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2008

산티아고 가는 길: 04: Roncesvalles까지



생장 모처 지트 주인은 아침 일찍 차로 오리손 산장의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산장 앞에 내려주었다. 산장 레스토랑에서 오리손에서 묵은 사람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어제 미리 주문해두었던 샌드위치를 받았다. 8시 48분 출발.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엄청 불고 추웠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온 기모 셔츠를 꺼내 입고 싶었는데, 꺼내 입을 수가 없었다. 비도 내리고 땅이 젖어 마땅히 배낭을 내려놓을 자리도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바람이었다. 깊숙이 있는 셔츠를 꺼내려면 뭔가를 꺼내놓아야 하는데, 그러는 순간 영영 찾을 수 없는 물건이 될 게 분명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풍이었다. 고작 바람 따위가 날릴 수 있는 몸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난생처음 40여년 동안 몸에 쌓인 살이 고마웠다. 배낭이 무거워 다행이라는 생각도 저절로 들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씩씩하게 잘도 갔다. 나를 지나쳐... 모든 사람이 나를 지나쳐 앞서 가는 건 내 평생 있어온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난생 처음 보는 수없이 많은 검은 민달팽이의 처지에 공감이 되며 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그들은 어찌나 공격적이던지... 덤벼들어서 공격적이었다는 게 아니고,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될 만큼 징그럽고 무심코 걷다 밟게 될까 봐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밟혀 죽은 시체도 엄청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공격을 정면돌파하며 갔던 거지... ^^

국경.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걸어서 넘었다. 물론 국경을 걸어서 넘었던 적이 처음은 아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캐나다와 이어진 무지개 다리rainbow bridge를 걸어서 넘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엄중한 국경 통제소가 있다. 그런데 피레네 산속 국경은 형식적 사무소 하나 없고 표시판도 없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넘는지도 모르고 넘게 되어 있다. 국경이 그래도 되는 것이라니...

도중에 한국 언니 둘을 만났는데, 언니들은 오늘 생장에서 출발했단다. 그러니까 8km를 따라 잡혔다는 이야기다. 나보다 열 살도 더 많은 언니들인데... ㅎㅎ 언니들이 루르드에 다녀왔다며 루르드 샘물을 감사히 내게도 나누어주었다. 그 덕에 무사했을지도... ^^

나무 줄기가 바람의 방향대로 휘어 자라있는 모습에 유구 무언. 마지막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기 일보직전에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마저 잃었고, 팔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등록하고, 씻고, 난생처음 2층 침대에 올라보고...

다른 순례자들과 밥 먹고, 언니들 따라가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보고...




나를 잘 돌보겠다는 어제의 약속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앉을 곳도, 쉴 곳도, 화장실도 아무 것도 없었다. 비가 와서 배낭을 내려놓을 곳 조차 없었다. 20km를 걸으며, 샌드위치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잠시 내려놓고 오들오들 떨며 샌드위치를 먹은 것, 팔이 절여 스트레칭을 해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잠깐 배낭 집어 던지듯 내려놓은 것을 빼면, 8시간 동안 어딘가 앉아서 쉬기는커녕 배낭을 내려놓은 적도 없었다.

[이날의 일기를 제대로 잘 썼다면 아마도 대서사시였을 것이다. 몇 줄이 안 되는 일기가 그날이 얼마나 고됐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그 와중에도 단 한 순간도 길을 나선 걸 후회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쩌면 생존이 너무 절실해 돌아보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할 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을 생각하면 순례자가 되는 통과의례 또는 정화의식을 치렀던 같다. 피레네를 넘었던 것에 대해 다 나처럼 극단적으로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 것도 최악은 아니었던 것 같은 경험담도 꽤 있다. 심지어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으니... 그래도 누군가 또 나폴레옹 루트로 피레네를 넘을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예스'다. 생장에서 출발하고, 길이 통제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선택은 그 길이다. 내게 순례의 시작은 그렇게 각인되어 달리 시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힘든 날은 두 번 다시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