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2008

산티아고 가는 길: 16: Viloria de Rioja까지



역시 호텔 조식. 너무 맛있었다. 온갖 햄, 익힌 것, 익히지 않은 것.. 주스, 과일, 소시지, 계란, 베이컨, 스페인 오믈렛, 빵, 요거트... 사람의 위에는 왜 저장 기능이 없는지... 느긋하게 먹고도 아쉬워 눈물을 머금고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한참 걷다 보니 재킷을 옷장에 걸어두고 나왔다.

40분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감. 그러니 5~6km를 고스란히 반납... 나 같은 달팽이에게는 엄청난 damage다. 순례자답지 않게 luxury hotel에서 잤다는 punishment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또 호텔을 이용할 거다.

고기가 좀 식었던 것을 빼면, 저녁과 아침, 오랜만에 누리는 호사였다. 강제 혈액순환을 위해 bath도 두 번이나... 그래서 그런지 몸이 훨씬 가볍다. 특히 다리가 많이 풀렸다. 재킷만 놓고 나오지 않았다면 아주 상쾌한 날이었을 텐데... ^^

오늘은 아무도 걷지 않는 것처럼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없다. 늦게 출발한데다, 오고 가고 헛걸음까지 해서 모두 가버렸나 보다.

마라톤도 혼자 뛰면 그렇게 못 뛴다던데, 이 길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는 걷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혼자 걷는 것이 좋다 했었는데, 완전히 혼자인 것이 좋다는 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관계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먼 거리가 필요하긴 해도 온 우주에 혼자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던 거다. 재미없는 대로를 따라 걷는 게 조금 지루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호주 할머니를 만났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고집스럽게 보인다. 산티아고까지 가야 한단다. 왜 가야 하느냐 물으니, 아시아의 불쌍한 사람들 눈을 뜨게 하기 위해 fundraise를 하고 있단다. 그러며 그 나라들을 열거하는데, 많지도 않은 그 나라들의 영어 발음이 분명히 있고 나도 알거늘, 제대로 발음도 못한다. 지금까지 6,000불을 모았고, 이 길이 끝날 쯤에는 만 불이 될 거라나...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호텔에서 호사를 누린다는 자랑도 빼먹지 않는다. 호주의 불쌍한 사람들 중에는 눈을 뜨지 못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스페인 청년이 우리 대화에 합류했다. 그냥 길에서 만난 청년이잖아... 그런데 그 청년이 자신만 주목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너무 하신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 자리를 피해드렸다. 언제 어디서든 뭐가 됐든 제 손아귀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할머니의 fundraising이 왠지 선의로 포장된 악다구니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혼자 걷는다. 잠깐 잃었던 평화를 되찾았다.^^ 내가 아무리 내 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살겠다 해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떤 존재가 되야 하는지 답은 알겠는데,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Redicilla를 지나다 그곳에 짐을 푼 호주 할머니를 또 만났네... 더 간다고 하자, 용감하구나 하는데, 왠지 거슬린다. 용감? what do you mean? 이라고 하려다 말을 삼키고, 한 시간 밖에 안 걸릴 텐데요 하니, 알베르게가 있길 바랄게 라고 하는데, 저주처럼 들린다. 으악... 아시아인인 주제에 자신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찬사도 감사도 표하지 않는 나에 대한 괘씸함이 실렸을 수도...^^ 앞을 못 보는데, 누군가 보게 해준다면... 이유 같은 것 따지지 않고 무조건 감사할 것 같다. 할머니를 대신해 도울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할머니의 꼴 보기 싫음은 좀 참는 걸로...

private albergue인데, 이곳에서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독일 사람들 때문에 이 길이 조금 피곤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수가 많다 보니 자주 떼거리를 형성한다. 떼거리의 공통적인 특징은 소수에 대해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양 예의를 상실한다는 것. 오늘 이곳에 보인 사람들은 모두 독일인은 아니다. 스위스 사람, 오스트리아 사람도 있는데 모두 독일어를 한다.

그런 내가 불쌍해 보이는지 호스피탈레로가 신경을 써준다. 파울로 코엘료를 아느냐 묻는다. 안다고 하니, 그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사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에서 길러온 감에 의하면 솔직한 것이 예의가 아닌 순간이다 싶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노트를 내밀며, 이곳에 글을 남기면 그가 직접 읽는데, 글을 남기겠냐고 묻는다. 거짓말은 이래서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팬이 아님을 뒤늦게 이실직고하긴 그렇고, 메모를 남길 수 밖에...

