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2020

시칠리아 여행: 06: 트라파니: 아침 식사 & Albergo Maccotta 유감 2탄



여행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식사가 호텔 조식이다. 아침 메뉴에 등장하는 커피, 계란, 햄, 치즈, 빵, 잼, 버터, 크루아상, 과일 등등의 조합을 너무 사랑한다. 살루미와 치즈가 맛있는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더... 그렇지만 바에서 먹는 아침도 좋아한다. 사람 구경하고, 책 읽고, 글 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아서... 그래서 호텔 조식을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침에 카운터로 내려가니 오늘은 어제의 늙은 여우가 아닌 늙은 늑대가 앉아있다. 어제 아저씨의 느낌이 붉고 교활했다면 이 아저씨의 느낌은 검고 음흉하다. 

기다리며 먼저 인사할 기회를 줘 볼 걸, 오늘도 못 기다리고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왠지 인사를 받는 태도가 불쾌하다. 내가 상대가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고 유감스러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인사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만큼 내가 먼저 인사하기를 실천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 숙소에서는 이상하게 누가 먼저 인사하느냐에 대해 연연하게 된다.

아침 식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5유로를 내야 한다고 한다. 먹겠다고 하니까, 5유로를 내야 한다고 재차 말한다. 나 5유로 없어 보여??? 인사에 이어 또 기분이 나쁜데, 알았다고 식당으로 갔다. 직원의 인적구성으로 볼 때 조식을 기대할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단지 바닷가에서 아침 산책을 할 생각이라 시간을 절약하고 싶었다.

빵, 살루미, 치즈 등 일반적인 이탈리아 조식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뷔페 식으로 차려져 있는데 여우와 늑대의 품성에서 느낄 수 있는 만큼 아주 인색하고 초라하게 차려져 있다. 뭘 바라냐, 이만하면 됐다 싶다. 식당을 지키던 여직원에게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음식을 가져다 먹고 있는데, 늑대가 식당으로 오더니 나를 힐끗거리며 여직원에게 언성을 높여가며 호통을 친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야기가 길다. 그냥 시끄러운 것도 거슬리는데 대꾸도 못하는 어린 여직원에게 호통을 쳐대니 짜증이 난다. 식당에는 나 밖에 없다. 나는 손님으로 안 보여??? 힐끗거리는 시선 때문에 왠지 나 들으라고 저러는 거야 싶기도 하다. 심증이 때로 무섭게 정확하지만 나를 두고 저럴 이유가 없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말자 하고 말았다.

P.S. 
오후에 들어가니 여전히 늙은 늑대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붕어인지 속이 좋은 건지  아니면 습관이 무서운 건지 난 또 아무 생각 없이 먼저 오후 인사를 건넸고, 그 자식은 역시 또 냉큼 인사를 받아먹었다. 그러고는 대뜸 너 내일 아침 먹을 거야 라고 물었다. 전후좌우 설명 없이 그 질문이 끝이다. 보통 숙소 직원이 손님에게 말을 걸 때는 오늘은 어땠니, 어디를 갔다왔니 로 시작하지 않나? 아무튼...

안 먹겠다고 순순히 고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고 돌아서는데 뭔가 대단히 불쾌하다. 아침 식당에서 늑대의 지랄이 나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었는데 그 추측에 확신이 생긴다. 왜 그러는 거지? 내가 아침값 낼 돈 없어 보여?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지 싶다.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까? no way… 오늘 상차림으로 볼 때, 저것들은 오늘 남은 것 내일 또 올린다. 그 수준이면 냉장고에 있는 것 고스란히 꺼내 놓는 거라 손님이 하나 더 있고 없고가 문제될 리가 없다. 게다가 규모가 작지 않은 숙소라 내 입 하나 더 있고 없고는 티도 안 난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니 묻는다고 순순히 대꾸한 내 자신에 화가 난다. 이해가 안 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할 게 아니라 의도를 물었어야 했다. 또한 배경설명 없이 다짜고짜 답을 요구하는 태도의 무례함을 언급했어야 했다. 적어도 내게는 다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도록...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만, 그건 비겁한 변명이다. 더러우면 치워야 한다. 적어도 치우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피했다. 사태 파악이 좀 늦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면 다시 가서 물을 수도 있는데 안 했다. 더러워서 피하는 태도가 몸에 밴 거다.

P.S. booking.com 평점이 9점 이상인 곳을 예약했는데, 이곳은 8.x점이었지만 론리 플래닛의 추천을 믿었다. 예약 사이트의 평점에 더 무게를 뒀어야 했던 것 같다. 후기에 ‘너무’ 좋고 친절하다는 평이 꽤 있는 것으로 봐서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다 싶기도 하다. 유감스럽게 이것도 Albergo Maccotta에서의 불쾌한 경험의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