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2008
산티아고 가는 길: 23: Frómista까지
비, 비, 추움. 매일 춥다. 2시 반쯤 도착.
어떤 놈이 사요나라 란다. 식전 댓바람부터...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엄중 경고하고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하는 거라고 알려줬더니, 역시 네 가지 없는 놈, 됐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게, 왜 건드려.... 바르셀로나가 고향이라는 아저씨가 뒤따라 오며 황량한 산을 보더니 손동작을 하며 뭐라고 하는데, 손동작으로 보아 저 산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거라고 하나보다 하며 wishful 해석을 했는데, 그 산을 올라야 했다. 지나고 보니, 보기에는 가팔라 보여도 휘휘 돌아 넘어 가파르지 않다는 소리였다.
간밤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오느라 잠을 설친 탓인지, 추워서 무릎이 아플 정도로 웅크리고 자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피크닉 하며 마신 맥주 탓인지, 힘이 든다. 스틱을 찍으며 긴 한숨을 쉬는 순간 맑은 표정의 아저씨가 지나가며 웃는다. 그러게... 웃긴다. 누가 그렇게 험한 길을 나서라 했던가... 큰 경사길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힘이 들고, 아침의 상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비...
그런데 언덕 중간쯤 커피차가 있다. 하하... 우리의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사람이 스페인에도 있다니... 기념으로 한 잔 하고 싶지만,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엉엉...
9km를 가니 Puente de Itero 알베르게가 보이고, 화장실이 있을 거란 생각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들어가 보니, 작은 성당 또는 예배당을 개조해서 만든 멋있는 공간이었는데, 호객 행위를 하는 거였다.
완전 기부로만 운영되는 알베르게라며, 시에서 100년간 세를 냈고, 1980년에 시작했다고 자랑이 만발이다. 화장실, 커피, 한국 웨하스랑 똑같은 웨하스 두 개, 빵 한쪽. 그리고 1유로. 뭐, 그 정도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커피 한 잔에 기운이 난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내 하루 컨디션은 첫 번째 바의 위치에 온전히 달려있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마을이 적당한 간격으로 있어 쉬며 걸을 수 있는 날은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적당한 휴식, 잠깐의 여유...
관광객 서넛이 길에 나타나 인사도 없이 휙 지나가는데 기분이 상한다. 텅 빈 배낭에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순례자들끼리는 몇몇 jerk를 빼고는 그러지 않는다. 짐을 지고 걷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라도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기에, 걷다 보면 서로 격려하는 마음이 된다. 뒤통수에다 대고 you should show your respect라고 한 마디 해줬더니, 알아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며 빤히 본다. 보거나 말거나... 이 길에 단체 관광객을 모집해 보내는 여행사라면, 순례자를 보거든 최소한 hola라도 하는 예의를 가르쳐서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레스토랑을 겸하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더니 코레아나냐며 호들갑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귀엽다고 하는 것처럼 머리에 손을 댄다. 저것이... 오늘 아무래도 내 심사가 편지 않다. 호객행위를 하던 이탈리아 오스피탈레로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순례자 흉내를 내며 차 타고 왔다며 농담이다. 안 웃기거든... 그런데 손님 중에 며칠 전 산속에서 만난 할머니가 있다. 걱정 말라시더니, 진짜 걱정 안 해도 됐다. 나도 못 걷는 주제에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잘 걷고 있는 것을 보면 반갑고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자주 보이던 소냐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 남자 친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올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 돌아간 것은 아닌지... 아니면 소냐 취향으로 보이던 전 마을에서 쉬기로 한 건지...
빗속에 달팽이 줍는 사람들 발견... 그들과의 대화: comida? sí... bien? sí...
역시 먹는 거였다. 그렇게 실해 보이는데... 군침을 흘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줄 알았다. ^^
오늘 알베르게에도 건조기 seccadora가 없다. 3일째 양말을 못 말리고 있다. 오늘도 맑은 하늘에서 난데 없는 비... 도대체 어떻게 빨래를 말려 입으라는 것임?
스페인 사람들 성격이 이상하다면, 그것은 모두 날씨 탓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