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서쪽 길 건너 대주교 궁 안에 교구 박물관이 있다는데, 마음이 바빠 다음을 기약하고 발라로 시장mercato ballarò으로 향했다. 사실 점심을 포기하면 볼 수 있는데,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는 발라로 시장에서 점심을 꼭 먹고 싶었다.^^
시장 모습은 카포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약간 거친 느낌이다. 옛날부터 이주자들의 동네였다는 알베르게리아 지구에 있다. 세 전통시장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이고 아랍 suk 구조가 가장 잘 남아 있다고 한다.
시칠리아 음식을 파는 가게를 찾아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켰다. 부르스케타 한 조각, 새우 튀김, 속을 채운 오징어, 가지 튀김 위에 생선살을 넣은 카포나타를 올린 것.
복잡하게 조리되지 않아 원 재료의 맛이 살아있고 모두 예상되는 맛 그대로였다. 강원도에서 먹었던 음식 같은 느낌. 심심하고 꾸밈없어 첫 입에 감탄사가 나오지는 않지만 왠지 자꾸 먹게 되고, 먹다 보면 재료 자체가 맛의 비결이자 철학임이 느껴지는... 다만, 오징어를 채운 속은 입에 맞지 않았다. 어제 먹었던 정어리 말이와 같은, 빵가루를 주재료로 한 것이었는데, 특이한 향신료를 쓴 것도 아닌데 왠지 질감없는 물컹함이 입에 맞지 않는다. 빵가루 대신 쌀이나 찹쌀을 써보라고 하고 싶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쌀이 치즈만큼 비쌀 수도...^^ 이탈리아 음식에서 속을 채우는 재료로 리코타 치즈가 많이 쓰이는데, 빵가루는 치즈 같은 비싼 속 재료를 구할 수 없는 서민들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입에 맞아 맛있다고 할 수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왠지 면목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멀쩡하게 생긴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젊은 남자 직원에게 손을 내밀며 뭔가를 요구했다. 그러자 남직원은 언짢은 표정으로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내게 주문 받고 음식을 날라준 상냥한 여직원이 남직원을 타박하며 남자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며 보낸다. 남자의 차림새가 허름했으면 우리 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장면인가 보다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불량한 분위기를 풍기긴 했어도 너무 멀쩡해 보여 뭐지 하며 한참을 지켜 봤었다. 여직원의 태도도 뭔가 이상했다. 그를 달래는 듯 굉장히 상냥한 태도였다. 예사로워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일으켰지만 물어 볼 일은 아닌 것 같고, 물어 볼 시간도 없어, 부지런히 먹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옮겼었다.
아직도 보호를 명목으로 한 pizzo의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어렴풋이 알고 나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본 것이 pizzo 뜯는 장면이었구나 싶다. 그렇다 하면 그날 목격한 장면의 앞뒤가 맞았다. 그런데 아직 상인들에게 pizzo 뜯고 하는 무리는 마피아가 아니라 동네 불량배 조직이란다. 이제 마피아는 그렇게 찌질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단다. 통 크게 마약 거래나 인신매매 등을 한다고... 참나... 단순한 생각으로는 왜 그런 자잘한 부조리조차 근절하지 못할까 싶다. 금사빠 관광객의 눈에는 너무 멀쩡한 곳으로 보이지만, 이면에 뭔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느껴진다. 보여주는 것 보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다치는 동네일 수 있다는 느낌...
첫 발을 내딛자 마자 시칠리아를 좋아하게 되었지만(사실, 가고 싶어서 간 곳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무턱대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목격할 때마다, 세 글자가 떠올랐다. 마.피.아. 그랬음에도 누군가 시칠리아를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판칠 수 있는 한심한 곳이라고 비난한다면, 속상할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곳은 아니라고 역성을 들기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내 의심의 시선을 깨끗이 거둘 수는 없었다. 순간순간 저들은 마피아일까, 저들은 마피아와 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마피아는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마피아가 약간 금기어 같은 단어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관광객인 척 천연덕스럽게 마피아에 대해 물을 수는 없었다. the being who must not be questioned…
시칠리아 도처에서 마피아의 악행을 알리고 저항하려는 노력이 얼핏얼핏 눈에 띄었다. 그런 노력이 마피아의 존재와 위세를 증명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