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2008
산티아고 가는 길: 06: Trinidad de Arre까지
진흙길, 돌길, 나무계단, 아스팔트... 온갖 종류의 길이 있었다.
Larrasoña 바가 문을 닫았다고 마을로 들어갔던 순례자들이 돌아 나온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으려던 야무진 계획이 무너지자 황당하기만 하다. 가다 뭔가가 있겠지 했는데, 어데예...
아무리 가도 없다. 마을 입구에 자판기 발견. 큰언니는 오늘도 날다람쥐처럼 먼저 가셨고, 작은언니와 곧 음식을 먹게 될 테니 일단 허기나 면하자고 콜라 하나 빼서 나눠 마심. 잠깐 허기가 면해진다며 좋아라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먹을 것을 구할 곳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 먹을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그거라도 넉넉히 마셨을 텐데...
빵을 달라... 하다못해 커피라도... 다음 또 온다면 길에서라도 먹을 것(포도, 체리, 무화과 등등)을 구할 수 있는 계절에 오겠다. 다시는 길 위에서 배고프지 않으리... 별의별 소리를 다 해보지만 그래도 배고프고 어지럽다. 사람이라도 보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산중이고, 가끔 보이는 집도 범접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차에서 80도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내리는데 장을 보고 오는 눈치다. 여러 봉지에 나눠 든 바게트 빵이 10개는 되어 보인다. 고맙게도 말을 붙여온다. 말을 주는 대신 빵을 주시지... 작은언니가 빵을 좀 달라 하란다. 하지만 배는 고파 죽을 것 같은데,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정신을 못 차린 걸 보니, 아직 살만한 거다. ^^
조금 더 가니 우아하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들이 있다. 역시 말을 붙여온다. 아침을 못 먹어 너무 배가 고프다며, 가까이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질문의 요지는 먹을 것을 좀 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어쩌면 있어도 없고 싶은, 아저씨들은 4km를 더 가야 바가 있단다. 절망... 그러자 아저씨들은 4km밖에 안 되는데 뭘 그러냐 한다. 장담컨대 그 아저씨들은 카미노를 걸어본 적 없다. 800km를 걷겠다 결심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4km가 ‘그까짓’이라고 할 거리는 아니다. 그런 반응에 먹을 것 있으면 좀 팔든 주든 하라고 할 생각이던 말이 10리는 들어간다. 아직도 배가 덜 고픈 거지...
그 4km는 멀고 멀었고, 2시 40분에 Basílica de la Santísima Trinidad de Arre 부속 알베르게에 도착.
일단 자판기에서 단것들을 뽑아 허기를 면하고, 씻고 저녁 먹으러 나감.
어제 빨래터에서 만난 아저씨가 성큼성큼 우리를 지나쳐간다. 오늘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인지... 키가 185쯤 되어 보이는데, 신장의 3분의 2가 하체다. born to walk인 거지...
타파스 바에서 저녁 먹고 돌아오니 무료 건조기가 비었다. 빨래 말리고... 건조기가 무료라는 건 너무나 큰 환대다.
수도회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는 깔끔하고 귀엽다. 이곳을 지키는 착하고 순하다 못해 달콤해 보이는 아저씨(아마도 수사님이 아닐까)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당에서 꽃 구경 삼매경인 우리를 보더니 비밀의 정원을 보여주고, 채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스페인어로 알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