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08

산티아고 가는 길: 12: Viana까지



풍선 베개를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가져오길 어찌나 잘했는지...

커피는 나의 힘. 커피를 기대하며 San Sol까지 6.3km나 걸었는데 바가 없다. 하릴없이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진짜 바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 것도 미안한데 배낭까지 내려 가방을 풀더니 책을 꺼내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다행히 0.9km 가면 바가 있단다.

Torres del Río. exotic한 아가씨가 바를 열고 있다. cafe con leche grande를 달라고 해놓고, 내라는 돈에 마음이 상한다. 양은 두 배가 아닌데, 값만 두 배를 내란다. 따로따로 두 번 시킬걸... ^^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며 어제 사놓은 빵과 함께 맛있게 먹고 있는데, 스페인 순례자 셋이 바로 들어선다. 그들이 아가씨에게 뭐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음악이 흥겨워지더니 그곳이 클럽으로 변한다. 뒤이어 들어선 사람들까지 합세해 신나게 춤을 춘다.

커피를 마셨더니 발걸음이 가볍다. 어떻게 걸을까 싶었던 길이 산보처럼 즐겁다.

Menu del día 또는 Menu del Peregrino. 가격은 대체로 10~15 유로 사이고 음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번 먹어보면 반복적이란 느낌이 든다. 샐러드, 빵, 파스타나 생선이나 닭 튀긴 것 중 선택, 감자튀김, 푸딩이나 아이스크림, 와인이나 물... 나열하고 보니 그럴 듯 한데, 실상은 맛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저 생존식이다. 다른 선택이 있는 곳도 있지만, 작은 마을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먹고 싶은 생각은 더 없다. 좁은 부엌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경쟁하며 뭘 해먹고 싶지 않을뿐더러, 짐도 생활도 최대한 단순하고 싶은 선택이기도 하다.

오늘은 제법 번화한 도시라 알베르게 앞 bar에 타파스가 있다. 타파스 5조각과 맥주 한 잔. 6.6유로. more than enough다.

먹고, 시내도 구경... 유서 깊은 유적이 많은 도시다.

시내 구경을 하는데 어떤 꼬맹이가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맴돈다. 귀여워 인사를 했더니 자꾸 뭐라고 한다. 가만 들어보니 dinero. 돈을 달라는 거였다. ㅠ.ㅠ 못 알아 들은 척 웃으며 지나쳤다. 잘 한 것이겠지...

첫 번째 좋다는 사설 알베르게에 갔더니 침대가 없고 바닥에서 자야 한단다. 알베르게의 hospitalero 부부 아들이 한국에 있다고, 한국 사람이라니 유난히 반가워 했는데... 그래도 바닥에서는 못 잘 것 같아 나왔다. 핑계 김에 private day를 가지려 hostel을 찾아 갔는데, 알베르게가 100배 좋다. 집은 굴속 같고 주인과 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괴기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자꾸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그저 웃음으로 때우며 돌아 나왔다. 마음에 드는 호텔이 있는데, 비싸 보여서 다른 곳을 찾으려 한 건데, 그냥 비싸도 거기로 가야겠다 하고 가는데, 호텔 건너편에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3층 침대가 있다고 해서 피하고 싶었던 곳이다. 호텔로 들어가려 오른쪽으로 한 걸음을 떼었는데, 오늘 하루 종일 어떤 아가씨에게 작업을 하느라 바빠 보였던 어떤 녀석이 알베르게는 왼쪽인데 한다. 차마 그들이 다 보는 앞에서 별이 몇 개나 달린 호텔로 들어가지는 못하겠다. ㅠ.ㅠ 방향을 착각한 척 발길을 돌려 알베르게로 들어갔고, 난생처음 3층 침대로 올랐다. 이 길에서 뭐는 난생처음이 아니랴... ㅠ.ㅠ 그나마 이웃하는 침대가 비어 답답함은 좀 덜하겠다 했는데, 이탈리아 쫄쫄이들(자전거 순례자)이 와서 다 채운다. 역시 그들답게 엄청 bella figura에 신경을 썼는데, 쫄바지에 쫄티를 훌렁훌렁 벗더니 샤워실로 향한다. 그래, 너희들 정도 되면 벗고 다니는 것을 용서하마...

오늘 아침에 거꾸로 오는 청년과 부딪혔다. 왜 반대로 가느냐고 물으니 산티아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거의 다 왔네 하니 그렇단다. 온갖 인사를 교환했다. 아름다운 청년 같다.

어떤 프랑스 아줌마도 만났다. 프랑스어가 내가 마땅히 알아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계속 지껄여댄다. 그래서 나도 우리말로 한마디... 도대체 뭐라는 거니? 그랬더니 언짢은 표정이 된다. You don’t deserve good man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