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2008

산티아고 가는 길: 02: Bayonne에서 St. Jean Pied de Port로



Bayonne... 또 다른 낯선 도시... St. Jean Pied de Port행 기차 까지는 두 시간 쯤 기다려야 한다.

역이 워낙 작아 5분 만에 역 안은 더 이상 배회할 곳이 없다. 밖으로 나와 역 앞에 서있는 지도를 살펴보니 큰 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 old town이 있다. 20분 동안 갈 수 있는 곳 까지만 가보자 하고 길을 나선다. 아침 바람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다. 매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하겠지 싶은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다.

커다란 강이 나타나고 성당의 첨탑이 보이자 목표가 달라진다. 20분이 아니라 성당까지 가는 걸로...

아직은 tourist. 카메라를 꺼내 도시를 담는다. 순례와 여행의 차이가 무엇인지 몰라도, 난 끝내 이렇게 들뜬 여행자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침 햇빛, 바람, 한강만큼 넓은 강... 뜻밖에 만난 고딕 성당, 도시를 감도는 Basque 지역의 독특한 색감... 간간히 마주치는 나와 같은 사람들(St. Jean행 기차를 기다리는)과의 눈인사. 배낭을 메었어도 그 모든 것을 즐기며 걸을 만 하고, 기차 시간에 늦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속도도 낼 수 있다. 그동안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 가운데 하나인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면서 두려움 하나가 날아간다.





St. Jean 행 기차 안

St. Jean 행 기차. 일등석은 달랑 한 칸, 좌석도 몇 개 안되고, 승객도 나 밖에 없다. 잠시 후 North American일 수 밖에 없는 외모의 한 사람이 들어온다. 이제 달랑 둘...

산티아고 순례기를 몇 권 읽으며 온통 다른 순례자들과의 일화들로 채워져 있는 게 이상했다. 왠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순례 일기도 예외는 아닐 거라는 조짐이 첫 날부터 보였다. 눈이 마주쳤는데 어떻게 인사를 안하랴... 일단 인사를 나누고... [걷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길이 은하수처럼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길 어디든 걷고 있는 순례자 때문이라는 것을. 순례자들의 선하고 너그럽고 밝은 마음이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내며 그 길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별 생각 없는 혼잣말이 사람은 그밖에 없다보니 그에게 던져진다.
'이 기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거지?’
'이쪽이라고 생각해서 앉기는 했는데 확실하게는 모르겠어.'
억양으로 보니 North American이라는 짐작이 맞는 것 같다.

기차가 산을 향해 가고 있다. 당연하지, 말로만 듣던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로 가는 길인데... 드문드문 눈에 띄는 인가, 길, 도로... 튀지도 지나치게 겸손하지도 않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듯, 인공의 시설들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람의 손이 닿았음에도 자연이 훼손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들은 어떻게 자연과 더불어 이렇게 아름답게 사는 걸까? 인공적인 것이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잖아... 이런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계절은 아카시아 꽃들이 필까 말까 하는 중. 우리와 같은 계절... 내가 기억하는 계절, 지금의 미친 계절 말고...

그렇게 피레네 산맥 풍경에 취해 가고 있는데, 그가 검표원과 불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두 언어를 그렇게 완벽히? 그렇다면 미국사람일 리는 없는 것 같고...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일까 궁금하다. North American에 불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퀘벡커일 것을, 무식하게 '너, 프랑스 사람이야?'라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다. '아니, Quebec에서 왔어... 여기가 일등칸인지 몰랐어. 사람이 없어서 그냥 앉았는데... 그냥 앉아 가라네...' 한다. 그리고 잠시 small talk을 나누다 대화 종료. 유난스럽게 굴 것 까지야 없지만 되도록 관계와 교류를 피하려 했건만, 어느새 그와 통성명... 그의 이름은 Luke.

난 친구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고. 내게 집중하며 걷고 싶을 뿐이라고...
누가 뭐라니? 그럴 거면 궁금하지도 말아야지. 다 시작은 너거든...^^

St. Jean에 도착. 아늑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파란 하늘, Basque의 붉은 빛, 봄의 싱그러운 초록이 반긴다. Luke가 유창한 불어로, 사실은 모국어로 승무원에게 순례자 사무실 가는 길을 물어놓은 모양이다. 앞서 길을 안내한다. 올라 가는 길에 인천 공항에서부터 같이(?) 온 세 명의 동포들과도 인사하고, 기차에서 내린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어느새 무리가 되어 조금씩 들뜬 마음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