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중앙에 있는 손톱만한 돔은 고고학 박물관 옆 교회Chiesa di Sant'Ignazio all'Olivella]
아무리 피곤해도 내 침대가 아닌 곳에서 늦잠을 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출을 보겠다고 화장실 발코니 문을 열고 서 있다. 침실보다 화장실에서 보는 풍경이 더 좋다. 일기예보는 구름과 비인데, 실제 하늘은 구름은 많아도 비를 내리지는 않는다. 동쪽 하늘이 붉다. 짙게 낀 구름이 갈라진 틈으로 하늘이 조금 보인다.
카메라로 일출 방향을 겨냥하고 서 있는데, 카메라 액정 속 마씨모 극장의 야간 조명이 툭 꺼진다. 아마도 일출 시각인가 보다. 해가 수평선에서 건물 위로, 건물 위에서 구름 위로 올라오려면 일출 시간보다는 늦게 보이겠다 하며 기다리긴 기다리는데, 과연 구름 사이 저 좁은 틈으로 얼굴을 보여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런데 곧 주변 구름을 점점 더 붉게 물들더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점점 더 솟아올라 좁은 틈 사이로 온전한 원형임을 증명하고 바로 위 짙게 드리운 구름 뒤로 모습을 숨긴다. 마치 하늘 위로 해가 지는 것 같다. 온전한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고, 마씨모 극장의 야간 조명은 일출 시각과 연동돼 작동한다는 소소한 사실을 알게 돼서 기쁘다. 야간 조명은 다 일출과 일몰 시각에 맞춰 자동으로 작동하게 설정되어 있는 건가?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디저트 먹고 사람구경 하고, 일기 쓰고 책 읽고.... 그런 여행을 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절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광장에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도 나는 그런 곳에 가면 안 되는 사람이고, 그런 곳에 가는 사람은 따로 있는 양 눈길 한 번 안 주고 지나치고 있다. 내가 바를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바쁜 걸까? 혼자 여행할 때면, 맛집을 찾아다니지 까지는 않아도 나만의 맛집 센서에 잡히는 곳에서 밥도 먹고, 좋은 카페가 보이면 쉴 겸 커피 마시고 글 쓰고 책 읽고 그러며 다녔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도 있지만 체력이 좋아진 탓(?)도 크지 싶다. '당최' 쉴 필요를 못 느끼니... 당최는 할버니의 단어. 나 할머니 그립네. ^^ 아무튼... 다른 때는 박물관을 보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 전시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하기도 하고 숙소로 돌아올 때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아직 그래 본 적이 없다.
보는 것 좋아하고 보고 싶은 것도 많지만 배터리 광고 속 북 치는 토끼 인형처럼 종종거리며 끊임없이 돌아다닐 생각은 없는데, 딱 그러고 있다.
오늘 방문 목록에 담긴 목적지가 열 개도 넘지만, 천천히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것까지가 내 몫이라고 마음을 다스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