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자가 자랑하는 인물 중에 아르키메데스 말고도 산타 루치아santa lucia와 카라바죠caravaggio 가 있다. 카라바죠는 시라쿠자 출신은 아니지만 이곳뿐만 아니라 시칠리아 다른 도시에도 잠시 머무르며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유난히 이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카라바죠가 미술 교과서에 나왔던 화가는 아니라 전혀 몰랐는데, 오래전 베네치아를 여행하다 알게 되었다. 그림도 잊기 어려운 인상을 남겼지만, 이름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종종 들렸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서 그냥 멍하고 들여다 보는 적이 많은데, 그의 그림은 그렇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너무 어둡고 강렬했다. 네 안에도 이렇게 어둡고 음침한 악마성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를 스타일로 분류하면 바로크 화가라고 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글로 표현된 바로크 예술의 특징이 뭘 말하는지 딱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의 삶을 보면 그가 바로크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그의 내면이 그림에 투영된 것일 뿐인 건지 의문이 든다. 불 같은 성정으로 폭풍 같은 삶을 살았다.
[두오모 광장에 있는 수도원 부속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la badia에 카라바죠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그는 로마에서 활동하다 살인사건을 저질러 교황청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나폴리로 도망을 갔다. 그의 재능을 사랑한 귀족들의 후원으로 잘 지냈으나 교황의 사면을 구하기 위한 신분세탁 목적으로 말타로 가서 재능을 발휘해 말타 기사단의 기사 작위를 얻었다. 그런데 또 사고를 쳤다. 기사단 고위 기사에게 치명적 부상을 입혀 지하감옥에 갇히고 기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탈출해서 시라쿠자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말타 기사단에게 추격당하는 신세라 팔레르모, 메시나로 옮기며 그림을 그렸다. 결국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자신을 보호해줄 권력자를 찾아 나폴리로 갔다. 그곳에서 결국 사면 소식을 듣고 로마로 향하는 길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악동을 넘어 악마의 영혼이 씌워진 것 같은 성정의 소유자였지만 늘 그의 천재적 재능을 사랑하고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운명을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가 시라쿠자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린 그림이 산타 루치아의 매장seppellimento di santa lucia이다. 광기 어린 삶을 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잠시 이곳에서 활동했던 것이 큰 자랑거리 같다. 오르티지아섬 여기저기에 그의 이름이 보인다. 그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워낙 크기도 하지만, 인간 카라바죠가 어떤 사람이든 너무 빨리 꺾인 그의 천재적 재능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적 허물은 허물이고 재능은 재능이고... 그를 기리는 행위를 예술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기도 하겠지만 허물을 들추기 보다 칭찬할 구석을 찾는 마음이기도 하지 않을까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미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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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루치아santa lucia는 시라쿠자의 수호성인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성당이나 교회를 많이 방문했어도 그 도시의 수호성인을 저절로 알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시칠리아에서는 지역의 수호성인이 아직도 일상 생활 속에 작용하는 것 같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산타 루치아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루치아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기독교에 귀의해 동정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홀로 남은 엄마는 병이 들자 딸의 결심을 모른 채 후사를 걱정해 부유한 이교도 청년과 딸의 결혼 약속을 해버렸다. 루치아는 엄마 병의 치유를 바라며 카타니아에서 순교한 아가타의 무덤으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꿈에 아가타 성녀가 나타나 네 믿음 덕분에 엄마가 낫고, 너는 시라쿠자의 영광이 될 거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루치아는 엄마에게 자신의 결심을 말했고, 엄마를 설득해서 자신의 결혼 지참금으로 쓰려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약혼자는 화가 나서 시라쿠자의 총독에게 그녀를 기독교인이라고 신고했고, 총독은 매음굴에서 능욕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벌을 그녀에게 내렸다. 그런데 병사들이 그녀를 끌어내려 하자,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황소들 조차 그녀를 끌어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화형을 시키려 했으나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다. 그래서 칼로 목을 찔러 죽게 했다.
그녀를 그린 그림에는 그녀를 찔렀던 칼이 등장하기도 하고, 순교와 악마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 가지, 횃불, 소 등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주 접시에 올려진 눈알 두 개가 등장한다. 그녀가 총독과 로마 황제의 불운을 예언해서 눈을 파내는 고문을 당했다 하기도 하고, 약혼자를 포기시키기 위해 그녀 스스로 눈을 파냈다고도 한다. 그런데 눈 이야기는 처음에 없다가 중세에 등장했단다. 그녀의 파내진 눈알들은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려 시신을 거두자 제자리로 찾아 들어가더란다. 그녀의 유해는 시라쿠자 본토에 있는 성녀의 무덤 위에 지은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 sepolcro에 있었는데, 이후 도난당했다는 말도 있고, 여기 저기로 보내졌다는 말도 있고, 머리는 여기, 팔은 저기에서 발견되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지금은 베네치아에 있는 교회santuario di lucia에 있다고 한다.
끔찍한 이야기다. 순교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성인의 유해를 나누어 갖는 전통도 끔찍하게만 느껴진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돋보이게 하기 위한 끔찍함일 텐데, 무엇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있어야 했는지, 어느 부분이 아름다운 건지 모르겠다. 다만 이야기 속 장소가 걸어서 갈만한 곳에 존재한다니, '전설의 고향' 급 이야기가 마냥 황당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본토에 있는 산타 루치아 교회 제단 앞에 기둥이 하나 있는데 그 기둥이 그녀가 순교했던 자리라고 한다.
[오르티지아. 수도원 부속 산타 루치아 교회 17세기 교회. 바바리아 바로크bavarian baroque 스타일이라고 함. 철제 발코니는 외부 출입을 할 수 없었던 수녀들이 산타 루치아 축제를 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그림을 보려 두오모 광장 남쪽에 있는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la badia로 갔다. 제단 뒤에 덩그러니 그림이 걸려 있다. 원래는 시라쿠자 본토에 있는, 그녀가 순교당한 자리에 세워진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 al sepolcro의 제단화로 그려진 그림이란다.
[카라바죠. 산타 루치아의 매장seppellimento di santa Lucia. 성직자 왼쪽 절망한 여인이 루치아의 어머니이고, 왼쪽 땅을 파는 사람은 카라바죠의 자화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터넷 그림]
[시라쿠자 문화재 관리청과 그곳에서 전시중인 카라바죠의 그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처형. 그림은 인터넷 사진]
두오모 광장 다른 쪽 시라쿠자 문화재 관리청palazzo della sovrintendenza ai beni culturali di siracusa에 카라바죠의 다른 그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처형crocifissione di sant'andrea '을 전시한다고 포스터며 입간판이며 여기저기 붙여 놓았다. 미국 클리브랜드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고, 도망 중 나폴리를 떠나기 전에 그린 그림이란다. 카라바죠를 많이 사랑하는 구나 싶다. 인터넷을 보니 입장료가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평이 수두룩하다. 패스...