[책 두 권 읽은 게 전부. 뭐 그냥 읽었던 터라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리 없었고, 그렇다고 거짓 글을 쓸 수는 없고,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 걸으며 느낀 것을 솔직히 썼던 기억은 있는데, 뭐라고 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걸음이 느리니 알베르게도 늦게 도착하는 와중에 순례자들과 수다 떨고 놀기도 해야겠고, 마을 구경도 해야겠고, 바에 가서 와인도 맥주도 마셔야겠고, 피곤하니 누우면 골아 떨어지고 했더니, 남겨진 일기가 영 부실... 내가 도대체 뭐라고 글을 남겼었길래 산티아고에서 우연히 만난 오리에타가 특별히 나를 기억하며 파울로 코엘료와 만나게까지 해주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이고 너무 궁금하다. 내게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사람은 심지어 오리에타도 아니었고, 오리에타 남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소냐가 있다. 그녀도 독일 사람이지만 그녀는 내 말동무. 어제 소냐를 길에서 잡았었다. 키가 무려 178. 다리가 어찌나 긴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도망가는 것처럼 빨랐다. 그런 그녀와 오늘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어제 엉덩이가 아파서 많이 못 가겠다더니 많이 아픈가 보다. 그 긴 다리로 나만큼 밖에 못 가는 걸 보면. 저녁 먹기 전에 소냐와 마을 산책하다 배꼽 빠질 뻔. 그녀가 핑크아주머니의 private moment를 목격한 목격담을 어찌나 실감나게 이야기하던지...

길을 걷다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wrong statement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잘 산다는 말은 상대적 상실감이 만들어낸 말일 뿐 증명된 적도 없고 증명될 수도 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 그날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고,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것이 있지 싶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날까? 건강, 지혜, 성품... 아마도 이런 것? 그리고 외모?^^]

[이곳은 알베르게 Acacio y Orietta는 순례길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된 Acacio와 Orietta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다. 우연히 머무르게 됐던 곳인데, 선물 같은 곳이었다.]

이곳 알베르게는 저녁을 제공하고 다 같이 함께 먹는다. 모두가 테이블에 모이자 오리에타가 분위기를 잡는다. 저녁을 먹기 전에 왜 이 길에 있는지, 자신은 누구인지 공유하자고 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고, 돌아가며 간단히 소개를 하는데, 마가렛이라는 아주머니가 몇 마디 못하고 흐느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서 그들 위해 걷는다고... 거기까지가 그녀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의 전부. 숙연한 분위기가 더 숙연해진다. 오리에따의 눈이 붉어진다.

1년전 알베르게를 열었다는 오리에따. 소냐가 어떤 사람의 카미노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옳지 않다 한다. 그에게는 그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judge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 길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어떤 이유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 길에 있어봤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길에서든, 아니면 돌아가서든, 언젠가 이 길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 길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호주 할머니에게 시달린 내 마음에 대한 응답 같은 말이다.. ^^

judge하지 않는 것... 오랫동안 왜 그래야 하는지, 그리고 그게 뭘까 생각했었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이고, 존재의 인정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그만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의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것. 내가 함부로 이유가 있는 존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그리고 그게 힘들다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judge하지 않는 것의 핵심은 내게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 judge는 신만이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언제나 딜레마. 그럼 충고도 하지 않는다는 걸까? 판단이나 평가 없이 어떻게 충고가 가능할까? 네 인생은 네 몫이니 나는 모르겠다 가 아니고도 언제나 조용히 바라보고 포용하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 가능할까? 이럴 때 신이 등장하는 걸까? 그의 인생은 신께서 다 잘 알아서 하시니 네가 신경쓸 일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단순히 걷고 싶어 시작한 길이지만, 길을 걷다 보면 뭔가 많은 것을 생각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하늘을 즐기느라, 길가의 꽃을 즐기느라, 바람을 즐기느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마을 구경 하느라 틈이 없다. 큰 기대는 없었어도,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니까, 상처를 치유해 준다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할 틈도 없을뿐더러, 떠올라도 곧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생각이 전개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리가 되거나, 정리할 힘이 생기거나, 지혜가 생기길... 오리에따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