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2020

시칠리아 여행: 14: 시라쿠자: 오르티지아 & 아레투사의 샘





[시라쿠자 오르티지아 풍경]


아침을 먹고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르티지아 섬도 웬만하면 골목 끝에 투명한 바다가 있다. 요트로 가득한 마리나marina가 있고, 솔라리움solarium이라고 하는 일광욕 하는 곳도 있고, 바다 한 가운데 요트를 띄워놓고 수영도 즐기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특별히 해수욕장이라 할 것 없이 접근이 가능한 해변에는 어디나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영부영 보내겠다 하니, 조지가 솔라리움을 알려줬었다. 해수욕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무리에 휩쓸려 하게 된 것이지 자발적 의지로 했던 적은 없었다. 물도 좋아하고 수영도 좋아하지만 왠지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은... 언젠가 바다를 즐기는 법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오늘, 시라쿠자에서는 아니다. 바닷가에 있는 커다란 광장에 베스파가 일렬 횡대로 쫙 서있다. 베스파 동호회? 광장 한쪽이 테라스다. 시야 가득 바다와 하늘과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들어온다. 이곳을 좋아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완전 기우였다. 지구상에 이렇게 완벽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르티지아 아레투사의 샘]


광장 남쪽에 아레투사의 샘fonte aretusa이 있다. 그냥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파피루스... 이름만 듣던 파피루스의 살아있는 모습도 여느 수초와 다른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바닷가 바로 옆에서 민물이 솟아나는 샘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올레길에도 바닷가에서 솟는 민물 샘이 있다. 아무리 그리스 신화라는 스토리가 있다 해도, 오르티지아 섬 덕분이지 샘 자체만으로 명성에 걸맞은 뭔가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위에서 샘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입장료가 5유로나 된다. 그런데 샘 입장권이 있으면 아르키메데스 박물관 입장료를 50%나 할인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봐야지...^^ 

들어가니 오디오 가이드를 준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가까이에서 샘을 보며 한 바퀴 돌다 보니 샘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물도 더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파피루스 군락,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금붕어 떼, 빛이 반사돼 형광 빛처럼 하얀 오리들, 스스슥 움직이는 도마뱀들, 반사된 빛이 물위에 만드는 무늬들. 왠지 신비한 느낌이다. 오디오 가이드에 감동을 해보긴 처음이다 싶다. 시라쿠사 인근에 파피루스 군락지가 있는데, 북아프리카 밖에서 파피루스가 자생하는 곳은 이 지역 밖에 없다고 한다.


[아레투사의 이미지]


이 샘에 얽힌 신화가 있다. 아르테미스의 시녀였던 님프 아레투사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 반한 강의 신 알페이오스가 구애를 했지만 그녀는 처녀신 아르테미스처럼 남자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도망쳤고, 도망 중에 잡힐 위기에 처하자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르테미스는 아레투사를 물로 변신시켰고, 그리하여 아레투사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고 흘러 시라쿠자에서 샘으로 솟았다. 오디오 가이드에 의하면 알페이오스가 끝까지 따라가 구애를 했고, 이에 감동한 아레투사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인 것으로 끝났다. 실제 이곳에서 두 물줄기가 합쳐져서 흐른다는데, 그걸 그렇게 풀어냈나보다. 섬 곳곳에서 아레투사의 옆모습이 있는 기념품을 파는데, 머리도 짧고 중성적 이미지라 알페이오스인가 했더니 아레투사였다. 스토리의 이미지를 반영했구나 싶다.

나오는데 매표소 안내원이 감상을 묻는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보니 달리 보였다고, 신비한 느낌이 있다고 하니, 신나서 그렇지 않냐고 맞장구를 친다. 매일 보는데도 그렇게 좋은가 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뭐 그런 건가? 나도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는 것이 많기는 한데, 그래도 뭔가 다른 것 같다. 나는 저런 마음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사는구나 싶다.

아레투사의 샘 밖에서 승려 몇 명이 샘을 보고 있다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네왔다. 나도 반가워 인사를 하고 여행을 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근처에 사원이 있고, 그 사원을 방문 중이라고 했다. 스리랑카 사원이란다. 스리랑카 하니 들어본 것이 실론차와 세렌디피티serendipity 밖에 없어 실론차의 스리랑카냐고 했더니, 좋아하며 명함을 건네고, 사원으로 놀러 오란다. 그러며 대뜸 내 전화번호를 묻는다. 헐... 놀러오라는 말이야 인사치레로 할 수 있다 해도, 전화번호를 묻는 건 농담으로도 진담으로도 부적절하다. 전화번호를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정색... 좋은 여행 하라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글쎄...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스리랑카라는, 정말 순박하고 인심이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전화번호를 묻는 게 상식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순박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상식이라는 색안경으로 그들을 본 걸까? 마음이 잠시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