다봐 주는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바리스타가 고개를 돌려준다. 눈을 맞추고 대뜸 fermata di tarantola bus per segesta(세제스타 가는 타란톨라 버스 정류장)! 라고 하니 환하게 웃으며 바로 코 앞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준다. 이때 bus는 '버스'가 아니라 '부스'라 발음해야 한다. ^^ 버스 표는 바 오른쪽에 있는 담배가게tabacchi에서 사면 된다고도 알려준다. 그의 미소에 호텔과 관광 안내소에서 당한 설움이 조금 풀리는 듯하다. 좋은 사람이 아니고는 저렇게 웃을 수 없지... ^^
담배가게로 갔다. 줄을 서서 기다려 세제스타 행 버스표를 달라고 하니, sul pullman(=on the coach)이라고 한다. 맞아, 고속버스를 pullman이라고 하지... 생각난다, 생각나... ^^ 버스에서 사면 된다는 뜻이다. 풀만이란 단어가 기억 속 어딘가에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신이 났는데,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혼잣말처럼 버스가 2시에나 있을 텐데 한다. 그래서 12시에 있다던데요 라고 대꾸하니, 다른 사람이 그렇다며 내 말에 동조를 해준다. 한편 아까 여우 아저씨의 말이 떠오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사람은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바에서 바로 코 앞이라 했고 방향도 아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버스 정류장으로 보이는 것이 없다. 사람이 지나가야 다시 묻기라도 하지... 그냥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돌았다. 30분은 헤맸지 싶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처럼 버스 표지판이 보인다. 바리스타가 가리킨 방향도 맞고, 그 바에서 볼 때 코 앞에 있는 것도 맞다. 찾고 나면, 못 찾고 헤맨 게 신기하다. 누군가가 이제는 낯선 여행지에도 길을 잃을 수 없는 시대라고 했다, 스마트 기기 덕분인지 때문인지... 웬만하면 그 말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길을 찾아 헤맬 수 있다. ^^
그런데...
여우 아저씨와 아주머니 말이 맞았다. 12시 버스가 있다가 없어진 것이다. 2시 버스를 타면 1시간 안에 세제스타를 봐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못 간다는 뜻이다. 내일은 토요일인데도 다행히 버스가 있다. 그럼 됐다 싶다. 어차피 한 번은 했을 고생이고, 버스 정류장을 알아놓은 것만도 큰 소득이다. 적어도 시칠리아에서는...^^ 세제스타에는 내일 오전에 가고, 오늘은 내일 가려던 염전에 다녀오는 걸로...
[트라파니: 세제스타 행 타란톨라 버스 정류장 (구글 지도). 나처럼 길눈 어두운 사람에게 이 지도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포기하지 말고 세제스타에는 꼭 가보길...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고고학 공원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P.S. 타란톨라 버스 정류장은 autostazione(piazza giangiacomo ciaccio montalto, 5)에 있는데 아무리 봐도 AST버스 표지판만 보여 헤맸더니, 긴 건물 양쪽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타란톨라 버스 정류장은 AST 정류장 반대 쪽에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 초밥집 sushi onda를 찾으면 정류장은 초밥집 맞은 편에 있으니 찾기 쉽다. 안내서에 나온 버스회사 홈페이지에 접속이 안돼서 여행자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시간표를 보고 계획을 세웠는데 버스 스케줄이 바뀌었던 거다.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방도는 나도 딱히 알지 못한다. ㅠㅠ
[버스 터미널에서 이렇게 생긴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버스표는 기사님께 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